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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아리 Nov 22. 2020

너는 보물 친구란다

-초등학교 1학년의 친구 사귀기 

딸은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스르륵 잠드는 것을 좋아한다. 


성인과 어린이가 함께 누우면 꽉 차는 슈퍼싱글 침대에 찰싹 몸을 붙이고 아무도 엿듣지 못하는 

우리만의 비밀대화를 주고받는다. 

나의 회사 복직을 앞두고 미리 적응하는 차원에서 아이를 돌봄 교실에 보내기 시작했는데  

나의 관심은 친구를 잘 사귀는지, 행여 심심하게 지내는 건 아닌지 하는 아이의 적응 문제에 쏠렸다.  

어느 날 밤, 아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슬쩍 물어봤다.


- "오늘 어떤 즐거운 일이 있었어?"


급식이 맛있고, 새로운 친구 누구와 대화를 했고, 필통을 놓고 갔지만

 선생님께서 연필을 빌려주신 이야기 등 아이는 신나게 학교 생활을 털어놓았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음 진짜 질문을 이어갔다. 

 

- "혹시 오늘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도 있었어?"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아이는 누가 들을까 봐 조심하는 듯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 대답했다.


- "A가 장난감을 가져와서 친구들이 구경했는데 나한테만 보지 말라고 했어. 

그리고 A랑 B가 자기들끼리만 귓속말을 하고 나한테는 알려주지도 않았어. 그리고..."


한참 이어진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우리 가족은 1년 전에 현재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아이는 오래 사귄 어린이집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유치원에 다니게 됐는데 같은 반 여자 친구로부터 상처 받는 말을 들고 속앓이를 했었다.

 평소에 친구 사귀는 일에 큰 어려움이 없던 아이였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도 적응을 잘할 거라는 생각했던 우리 부부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이는 몇 달 동안 이사 오기 전 동네로 돌아가고 싶다고 할 만큼 새 유치원에 정을 쉽사리 못 붙였다. 


-  "세상에, 그런 일이 있었어? 엄마였으면 정말 속상했을 것 같아. 00 이는 어땠어?"

-  "기분 나쁘고 화났지."

-  "그럼 그 친구들 말고 다른 좋은 친구들을 사귀어보는 건 어때?"

-  "...... 그런데 나한테  친절할 때도 있긴 해서..."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린 결론은 

아이는 활달하고 무리 지어 다니는 여자아이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성향이 있고 

거기에 끼지 못할 때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고 당시 주변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자라면서 흔히 겪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청소년기, 성인이 된 이후까지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다양하게 바뀐 모양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자존감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마음 건강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사귐에 대해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내 고민은 며칠간 이어졌다. 


여느 때와 비슷한 어느 날 하굣길에 가방이 무겁다는 아이와 학교 근처 벤치에 앉았다. 

학교생활을 나누면서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사귀는 일은 보물찾기 같은 거야. 우리가 보물을 찾을 때 쉽게 찾을 수 있을까? 

맞아. 꼭꼭 숨어있기 때문에 잘 찾아봐야 하잖아. 

우리 00 이와 잘 맞는 친구를 만나는 일은 보물찾기 같아서 쉽게 찾기 힘들어. 

그만큼 많은 친구과 대화해보고 놀아보기도 하면서 나와 맞는 보물 친구인지 아닌지를 잘 살펴봐야 해. 

그런데 막상 보물 찾기에 성공해서 종이를 펼쳐보면 꽝이라고 쓰여 있을 때도 있지? 

친구도 마찬가지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서 같이 놀았는데 놀다 보니  

상처 주는 말을 하고 밉게 행동할 수도 있어.


한두 번이 아니라 자꾸 그렇게 할 때는 보물 친구가 아닌 거야. 

실망하지 많고 새로운 보물 친구를 찾으러 떠나면 돼."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데, 거꾸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리 00 이는 보물 친구일까, 아닐까? 보물 친구를 만나려면 우선, 스스로 보물 친구가 되어야 해. 

엄마가 볼 때는 우리 00 이는 말도 예쁘게 하고, 배려도 잘하고  도와주기도 잘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물 친구인 것 같아. 우리 00 이를 발견하는 친구는 정말 대단한 거야! 


그런데 친구들이 우리 00 이를 조금 오래 걸려서 찾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지 않는다고 속상해할 필요가 없어. 

원래 보물은 가장 늦게 발견될 때가 많거든. 그전에 00 이가 보물 친구를 찾아 나서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할 수 있다는 듯 주먹까지 들어 보였다.

 그 날 이후, 우리의 하굣길 대화는 '오늘의 사귄 보물 친구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이뤄졌고 

아이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걱정은 조금씩 사라졌다.


'보물 친구론'을 설파하고 한참 지난 어느 날 밤, 

졸린 눈을 비비며 아이가 나에게 소곤거렸다. 


 "엄마, 대박사건이 하나 있어. 그때 그 친구가 또 나한테 미운 말을 해서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줬어.

 'A야, 그렇게 말하면 내가 기분이 나쁘고 속상해.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꾸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친구를 할 수가 없어. 

다음부터는 예쁘게 말해줘.'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좀 착해진 것 같아 "


마음 깊은 곳에서 안도의 날숨이 쉬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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