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빼빼로데이에 있었던 일
- 용감한 빼빼로
11월 9일,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식탁 위에 과자상자가 놓여있었다.
제과회사에서 만든 과자가 아니라 팬시점에서 팔법 한 핑크색 긴 상자 속엔 빼빼로 과자가 들어있다.
이 과자의 출처가 뭐냐고 물어보는 내 말에 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종알종알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 옆에는 시아버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말할 차례를 기다리시고 계셨다.
- 엄마, 이거 알밤이가 줬어
- 알밤이가? 왜?
- 몰라~
이제 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현장에 계셨던 유일한 목격자, 시아버지가 출동할 차례다.
아버님께서 전해주신 장면은 이렇다.
S#1 초등학교 앞, 하굣길
초1 여자아이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갑자기 뒤에서 한 무리의 남자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따라온다.
뭔가 장난을 치려는 건지, 할 말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모른 척 갈 길 가는 두 사람.
S#2 집과 초등학교 사이 인도
몇 걸음 더 걸어간 후,
남자아이 무리가 말을 건넨다.
자세히 보니 그중 같은 반 알밤이가 있다.
알밤이가 핑크색 상자를 내민다.
- 알밤
/이거.. 선물이야!
- 여자아이
/고마워!
형아들과 함께 후다닥 다시 되돌아가는 알밤.
시아버지의 생생한 목격담이 끝나고 이제는 나의 폭풍 리액션 차례.
- 우와! 친구가 엄청 용기를 내서 줬네! 고맙다고 했지??
너랑 친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가 봐
내일 엄마가 사둔 빼빼로 하나 갖다 줘~!"
코로나 입학생으로 온라인 수업만 하다 친구들과 대면수업을 한지 얼마 안 지났던,
그리고 나의 복직 첫날이었던 2020년 11월 9일.
여러모로 긴장하고 있던 내 마음에서 얕은 숨이 내쉬어졌다.
아이의 학교생활과 나의 회사생활 두 톱니바퀴가 잘 굴러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이랄까?
- 응 알았어. 그런데 엄마 이거 진짜 크고 예뻐! 포장지도 예뻐
- 그러네!! 어디 엄마도 보자
세로로 길쭉한 핑크색 상자, 손잡이용 끈도 달렸다.
안에는 예쁘고 달달한 장식이 얹힌 왕빼빼로 여러 개가 들어있다.
그러다 상자 한 구석에 쓰인 뭔가가 내 눈에 들어왔다.
연필로 써서 흐릿하지만 자국은 남아있다.
- 어! 여기 글씨 써 있네
- 어디 어디 뭐라고 써있어?
- 연필로 써서 잘 안 보여 엄마가 읽어볼게.
00아. 사랑해?!
그 순간 나는 폭소를 터트렸고 딸아이는 부끄러워했으며 시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그리고,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