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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y 18. 2021

1980년 5월 적십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적지 11호 광주적십자병원


몇 년 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는데 내 눈길을 사로잡는 장소가 나왔다. 영화 속에서 서울 택시기사 김만섭(송강호)과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이 처음 만난 장소로 나온 광주적십자병원이 그곳이다.


영화 <택시운전사>에 나온 광주적십자병원 장면

80년 5월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에 광주적십자병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언제 광주에 여행 갈 일이 생기면 꼭 이 곳을 가 봐야지 생각했었다. 그 후로 광주에 여행 갈 일은 안 생겼는데, 대신 올해 초 광주로 발령이 났다. 가 보고 싶었고 때마침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도 다가오고 있어서 나는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 건물은 펜스로 둘러쳐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인도에 세워진 표지석과 조형물을 통해서 이 곳이 5.18 민주화운동 사적지(제11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간 시각이 햇볕이 쨍쨍한 한낮이라 건물 앞에서 전경사진을 몇 컷 찍고, 건물 뒤편 그늘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사적지 11호를 알리는 표지석과 조형믈

거기서 익숙한 풍경을 만났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나오는 광주적십자병원이 세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서 실제 찍은 것이었다. 보고도 신기했다. 건물 뒤뜰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혀 있었다. 나는 맞은편 건물 계단에 올라가 휴대폰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사진을 몇 컷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옛 광주적십자병원의 뒷뜰

그렇다면 광주적십자병원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왜 중요한 장소였던 걸까. 이 병원은 5.18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라남도청과 직선거리가 500m로 가까웠다.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이후 많은 사상자들이 이 병원으로 실려왔다. <한국적십자운동 100년사>에는 광주적십자병원 의사와 간호원 등 전원은 5월 20일부터 30일까지 10여 일 간 부상자를 치료하고 밀려드는 헌혈자에게서 채혈을 실시하는 등 철야근무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 광주적십자병원 검사실장과 광주전남혈액원 검사과장을 겸직하고 있던 김철부 실장님과 며칠 전 통화를 하여 그때 얘기를 들어 보았다. 당시에는 매혈이 기승하던 시기라 혈액원 원내 헌혈자가 20명 내외였는데 5월 21일부터 22일까지 이틀간 411명의 헌혈을, 5월 말까지 650여 명의 헌혈을 받았다고 했다.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에 시민 뿐만 아니라 학생, 유흥업소 종사자까지 모두 팔을 걷고 헌혈에 동참했다고 하니 정말 놀라운 시민 참여가 아닐 수 없다.


1980년 6월호 적십자 소식지에 실린 광주민주화운동 의료활동


전 김혜남 적십자교육원 교수가 쓴 <솔페리노의 꿈>에 실린 1980년 5월이라는 글에서도 그 당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도청 광장은 적십자병원, 혈액원에 근접한 거리에 있기 때문에 사상자 숫자가 늘어가면서 적십자 직원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하고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유탄의 위협을 무릅쓰고, 가두헌혈과 헌혈 동참 캠페인을 벌였던 것이다. 그때의 헌혈 행렬은 1,000여 명에 이르렀고, 600명이 헌혈에 동참해 주어서 혈액이 남아돌아 헌혈 대기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호소하는 감격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중략) 특히 적십자사에서 지원해준 의료용 산소통 200개는 각 병원에 나누어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편 광주전남지사와 광주적십자병원은 10여 일 동안 철야근무에 들어갔다. 웬만한 병원들이 다 문을 닫았을 때 물리치료실과 복도까지 임시 베드를 놓고 밀려드는 부상자 치료에 나섰으며, 구호용 담요도 계속 지급했다.  p209


이렇듯 적십자병원 직원들은 생명을 보호하는 적십자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하나가 되어 부상자를 구하는 의료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적십자병원은 오늘날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그러나 우여곡절도 많았다. 적십자병원은 경영이 어려워져 1996년 4월 서남대학교에 인수되어 서남대병원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서남대병원도 지난 2014년 폐쇄되었다. 서남학원이 병원 부지에 대해 공개매각을 추진하자 5.18 관련 단체들이 사적지 훼손을 우려해 공공매입 요구를 계속해 왔다. 다행히도 광주시가 2020년 현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였고, 앞으로 원형을 보존해 역사교육 장소로 시민들에게 개방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적십자는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활동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해방시기에도, 한국전쟁 때도, 4.19 혁명 때도, 5.18 광주적십자운동 때도 그랬다. 이번 글을 쓰면서 스스로 지난 역사 속에 적십자 활동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또한 누군가를 돕는 일도 진정한 용기가 없다면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앞으로도 광주적십자병원이 시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는 소중한 이름이자 의미 있는 공간으로 계속 자리하기를 바란다. 나는 이 곳이 역사교육 공간으로 재탄생하여 입장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다시 광주적십자병원을 찾아와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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