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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09. 2021

헌혈이 더 필요한 이유

오늘은 사무실에 1등으로 출근했다. 백팩을 책상 옆에 내려놓고 커피포트 물을 끓인 뒤 믹스커피 한 잔을 탔다. 아침에 먹는 믹스커피 한 잔은 정말 달콤하다. 이걸 마셔야 멍한 정신도 깨고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옥상 테라스로 나가 앞 산을 멍하니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혈액 재고량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혈액원에 근무하게 되면서, 직책을 맡으면서 혈액 재고량에 부쩍 신경을 쓰게 된다. 휴대폰 화면이 열리는 동안 빠르게 생각한다. 밤사이 올랐을까, 내렸을까? 잠시 마음을 졸이는 순간이다. 재고량이 올랐으면 다행스럽고 안심이 되고 내렸으면 초조해지고 걱정이 된다. 변동되는 그래프에 희열과 긴장이 오고 가다니.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아침마다 현황을 살펴보다 보니 학창 시절 사회과목 시간에 배웠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자주 떠오른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되는 지점에서 가격과 균형 거래량이 결정된다는 원칙. 혈액에 있어서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헌혈은 건강한 사람이 자유의사에 따라 자신의 혈액을 기증하는 행위다. 그런데 혈액은 장기간 보관이 불가능하다. 적혈구는 최대 35일, 혈소판은 5일까지 보유가 유효하다. 그래서 혈액원은 의료기관에 수혈용 혈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혈액제제별, 혈액형별 적정 재고를 유지한다.


적정 재고기준은 과거 일정기간 혈액 공급실적과 공급증가율, 변동요인 등을 분석하여 설정된다. 적혈구제제 기준으로 5일 분이 적정 보유량이다. 5일분이 유지되려면 전국에서 하루 5천 명이 헌혈에 참여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헌혈하는 국민이 하루에 5천 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다.


매일 헌혈이 적정하게 된다면야 무슨 문제가 있을까. 하지만 병원에서 요구하는 혈액보다 헌혈이 적게 된다면, 즉 수요와 공급이 안 맞기 시작하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혈액보유 재고량은 날마다 뚝뚝 떨어진다.


그래서 혈액원은 혈액보유량에 따른 위기경보 기준을 두고 대응한다. 적혈구제제가 5일분 미만이면 '관심'단계, 3일분 미만이면 '주의'단계, 2일분 미만이면 '경계'단계, 1일분 미만이면 심각단계가 된다. 신종플루가 유행했던 2009년에는 혈액 보유량이 1.8일분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코로나가 극심했던 작년에는 학생과 군부대 헌혈이 끊어져 3일분 이하로 떨어진 날들이 많았다.


문제는 헌혈환경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는 거다. 저출산 고령화로 헌혈자수는 감소하는 반면, 수혈자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신종플루나 코로나처럼 재난상황이 발생하면 당연히 수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밖에도 연중 혈액이 부족한 시기가 있다. 학생들이 방학에 들어가는 여름과 겨울이 그렇다. 여름에는 장맛비가 와서,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서 사람들이 외부활동을 자제하면 이 또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근무하는 지역의 오전 시간 혈액보유 재고량은 2.9일이었다. '주의' 단계를 왔다 갔다 한다. 오늘자 아침 뉴스에는 수도권 코로나 확진자가 1,300명 대로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다시금 사회적 멈춤이 필요하다고 한다. 여파가 여기까지 올지 모른다. 아침까지 하늘 뚫린 듯 내리던 장맛비가 낮시간 멈췄는데 내일과 모레 다시 비가 온다고 한다.


원거리 출장이 많은 지역이라 헌혈버스는 오늘 아침 7시부터 차례로 헌혈자들을 만나러 떠났다. 그러고 보니 아침 일찍 차를 타고 헌혈 현장으로 출발한 섭외 직원, 간호사, 운전사들이 사실 출근 1등이다. 헌혈자들의 참여와 그들의 노력으로 다행히도 오늘 하루 헌혈량은 공급량을 넘을 것 같다.


우리는 언제 코로나 이전 헌혈량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얼른 코로나가 끝나서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지고 그 이전만큼 헌혈이 늘어나길 희망해 본다. 요즘 신경 쓰는 일이 많다 보니 컨디션이 좋지 않아 계속 헌혈시기를 놓쳤다. 이번 주말 재충전해서 다음 주에는 나도 꼭 헌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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