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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Mar 02. 2020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조손가정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내겐 너무 두꺼운 책 안나 카레니나. 읽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이 두꺼운 책을 톨스토이는 어떻게 쓴 것일까. 정말 대단하다. 내가 비록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아내 책이라 책꽂이에 꽂혀 있지만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얕은 지식으로 이 책의 첫 구절만큼은 익히 알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행복한 가정의 요소는 무엇일까 생각한다. 불행한 요소가 없다는 것. 온전한 가족 구성원의 존재, 가족의 건강, 경제적 안정 등 누군가에게는 가장 평범한 것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작부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적십자사에서 일하면서 이웃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많이 접했다. 우리 조직이 하는 일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드리는 일이다 보니 이곳저곳 봉사회를 통해 접수된 실태조사서를 많이 받아보게 되었다. 실태조사서에 기재된 내용들을 보면 기구한 사연들도 많았다. 평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안 좋은 일이 연거푸 겹쳐 발생한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조사서를 읽으면 나는 내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후원이나 도움으로 연결해 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몇 년 전 본사에서 다음 희망해에 올릴 사연을 모집하고 있었다. 온라인 모금을 위해서였다. 나는 청나적십자봉사회가 어버이결연을 맺고 있는 한 조손가정을 온라인 모금 대상자로 신청했다. 김 할아버지(가명) 가정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당시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와 어린 두 손녀를 돌보며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와 같은 나이셨다. 김 할아버지는 아픈 무릎에도 작은 리어카를 끌고 하루 2~3시간 파지를 주으러 다녔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생계에 보탬이 되지만 매일 병원을 다녀야 하는 할머니를 위해선 긴 시간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그에게도 한때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큰 아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불행이 닥치면서 할머니마저 그 충격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작은 아들은 비슷한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울증이 있긴 했지만 가정도 꾸리고 어여쁜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우울증이 재발하면서 작은 아들은 결국 집을 나갔고 며느리마저 아이들을 남긴 채 집을 떠나 소식이 끊겼다. 그렇게 김 할아버지 가정은 조손가정이 되었다.


김 할아버지 사연을 글로 정리해 사진과 함께 본사에 제출했다. 이 사연은 다음 희망해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10일간의 모금이 시작되었다. 10일 동안 500명이 '좋아요'를 누르면 500만 원의 기부금이 전달되는 프로그램으로 들었다. 이 돈이 주어진다면 할머니의 병원비, 병원을 오갈 때 타는 장애인 이동지원차량 해피콜 이용비, 가족 생활비에 보탬이 된다.


내가 올린 사연이었기 때문에 모금이 잘 마무리되기를 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500명 정도면 금방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마감일이 다가오는데도 '좋아요'가 150여 명이나 부족했다. 혹시 후원을 못 받을까 봐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만나는 사람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좋아요'를 눌러 달라고 요청했다. 가까운 봉사원들에게는 문자메시지도 보내고, 봉사원 교육을 받으러 온 봉사원들에게도 교육 시작에 앞서 프로그램 참여를 얘기했다.


다행스럽게도 마감 결과 500명이 넘었다. 공유 및 댓글까지 참여한 사람까지 합치면 1,600여 명이나 되었다. 이밖에 직접 기부한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 주변에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참 많고, 십시일반의 힘이라는 것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실감했다. 감사의 순간이었다.


모금기간이 종료되고 기금 집행이 시작되었다. 김 할아버지는 지원기간 동안 할머니 병원비와 손주들을 위한 주부식비, 외식비, 난방비 등을 지출하면서 고마워하셨고 행복해하셨다. 할머니의 건강도 다소 좋아졌었다. 할아버지나 가족들의 이야기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는데, 지원기간 동안 조금씩 감각이 호전되었다.


사업비를 집행하고 나면 지원처에 결과보고라는 것이 뒤따른다. 집행 보고를 위해선 영수증을 잘 챙겨야 하는데 병원비, 택시비 등 소액결제가 많아 할아버지가 영수증을 잃어버리거나 못 받은 경우가 있었다. 다달이 증빙서류를 재발급받기 위해 시설관리공단을 다녔다.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사실 모금기간이 종료되고 한 달 뒤쯤이 되었나.. 모금사업 집행 초기에 이 사연을 본 KBS 현장르포 <동행> 작가분이 연락을 하셨다. 김 할아버지 가족의 이야기를 방송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분명 이 가족에게 더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반년이 지나면 다시 금전적으로 어려워질 텐데 이 프로그램을 통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연봉사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봉사원이 가서 김 할아버지를 여러 차례 설득했지만, 결국 어르신은 출연을 반대했다. 아이들이 상처 받을까 봐 걱정이 되셨던 것이다. TV에 손주 얼굴이 나가면 다른 아이들이 알아보고 혹여 왕따를 시키지 않을까,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 김 할아버지는 끝내 방송 출연을 포기했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뜻을 존중했다.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건 어르신이니깐.


사업이 다 끝날 즈음 나는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었고, 이어서 타 지역에서 몇 년간 근무하게 되면서 김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하시는지 친구 신청이 와서 수락하였더니 성경구절이나 교회 관련 내용들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난주 궁금하던 차에 담당했던 봉사원님께 연락을 했다.


"김 할아버지네 계속 다니세요?"

"그럼요. 우리가 계속 맡고 있지요." 하시면서 그 후의 상황을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뇌졸중이 와서 거동을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아이들은 잘 커서 중고등학교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디 주변에 도와줄 데 있으면 알아봐 줘요."라는 말씀을 하신다.

마음이 무겁다. 생각이 많아진다.


<사진 출처: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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