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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Feb 02. 2020

잊을 수 없는 3통의 편지

나의 적십자 다이어리

누구든지 소중한 건 오래도록 간직하기 마련이다. 나도 그렇다.  

    

학창 시절 친구나 연애시절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를 지금도 가지고 있다. 군대를 제대하고 처음 아르바이트해서 직접 사 입었던 패딩, 입사할 때 부모님이 사 주셨던 여름 양복도 옷장 속에 보관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랑 영상은 평생 간직할 거다. 열어보는 주기가 점점 길어지지만, 유행 지난 옷이라 잘 입지도 않지만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추억하며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나는 소소한 것들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가. 시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고 있나 보다. 소소한 것들 중에는 지극히 사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생기거나 얻어진 것들도 있다. 제작했던 홍보물이나 기사 스크랩, 고민한다고 썼던 일지 같은 것들이다. 업무는 바뀌었지만 내가 만든 것들을 집으로 가지고 와 책꽂이에 두었다. 언젠가 또 볼 일이 있겠지 하면서 말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과거의 산물은 대개 촌스럽기 그지없다. 당시에는 많이 고민해서 잘한다고 만들었던 것들인데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자료들이 때로는 투박해 보여도 나를 돌아보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그중에는 고객에게서 받은 편지도 있다. 오랜만에 케케묵은 업무 바인더를 뒤적이다가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편지 3통을 다시 꺼내 보았다. 수혜자이셨고, 또한 기부자이셨던 한 분에게서 받은 편지였다.      




2006년 4월 사무실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수신자는 대한적십자사/충청북도지사 귀중이었다. 당시 나는 모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편지봉투 안에는 컴퓨터로 친 편지 한 장과 적십자회비 지로용지 3장, 2달치 전화요금 고지서, 건강보험료 의뢰서가 들어 있었다.      


발신인은 자신을 30대 후반의 남성이라고 소개했다. 살림살이가 괜찮았을 때에는 적십자회비를 꼬박꼬박 냈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고 방세랑 공과금이 밀려 있는 상황에서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를 받아보니 마음이 처량하고 착잡한 심정이 들더라고 했다.      


아직은 젊고 다른 사람에게 가야 할 혜택을 내가 뺐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에 동사무소에 도움을 청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론 굶어 죽을 것 같아서 가까운 푸드뱅크를 방문하셨단다. 카레, 짜장, 전복죽, 고추장 등을 받아왔는데 아쉽게도 정작 ‘쌀과 반찬’이 더 필요한데 없어서 기록만 남기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중에 형편이 되면 적십자회비를 낼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취직이 되거나 굶어 죽지 않기를 발원해 주면 고맙겠다고 요청하셨다.


이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이 편지가 마치 SOS처럼 느껴졌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기부 동참을 요청드린 것인데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이 답장을 주신 것이다. 이 편지를 팀장님께 보여 드리고, 도울 방법이 없는지 구호부서와도 논의했다. 우리는 그 집을 곧바로 방문해 보기로 했다. 팀장님과 나, 구호담당 선배 셋이서 적십자 구호품을 가지고 편지에 적힌 주소를 찾아갔다.      


주소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가정집 주택의 작은 방 앞에 서서 “안에 계십니까?”라고 안주인을 불러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을 들어서는 편지의 주인공을 만났다.      


“편지를 받고 적십자사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드렸다. 크지 않은 체구의 남성이셨는데 일을 구해 보기 위해서 교차로 광고를 보고 아침 일찍 용역회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준비해 간 구호품을 전해 드리고 돌아왔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편지가 사무실 팩스로 도착했다. 구호품으로 받은 쌀과 라면 중 라면 1개 반을 끓여 먹었더니 살 것 같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고 하셨다. 뜻밖의 방문과 지원에 감사하고, 도움을 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씀도 남기셨다. 이렇게 다시 편지를 써서 보내주신 성의에 너무나 감사했고, 희망의 온기를 조금이라도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단기로 다시 용역회사 일을 시작하였는데 15일 정도 일하면 먼저 밀린 공과금을 모두 납부할 수 있을 것이고, 푸드뱅크와 적십자의 지원품까지 함께 갚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구호품 비용까지 모두 갚겠다고 하셔서 다소 놀랐다. 자존심도 있으시고 워낙 의지가 강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괜찮아지시면 올해 적십자회비 5천 원을 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회신을 드렸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6월 10일. 마지막 세 번째 편지가 팩스로 왔다. 적십자회비를 내기 위해서 우체국, 은행, 편의점을 다녀왔는데, 하필 토요일이라 은행은 쉬고 지로용지는 재발행된 것이라 바코드 인식이 안 돼 대한적십자사 계좌로 돈을 송금했다는 내용이었다. 5천 원의 적십자회비도 감사한데 구호품 값을 포함한 금액을 보냈으니 돈을 제대로 써 달라는 당부의 말씀을 적어 보내셨다. 그렇게 그 분과의 서신은 끝이 났다.      


이 일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가 하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는 신념도 더욱 단단해졌다고나 할까. 도움을 주는 상황도, 도움을 받을 상황도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라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기부금을 받아서 어디에 쓰느냐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알리려 노력했다. 그런 변화를 준 편지였고, 경험이었다.


소중한 편지는 다시 바인더 속으로 들어갔다. 앞으로도 잘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물건이든, 생각이든, 기억이든 소소한 것들은 계속 쌓여 가지 않을까. 그때 편지를 보내 주셨던 분은 지금 어떻게 지내실까 문득 궁금해진다. 잘 지내고 계시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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