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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Aug 26. 2022

봉사도 돈이 든다

봉사는 몸만 있으면 할 것 같지만 사실 돈이 든다. 봉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봉사처를 찾아가려 해도 최소한 교통비는 들 것이고, 호우로 수해를 입은 지역 복구활동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본인 식사, 음료, 장화, 장갑 같은 준비물은 챙겨야 한다. (물론 주최 측에서 줄 수도 있겠지만)


게다가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남의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어릴 적부터 배운 민족이 아닌가. 조손가정이든 독거노인이든 북한이탈주민이든 다문화가정이든 누군가와 결연을 맺고 작은 무엇이라도 챙겨서 찾아간다 쳐도 돈이 든다. 그래서 봉사를 하려면 크든 작든 돈이 필요하고, 봉사회에서 기금을 마련하려 애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외부 후원을 받거나, 보조금을 받거나, 회원들의 회비로 충당하는 방법도 있다. 이밖에도 여러 방법들 중 하나로 바자(Bazaar)가 있다. 바자는 자선사업 기금을 모으기 위해 벌이는 장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영어의 바자에 모일 회(會)자를 결합해 바자회라고도 많이 말한다.


바자에는 각종 기증품이나 값싸고 질 좋은 물품들이 많이 나온다. 파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에 기금을 마련할 수 있어서 좋고,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물품을 구입하면서 좋은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지사에서 근무할 때 봉사회에서 하는 바자를 많이 다녀보았다. 사회봉사 담당을 할 때는 옆에서 같이 준비하기도 했다. 좋은 취지에서 하는 것이라 어디 하나 뜻깊지 않은 바자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다녀본 곳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바자를 하나 꼽는다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적십자 바자'가 먼저 떠오른다.


적십자 바자는 오랜 역사와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이 행사는 본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가 주최하는데, 공기업 기업체 주한외교사절단 부인 등 100여 개 부스가 설치되고 백화점에서 만날 수 있는 대기업 의류 브랜드도 참여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특히 유명 의류를 싼 가격에 사기 위해서 개장 몇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2011년 가을, 충북지사 사회봉사담당이었던 나는 충북자문위원회에서 이 행사에 참여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처음으로 적십자 바자에 가게 되었다. 자문위원회는 전국 총회를 마치고 단합된 분위기 속에서 이 바자에 부스를 하나 받아 기금 마련에 나섰고, 바자에서 팔 물건으로 여러 품목을 가져가지 않고 속리산 맑은 공기 속에 자라난 송이버섯를 준비하였다.


그해에는 채취량이 많아 자연산 송이버섯 가격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렇다고 해도 1kg 한 상자에 25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품이었다. 나도 말로만 들어보고 제대로 먹어본 적 없는 송이버섯. 그런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서울 강남이라 그런지 송이버섯의 진가를 알고 한 상자씩 사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매대 위에 송이상자가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운영시간이 다 끝나가는데 7상자는 팔지 못한 상태였다. 이날이 지나면 송이버섯의 맛과 향이 덜하여 상품가치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이대로 송이버섯을 다시 들고 청주로 돌아가는가 하는 생각이 조금씩 들 때쯤, 구세주가 나타났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일류 대기업 회장 부인이 우리 부스 앞을 지나다 들렀고 자문위원의 송이버섯 소개를 듣더니 "여기 송이버섯 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모두들 입꼬리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왼쪽 수행원은 지갑을 꺼내 계산을 했고, 오른쪽 수행원과 버섯 상자를 나눠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매대 위는 깔끔히 정리되었다.


운이 좋아서 모두 팔긴 했지만, 사실 비싼 물품으로 바자회에 나간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자문위원회는 다음 해에 청국장이랑 된장을 준비해서 바자에 한번 더 참석하였다. 그럼 이렇게 판매한 수익금은 어디로 갔을까? 다시 봉사활동을 위한 기금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


봉사활동은 이런 나눔활동의 사이클이다. 이런 걸 보면 이웃을 돕는 비영리 활동에서도 돈은 계속 돌아야 하고 커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기금이 잘 마련될 수 있을까 옆에서 함께 고민하고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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