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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Oct 14. 2022

원어민 선생 2명에 북한이탈주민 학생 1명인 영어교실

2010년 8월 청주에서 원어민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한 미국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북한이탈주민에 관심이 많으며, 봉사활동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미국 친구가 북한이탈주민을 위해 자원봉사하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이대로 흐지부지 끝나나 싶었는데 그가 대신 한 친구를 연결해 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미입니다."


그녀는 플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청주의 한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미국 뉴욕 출신으로 예일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는데, 북한이탈주민의 인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가 유엔본부에 근무해서 어릴 적부터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에 오기 전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나본 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반기문 총장이 충북적십자사 청소년적십자(당시 JRC) 출신이라고 하였더니 무척이나 반가워하였다.


2010년 11월 5일 북한이탈주민 영어교실은 그렇게 탄생했다.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두 번 수업을 열었다. 원어민 교사는 금세 여섯 명으로 늘어났다. 에이미를 비롯해 클라라, 앨리슨, 라라, 질리 등 원어민 교사들은 2명씩 짝을 이뤄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에이미와 클라라가 제일 많이 왔지만, 일이 있는 경우 돌아가면서 방문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학생이 적었다. 북한이탈주민은 외래어에도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다. 생활교육에도 교육생 참여가 저조한데, 영어수업을 들으러 올 사람은 더욱 적었다. 처음에는 북한이탈주민 2명에 원어민 교사 3명이 함께 영어수업을 하였는데, 다음 수업부터는 한 학생이 안 와서 북한이탈주민 1명에 원어민 교사 2명이 영어수업을 하였다.


영어를 공부하는 한국사람이라면 원어민 강사에게 돈을 내고도 배운다. 그런데 원어민 교사가, 그것도 2명씩 와서 영어를 무료로 가르쳐 준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업을 들을만한 북한이탈주민을 찾기는 어려웠다. 마지막 남은 1명의 학생도 대학 진학이 결정되면서 영어교실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어김없이 봉사하러 와 준 원어민 교사들이 고마웠다.  영어교실은 부득이하게 운영할 수 없지만, 한국에 남아 있는 동안 적십자 활동도 보여주고 다른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도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 


때마침 장미봉사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해 북한이탈주민과 강릉, 삼척지역을 견학하는 행복동행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 봉사회 임원분들에게 사정을 말씀드리니 원어민 교사들도 함께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셨다. 행사일인 2011년 4월 30일 새벽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 그 비를 뚫고 3명의 친구가 왔다.


참가자들은 강릉에 도착해서 북한 잠수함도 보고, 정동진 바다가 보이는 멋진 식당에서 식사도 하고, 백사장에서 게임도 하였다. 바닷가 백사장에서 북한이탈주민과 원어민 교사, 봉사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달려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을 하였는데, 모두 신나서 열심히 하였다. 국적이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외모가 달라도 서로 열린 마음이면 충분히 통하는구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도 이때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기억에 남는 활동들이 많았지만 이후 회사의 북한이탈주민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충북하나센터는 3년의 위탁기간이 끝난 뒤 타 기관으로 이관되었다. 적십자가 2005년부터 수행하던 정착도우미 사업도 정책적으로 종료되면서 일부 및 개별 봉사활동을 제외한 사업은 모두 마감하게 되었다.


때로는 어려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해야 하는 사업이 있다. 북한이탈주민 사업이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십자가 북한이탈주민 사업 초기에 앞장섰던 것은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역할, 남북을 잇는 역할이 주어진 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탈주민 지원은 누가 맡더라도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지금도 멈추지 않고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분들의 노력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길 응원하고 소망해 본다. 


  

<사진 : 위드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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