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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ul 22. 2021

달릴 수 있다. 나는 자유다.

지난 겨울 딸아이는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받았다. 갖고 싶었던 선물을 받아서 아이는 무척 기뻐했지만, 며칠 연습을 해 보더니 어렵고 힘들었는지 더 이상 타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도 아직은 하체가 약해서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인라인스케이트를 안 타기 시작하니 실력이 늘지 않고, 실력이 늘지 않으니 재미가 없고, 재미가 없으니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인라인스케이트는 현관에 고이 모셔져만 있었다.


해가 지나 아이는 7살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올해 초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하였다. 이사 간 아파트는 이전 아파트보다 세대수가 적어서 놀이터도 작고 하나뿐이다. 대신 그 옆으로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을 막아서 만든 트랙이 있다. 이 공간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모여서 논다. 제법 큰 애들은 두발자전거를 타고, 그 아래 아이들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제일 작은 아이들은 세발자전거랑 아기전용 전동외제차를 탔다. 오며 가며 언니들이나 또래 아이들이 인라인 타는 걸 보더니 아이도 다시 타고 싶었나 보다.


두 달 전쯤 저녁 해가 저물어갈 때 장바구니 카트에 인라인 장비를 몽땅 담아 아이와 트랙에 나갔다. 소싯적에 내가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서 애들 앞에서 뽐내기도 했다만 그건 옛날 얘기고, 인라인스케이트는 정작 모르니깐 어쩔 수 없이 유튜브에서 하우투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두 번 보여주고 "이렇게 따라 하면 돼."라고 알려줬더니 조금씩 따라 하는 거 같았다. 아이는 아빠 손을 잡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러다가 내가 몇 걸음 나아가 기다리고 여기까지 와 보라고 했다. 잘 따라 하길래 더 멀리 와 보라고 했는데 오다가 아이는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크게 찧었다. 엄청 아팠는지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기분을 잡쳤는지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고는 또 며칠을 타지 않고 쉬었다.  


띄엄띄엄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니 실력이 늘 리가 없다. 그래도 또 트랙으로 데리고 나갔는데 하루는 쩔쩔매는 우리 부녀가 답답했던지 이를 보다 못한 이웃 엄마가 나섰다. 그 집 딸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라는데 한 달여 만에 트랙을 신나게 돌고 있는 거라고 했다. 자청해서 우리 부녀를 돕기로 나선 이웃 엄마는 유치원생에게는 처음으로 특별히 알려주는 거라는 걸 강조하면서 인라인 보호대 착용법부터 앞으로 가는 법, 넘어지는 법, 멈춰 서는 법 등 몇 가지 팁을 전수해 줬다. 그 엄마가 워낙 터프하셔서 우리 부녀는 옆에 서서 말도 못 하고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특훈의 효과일까. 2주쯤 후 사무실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데 아내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이가 인라인스케이트 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놀라운 건 아이 실력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주중 내가 없는 사이 연습을 한 아이는 이제 감을 잡은 것처럼 보였다. 아빠가 멀리 떨어지면 가지 마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던 아이가 영상에서는 혼자서 트랙을 한 바퀴 다 돌고 일부러 넘어지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다리에 힘이 붙고 요령이 늘어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인라인스케이트 타고 동네 한 바퀴 하고 있다


주말에 집에 가서 함께 트랙에 나갔더니 이제는 집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한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모기가 달려들고 날벌레가 주변을 앵앵거려도 딸아이는 한 바퀴 더, 또 돌고는 한 바퀴 더를 외쳤다. 급기야 내가 없고 엄마랑 있을 때 신이 났는지 "달릴 수 있다. 나는 자유다."를 소리 내어 외쳤다고 한다. 아이가 어디서 그런 근사한 말을 떠올렸는지 신통방통 감개무량하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보면 남들보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하나씩 해 냈다. 뒤집기를 언제 하려나 했더니 때가 되어 했고, 언제 일어설까 했더니 또 힘을 내서 일어섰다. 언제 걸을까 했더니 한발한발 나아갔고, 언제 달릴까 했더니 이번처럼 홀로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건강하게 잘 크는 모습을 보니 아빠로서 흐뭇하다. 앞으로도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웃으면서 포기하지 않고 즐기면서 하나씩 해 나가기를 희망해 본다.



<사진출처: 제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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