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 가는 길에 금산사에 들르다

한 번은 가 보고 싶었던 김제 모악산 금산사

by 포데로샤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타지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아빠의 루틴이다. 그러나 지난주 금요일에는 집으로 직행할 수 없었다. 부하직원의 결혼식이 전주에서, 그것도 토요일 저녁 5시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애매했다. 청주 집에 올라왔다가 다음날 전주로 내려왔다 다시 올라갈까? 청주 집에 갔다가 다음날 전주 들러서 아예 광주로 내려올까? 아내는 한 주 안 와도 된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여러 경로를 떠올리다가 결혼식에 갔다가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토요일 하루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금요일에 집에 갔다면 토요일 아침부터 즐거운(?) 육아 타임이 펼쳐질 텐데 홀로 숙소에 남아서 늦잠도 자고 침대에서 인터넷 검색하며 뒹굴거리기도 했다. 그래도 예식까지 시간이 한참 남았다. 그래 결혼식장 가는 길에 가 볼만한 곳을 찾아서 들러나 보자. 포털사이트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여 빠른 길찾기를 한 뒤 동선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관심이 가는 장소를 물색해 봤다. 그러다가 김제시 모악산 자락에 있는 '금산사'를 방문지로 정했다.


바깥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었다. 가을장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중에 계속 흐리거나 비가 내렸는데 이 날은 날씨가 깨끗하게 맑았다. 하늘은 높고, 흰 구름은 두둥실 떠갔다. 낮 기온이 33도까지 올라서 너무 더운 게 흠이었지만, 가을 햇볕은 우리 몸에도 보약이고 곡식도 여물게 한다지 않는가. 얼추 1시쯤 방을 나와 금산사로 차를 몰았다. 배가 약간 고팠지만 절 입구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한 그릇 먹기로 했다. 그렇게 초행길을 1시간 운전해서 금산사 초입에 도착했다. 어디나 절 입구 풍경은 비슷하다. 주차장이 있고 식당이 모여 있다. 차를 주차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 출연이라고 간판에 적혀 있길래 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사장님. 산채 비빔밥 하나 주세요."


산채비빔밥 하면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 위에 산채나물이 올라가 있고 고추장을 비벼서 먹으면 일미다. 그런 산채비빔밥이겠지 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사장님이 돌솥비빔밥을 가지고 오신다. 분명 난 산채비빔밥을 시켰는데.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니 돌솥비빔밥이라고 적힌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고 계신 노부부를 보니 그분들도 돌솥비빔밥을 드시고 계셨다. 이게 이 동네식 산채비빔밥인가 의아했지만 군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나는 돌솥비빔밥도 잘 먹는다. 그런데 이 날은 야외 온도 33도에 지글지글 돌솥에 든 비빔밥을 먹으니 속에서 열기가 올랐다. 그래도 맛은 좋았다.


산채비빔밥? 돌솥비비밤?


밥을 다 먹고 계산하면서 주인집 아들 같아 보이는 젊은 남자에게 "여기서 금산사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으니 "걸어가면 15분쯤 걸립니다. 차 타고 올라가시면 금산사 바로 앞까지 갑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시간이 넉넉하면 천천히 걸어 올라가겠는데, 예식 때문에 머무를 시간이 대략 정해져 있고 걸으면 땀도 날 것 같아서 주차비와 입장료를 내고 절 아래에까지 차를 가지고 올라갔다. 차에서 내리니 얼마 전 원적 하셨다는 태공 송월주 스님 특별전시회장이 크게 보였다. 전시회를 제일 마지막에 보기로 하고 나는 본격적인 사찰 관람을 위해 보제루를 향한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금산사 보제루


보제루는 2층 누각식 건물이다.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통로 역할을 한다. 잦은 외침에 따라서 승병이 조직되고 사찰이 승병의 결집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절에 누각이 세워졌다고 한다. 올라가면서 내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점점 느릿해졌다.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고 보제루를 통과하니 드넓은 터에 금산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탁 트인 공간을 보니 마음이 뻥 뚫린 듯했다. 그리고 보제루 뒤편으로 쇠귀 신영복 선생이 쓴 '개산천사백주년기념관'이라는 한글 현판이 보였다. 사람은 떠나가도 글씨는 남는구나.


금산사 미륵전(국보 62호)


멀리서봐도 웅장한 미륵전이 가장 먼저 보였다. 국보 62호다. 미륵신앙에 있어 상징적인 법당이다. 전각을 한 바퀴 돌고 안으로 들어갔다. 미륵전 안에 거대한 미륵 삼존불이 우뚝 서 있는데 중앙의 미륵불이 11.8m라고 했다. 미륵전의 높이만큼이나 컸다. 밖에서 만들어서 안에다 설치한 것일까 아니면 안에서 만들어 쌓아 올린 것일까 궁금함이 잠시 들었다. 나는 삼배를 했다. 가족을 위한 기도, 직원들을 위한 기도, 나를 위한 기도 순으로 했다. 이후부터는 요소요소에 있는 문화재를 관람했다. 석련대(보물 23호), 오층석탑(보물 25호), 방등계단(보물 26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석등(보물 828호)를 둘러보았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함께 들으면 의미를 잘 알고 이해도 쉬울 텐데 매번 수박 겉핥기 식 관람만 한다. 그래도 좋다.


석련대(보물 23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좌), 방등계단(보물26호/우)와 오층석탑(보물 25호)
대장전(보물 827호)과 석등(보물 828호)


대장전 안에서는 한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하셨다. 정확히 예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가 절내에 울려 퍼졌다. 마음의 평안을 주는 일정한 소리였다. 나는 대장전 옆 그늘이 진 명부전 기단 자리에 앉았다. 땀을 식히며 별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휴대폰을 꺼내 보기도 했다. 예전에 한 스님과 한석규 배우가 나와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고 했던 통신사 광고가 있었는데 나는 절에서도 세상사가 궁금해서 휴대폰을 끄지 못하고 중간중간 꺼내 보았다.


떠날 시간이 가까워져서 보제루를 지나 주차장으로 내려갔고 마지막으로 얼마 전 원적 하셨다는 태공 송월주 대종사의 전시관을 보았다. 금산사 주지와 조계종 총무원장을 거쳤고, 민주화 운동과 사회활동, 저소득 취약국가 지원사업에 앞장서셨던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세계 곳곳에 지원을 했고, 특히 캄보디아에서 우물을 지원하였던 활동상을 보았다. 벌써 10년이 흘렀지만 적십자 봉사원들과 함께 캄보디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우리도 우물을 전달했었다. 직접 연락하고 기획해서 만들었던 봉사프로그램이라 애착이 가는 봉사활동이었다. 그때 전달한 그 우물들은 잘 작동되고 있을까.


어느덧 금산사에서 내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끝났다. 또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오늘의 방문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래도 아~ 거기 가 봤었는데 할 수 있는 곳이 하나 더 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사는 동안 미국도 가 보고 유럽도 가 보고 남미도 가 보고 아프리카도 가 보고 싶지만, 또 어떤 때는 우리나라에서 안 가 본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아름다운 문화재만 관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금산사에서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인 전주를 향해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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