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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Oct 25. 2021

아빠 나 업어줘

"아빠 요렇게 앉아봐."


딸아이는 어디 나갔다가 힘들 때 나에게 쪼그려 앉아보라고 말한다. 힘이 드니 업어달라는 신호다. 내가 앉는 동작을 취하면 아이는 내 뒤로 가서 업히려 한다. 나는 그걸 알고 개구리뛰기를 한 번 한다. 폴짝. 그러면 아이는 아빠의 장난에 맥 빠진 표정을 지으며 눈치를 살피다가 아빠가 다시 앉는 걸 보고는 냅다 달려와서 등에 업힌다.


이제 제법 컸다고 묵직하다. 가끔은 아기띠를 하고 딸아이를 안아주던 그때가 떠오른다. 날 올려다보며 해맑게 웃음 짓는 딸의 모습을 이제는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얼마 전 딸아이가 나에게 했던 "아빠 시간은 왜 자꾸 앞으로만 가요?"라는 질문처럼 인생은 한 번이라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다. 아이를 업어주는 이 시간도 머지않아 끝이 날 거라는 자명한 사실을 종종 생각하곤 한다.


지난 일요일에도 나는 아이를 업어주었다. 이날은 아내가 속리산에 가서 좀 걷다 오자고 했다. 우리 가족 오랜만에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출발한 뒤 아내가 아이에게 차에서 책 읽으면 멀미 난다고 누차 말하는데도 아이는 책을 읽었다. 그렇게 30분쯤 지나니 아이는 멀미 난다고 난리다. 속리산 주차장에 차를 댔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지러워 못 걷겠다며 내게 업어달라고 했다.


시작부터 아이를 업었다. 업고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길 맞은편에 호떡집이 보였다. 할머니가 굽는 호떡이 두툼하니 맛있어 보여 다들 먹고 싶다고 했다. 호떡을 먹으려면 아빠 등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하니 아이는 알아서 쑥 미끄러져 바닥에 내려왔다. 호떡이 멀미약이다. 얼마 업지 않았는데 스스로 내려오다니. 하하. 우리는 각자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먹으면서 매표소를 향해 걸어갔다.


매표소를 지나서는 익숙한 코스대로 움직였다. 속리산에는 세조길이라는 좋은 산책로가 있다. 사부작사부작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수변길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법주사가 있는 아래 방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인 법주사에 들어가 사찰 안을 일일이 둘러보았다.


모든 걸 구경하고 법주사를 나서는데 딸아이가 힘들다며 업어달라고 했다. 올게 왔구나. 얼마나 걸었을까 궁금해 휴대폰 앱을 열어 보니 8천 보가 넘었다. 아이에겐 다소 긴 코스였다. 메고 있던 가방을 아내에게 주고 아이를 그 자리에서 업었다. 주차장까지 거리가 제법 멀었지만 업다 쉬다를 반복하며 잘 도착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와 아이는 꿀잠에 빠졌다.


그런데 이날 너무 무리해서였을까 일로 인해 피로가 쌓였기 때문일까. 수요일부터 허리 통증이 심하게 오더니 결국 구부정한 자세가 되고야 말았다. 어제는 아이가 업어달라고 해도 업어줄 수가 없었다. 빨리 통증이 사라져야 다시 업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려면 한동안은 술도 참고 운동에 매진해야겠다. 아빠 허리가 회복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렴~~ 



<사진: 책 '어부바 어부바'>


(1주일 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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