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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an 19. 2022

나는 매주 딸에게 손편지를 쓴다

요즘 나는 매주 한 통씩 딸에게 손편지를 쓴다. 지난주까지 7통의 편지를 썼으니 어느새 7주가 흘렀다. 편지는 주중에 쓴다. 금요일 밤늦게 집에 가서 산타가 선물 놓고 오듯이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주중에 바빠서 편지를 못 썼을 때는 아이 자는 모습 확인하고 나와서 편지를 쓴다. 매번 편지를 놓는 자리는 같다. 아이는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아빠 편지를 발견한다. 아내가 먼저 "아빠가 또 편지 썼네."라고 알려줄 때도 있다.


편지지는 다이소에서 산다. 일주일에 천 원이면 족하다. 아이는 비싸고 싼 걸 따지지 않는다. 받았다는 것만 중요하다. 나는 다이소에서 파는 편지지가 8살 우리 딸 수준에 딱 맞아서 선호한다. 디즈니 캐릭터, 애니메이션이 그려진 편지봉투는 그 자체만으로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편지지는 가급적 새로운 걸 쓴다. 편지지 세트에는 편지지 8장과 봉투 4개가 기본으로 들어있는데 내가 한 번 쓰면 나머지는 딸이 달라고 하는 편이다.


아이에게 손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가 있었다. 주말부부라 일주일에 한 번 아이를 만난다. 아빠로서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아이가 글을 자연스럽게 읽어서 새로운 읽을거리를 주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막상 만나서 말로 이야기를 해 보면 아이의 집중력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본인이 삼키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말'보다는 '글'로 전달하면 호기심이 생겨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편지를 시작했는데, 처음 반응이 나름 괜찮다. 사실 편지 내용이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내용도 써 봐야 딱 2장 정도라 많은 양도 아니다. 그래도 아이는 편지를 열어서 소리 내어 끝까지 읽는다. 다 읽은 뒤에는 편지를 자기만의 보물 공간인 하리보 케이스에 보관한다. 반복된 행동은 기대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아이도 은연중 기다린다.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난다. 딸아이가 편지 쓰기를 흉내 낸다는 점이다. 지난주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코로나19 조심하세요. 건강하세요.'라고 써 놓고는 더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았나 보다. 나에게 달려와서 뭘 더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밀스럽게 말했다. 밥도 잘 먹고, 약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겠다고 하랬더니 '아하~~~'하고 다시 책상으로 후다닥 달려가 마무리를 지었다. 편지를 받은 엄마가 "아빠에게도 편지 써."라고 하니 "아빠 하는 거 봐서."라며 밀당도 한다. 이 모든 나비효과의 출발은 나였는데 말이다.


부작용도 있다. 아내가 삐진 투로 말한다는 점이다. "이것 봐. 이것 봐." 하면서 예전에는 그나마 편지라도 쓰더니 요즘은 아이한테만 편지 쓰고 자기한테는 편지 한 통 안 쓴다고 톡 쏜다. 사랑이 식었다는 둥, 인간이 변했다는 둥 말한다. 이럴 때 진땀이 스친다. 어느새 이번 주도 수요일을 지나가고 있다. 이번 주는 또 뭐에 대해 쓰나. 브런치도 그렇고, 손편지도 그렇고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래도 10번째, 20번째 편지를 써 달라는 딸아이의 주문에 다시 펜을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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