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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데로샤 Jan 30. 2022

아빠 나한테 절 해봐

지난 금요일, 유치원에서 설 민속놀이 한마당이 열렸다. 아이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유치원에 갔다. 늦은 밤 집에 도착해서 오늘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에게 물어봤다. 젓가락으로 짱구과자 옮기는 시합도 하고, 가래떡도 썰고, 원장님 덕담도 듣고, 절하는 법도 배웠단다. 그러더니 내 앞에서 절하는 법을 보여주겠다며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이마까지 올리고 하나둘 숫자를 세며 엎드려 절을 했다. 아이 하는 짓이 신통방통했다.


아이 절 받고 여기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뚱딴지처럼 이번에는 나보고 자기한테 절을 해 보란다. 아빠 절하는 게 맞는지 보겠단다. 세뱃돈도 주겠단다. 가끔은 이런 엉뚱함이 딸아이의 매력이다. 동방예의지국 출신 아빠는 절이란 모름지기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것이므로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가 물러서지 않았다. 딱 한 번, 진짜 딱 한 번만 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서 방으로 달려가 아빠가 절하면 줄 게 있다며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다.


눈치를 보니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이제 잠도 재워야 하는데. '아. 할까? 말까?.' 어딘가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절을 했다는 이야기를 본 것도 같은데.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마냥 상하 관계는 아니니깐. 아이의 엉뚱함을 한 번 받아 주기로 했다. "좋아. 딱 한 번 보여줄게. 남자는 절을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아이 방향으로 절을 하였다. 아이는 신이 났다. 곧이어 아빠에게 다가와 주먹 속의 쪽지를 건네주었다. 나는 뭘까 궁금해서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건 바로 똥 그림이었다.


“뭐야. 이거. 너 이 녀석~~~~~.”


아빠의 호통에도 아랑곳없이 딸아이는 깔깔거리며 안방으로 잽싸게 도망갔다. 이미 저만치 멀리. 겉으로는 씩씩거리는 척하며 그렇게 또 한 번 아이의 장난에 속아 넘어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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