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Aug 09. 2023

청소년단체 활동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잼버리. RCY.  청소년.

적십자에 근무하면서 '이렇게 일하다간 죽을 수도 있겠는데'라는 썸뜩한 생각을 한 번 떠올린 적이 있었다. 2013년 10월 청소년적십자(RCY) 담당으로 근무한 지 1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학창 시절 RCY 단원 출신으로 청소년업무에 진심이었던 선배 K가 그해 7월 팀장 보직을 받아 타 기관으로 가고 지사 막내인 후배 K가 후임으로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J사무처장님이 운영 상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후배 K를 3개월 만에 타 업무로 다시 보내고 나를 투입시켰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주어진 일이라면 힘들어도 피하지 않고 해 왔다지만, 새로운 업무에, 프로그램이 많은 10월에, 그것도 꽉 짜인 스케줄 가운데 투입되다 보니 나는 시작부터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청소년적십자(RCY) 업무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습과정 외에 특별활동으로 적십자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운영하고, 단원 및 지도교사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이다. 그런데 도 업무를 총괄하는 담당자는 본부장님 빼면 나 혼자인데 관리할 학교는 초중고 400여 개에다 등록단원은 14,000명이 넘었으니 어마무시한 스케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걸음마부터 배워야 할 시기에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다.


첫날부터 별을 보고 퇴근했다. 낮 시간에는 학교 RCY지도교사에게서 오는 문의나 요청을 전임자에게 물어가며 처리하고 일과가 끝난 저녁에는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프로그램 계획을 문서로 짜며 행사 준비를 해야 했다.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나의 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면밀한 계획, 완벽한 날씨, 안전한 환경, 보조인력, 행사 준비물, 질서 있는 참여, 뒷마무리 등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 10월에는 봉사 프로그램으로 연탄 나눔도 있었고, 다른 프로그램도 캠프도 있었다. 크든 작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어 운영하고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일이 담당자의 역할이었다.


2013.10.28 사랑나눔 연탄나눔 봉사활동


10월 한 달을 꼬박 하루도 쉬지 않고 고강도로 일했다. 워라밸도 없었고,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으며, 와이프와는 생이별의 시간이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자리 잡은 요즘 같아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돌이켜 보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앞서 청소년 업무를 오래 했던 선배 K는 4년이나 청소년 업무를 하고 떠났고, 선배 L은 입사하고 7년을 이어서 했다. 이미 퇴직하신 한 선배님이 하신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청소년 행사를 진행하느라 자녀 출산을 못 가봤다고 하셨다. 행사가 숙박형으로 진행되면 어찌 되었건 행사를 위해서, 단원들 안전을 위해서 빠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다들 청소년단체 활동을 위해 한 시절 자신의 젊음을 갈아 넣었다.


개그맨 김신영이 부른 주라주라라는 노래에 '가족 같은 회사, 내 가족은 집에 있어요'라는 가사가 나온다. 청소년적십자 담당자는 다른 가족 아이들에게 좋은 체험과 추억을 제공하기 위해 내 가족과는 잠시 떨어져 지내는 일이기도 했다. 


이미 각오하고 시작했지만 한 달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다 보니 몸의 피로가 쌓였고 앞으로도 계속 이러려나 싶은 마음에 걱정스러운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그렇지만 고된 순간이 계속 정점을 향해서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신은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만큼 시련을 준다는데, 당면한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조금씩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가을을 보내고 겨울방학까지 지나면서 전임자가 계획해 둔 프로그램을 모두 다 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직접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추진할 때가 돌아온 것이었다.


RCY에서 일하며 했던 여러 프로그램들 (스키캠프, 벽화그리기, 우정의선물상자 만들기 등등)


신학기가 되었고 다시 단원모집의 시기가 돌아왔다. 당시 RCY 홍보모델이 가수 레드벨벳이어서 단원모집 포스터를 학교에 배부하고 홍보를 했다. 가끔은 RCY 지도교사가 아닌 학교 선생님이 사무실로 전화를 하셨다. 자녀가 레드벨벳을 너무 좋아한다며 죄송한데 포스터를 구할 수 없겠느냐는 연락이었다. 그러면 여유분 중에서 포스터 몇 장씩 보내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청소년업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4월 12일 용인 에버랜드에서 중고생 RCY단원 합동입단선서식을 끝내고, 4월 19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초등학생 천여 명 대상 합동입단선서식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는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온 나라 청소년활동이 일시에 멈췄다. 그리고 10일 후 나는 갑작스레 본사 발령이 나서 7개월 여에 불과했지만 RCY 업무를 떠나게 되었다.



짧고 굵게 청소년 업무를 하면서 내가 보고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청소년단체 활동을 하는 교사에게 승진가산점을 주는 정책이 그때는 있었지만, 그걸 떠나 청소년단체 활동에 애정 있는 선생님들이 꽤 많으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선생들님의 열정 어린 지도하에 학생들이 학교 내외에서 체험하고 봉사하고 교류하는 색다른 경험을 갖게 된다는 걸 눈으로 보게 되었다. 또한 이 활동을 좋아하는 학생 단원들도 가까이에서 많이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참 순수해 보이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 나도 많이 배웠다. 프로그램을 만들어 제공했을 때 조기에 참가자가 마감되면 기분이 좋았고, 현장 프로그램이 탈없이 마무리되면 내 마음도 뿌듯하고 참가자들도 기분좋게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씩 프로그램을 잘 마치면서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주변의 기대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던 것 같다.


그때 알게 된 지도교사 분들과 지금도 연락도 하고 현재 하고 있는 헌혈업무에 있어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학교 헌혈 섭외가 어려우면 선생님들에게 상의를 하는데 그러면 발벗고 도움을 주시려고 한다. 그 밖에도 고등학교 헌혈을 가면 학교장님과 보건선생님을 뵙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럴 때 "제가 예전에 청소년적십자 지도교사를 10년 정도 했습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적십자에 애정이 많아요."라며 청소년단체 지도교사로서 지도했던 과거를 슬며시 꺼내시는 선생님들이 계셔서 대화도 한결 수월하게 되고, 업무도 잘 추진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열정과 땀으로 이어왔던 청소년활동이 갈수록 축소되어 가는 상황이 못내 안타깝다. 그건 내가 일하고 있는 적십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카우트연맹, 해양소년단연맹, 한국청소년연맹, YMCA, YWCA 등 단체들이 모두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토요일 매일경제에 실린 신현웅 웅진재단 이사장님의 기고를 보면, 지난 10년 간 청소년단체마다 단원이 10분의 1 이하로 급감했다고 한다. 한국보이스카우트는 2000년 40만 명이었던 단원이 현재 1만 6000명으로 격감했다고 한다. 이번 새만금 세계잼버리에 영국 스카우트는 4500명이 참가했는데, 주최국인 우리나라는 겨우 3,800명이 참가했다고 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교육청 별로 학교 업무를 정상화한다며 교사의 청소년단체 지도업무를 배제하는 행정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승진가산점을 부여하지 않는 조치를 취한 것이다. 청소년단체 활동은 선생님의 지도하에 학생들이 참여해 왔는데, 가산점이 없으니 나서는 지도교사가 없고 그렇다 보니 청소년 단원도 프로그램도 위축되는 것이다.


승진가산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활동의 가치를 알고 여전히 청소년적십자(RCY) 지도교사로 활동하는 소수의 선생님이 남아 있는 것이 감사하다. 그나마 현재는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8월 1일부터 12일까지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다.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청소년 축제에 158개국 4만 3000명의 스카우트 단원이 참가했다. 


그런데 잼버리가 다른 이슈를 모두 덮을 정도로 이슈다. 잼버리의 성패를 떠나서 이를 지켜보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청소년은 미래의 주역이고 세계적인 추세에서 청소년단체 활동은 이렇게나 중요한데, 이 거대한 국제행사를 마치고 나면 청소년단체 활동에 대한 정부와 교육계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고, 청소년단체 활동이 다시 전성기를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청소년들을 위한 행사가 그저 단발성 행사로 마무리되지 않고 청소년단체 활동에 대한 활성화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정작 우리가 행사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일까? 필연일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