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시겠지만 오후 3시에 창고로 다 모여 주세요."
사내 메신저로 단체 쪽지가 왔다. 한 단체에서 취약계층 지원으로 기탁한 20kg 쌀 200포가 이 시간에 창고에 들어올 예정이니 직원들 다 같이 쌀을 내리자는 사회협력 담당자의 요청이었다. 직원이라고 해 봤자 휴가자, 출장자, 외근자 빼고 나면 10명 남짓. 여직원이라고 예외도 없다. 그래도 보기 좋은 건 이건 너희 부서 일이니 알아서 하라고 엉덩이 빼는 분위기가 아니라 다 같이 하는 게 당연한 듯 모인다는 거다. 그렇게 해야 다른 부서에서 일이 생겨 도움을 요청할 때에도 손쉽게 협조가 된다.
이날 들어올 쌀은 무게로 치면 4톤. 건물을 지을 때 창고에 지게차가 들어갈 수 있도록 지었으면 참 좋았겠건만 그렇지 못해서 손발이 고생이다. 구호품이든 기부물품이든 물건이 들어오면 항상 직원들이 손수 상하차 작업을 해야 한다. 10kg 쌀은 크기도 적당하고 나르기가 괜찮은데 20kg 쌀은 부피도 크고 무게도 있어서 옮기기에 더 수고스러운 면이 있다. 그래도 기부해 주신 게 감지덕지한 일이다.
오후 3시가 되니 땀날 걸 대비해 반팔 차림을 한 직원, 옷이 더러워질 걸 대비해 외투를 걸친 직원 등 각자 작업에 편한 복장을 하고 장갑을 준비해 창고에 모여들었다. 2.5톤 트럭은 창고 앞에 이미 대어진 상태였고 곧이어 운전사께서 차량 뒷문을 개방하자 안쪽으로 쌀 포대가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차에서 내린 쌀을 쌓아서 핸드파레트로 옮길 수 있도록 플라스틱 파레트 두 개가 창고 앞에 놓였다. 남직원 3명이 먼저 탑차에 올라갔고, 다른 직원들은 이어서 교차로 섰다. 그렇게 쌀을 한 포씩 옆으로 전달하고 마지막 사람은 무너지지 않도록 파레트에 잘 쌓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허리를 숙였다 폈다 돌렸다 하며 옆 사람에게 쌀을 전달하는 동작을 반복하니 허리가 살짝 뻐근하고 땀도 났다.
"우리도 신입직원 뽑을 때 체력테스트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엉뚱하지만 가끔 이런 농담을 한다.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하는 소방관이나 도시를 깨끗하게 만드는데 앞장서는 환경미화원처럼 매일 강력한 파워를 요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우리가 하는 일에서도 그 일의 성격에 맞는 적정한 근육이 필요한 건 맞다. 왜냐하면 나눔이나 구호는 어찌 보면 성격만 다를 뿐, 물품을 상하차하는 물류이고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 신속하게 전달하는 배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입사 초창기 때까지도 ‘사랑의 쌀 한 줌 모으기 운동’이란 게 있었다. RCY 단원이 주체가 되어 전교생이 각각 자율적으로 편지봉투나 라면봉지 1개 정도의 쌀을 담아 학교에 가져오면, 지사에서는 지역별 수거일에 맞춰 차량으로 직접 순회하며 수거하고 그 쌀을 팔아서 기금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줬다. 그래서 매년 가을이면 RCY담당자는 쌀이 모였다고 하면 학교별 동선을 짜서 사무실 트럭을 끌고 가 포대에 잔뜩 담긴 무거운 쌀을 싣고 돌아왔다. 다음 날 다시 빈 차로 출장을 나가야 하니 사무실에 쌀이 도착하면 직원들 모두 현관에 모여서 거둬온 쌀을 입구에 옮겨놓는 일을 일주일 내내 했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면 누구보다 RCY 담당자는 기력이 쭉 빠진다. 퇴근길 삼겹살과 소주로 기력 보충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도내 학교에서 쌀을 다 거두면 인근 미곡종합처리장(RPC)에 또 다 싣고 가서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사실 이런 쌀은 상품성이 덜하다. 누구는 흑미를, 누구는 백미를, 누구는 현미를 가져와 하나로 섞이니 쌀이 균질하지 않아서 팔기가 어렵다. 다들 받기 꺼리는 쌀을 그마저도 우리 사정을 잘 아는 마음 넉넉하신 미곡종합처리장 사장님께서 받아주셨고, 이런 쌀은 떡 만드는 곳에 적당한 가격에 넘겼다고 들었다. 이런 일들에 직원들의 힘이 들어갔다.
이 밖에도 재난 시 대응하기 위한 구호활동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물류다. 재난이 날 것을 대비해 적정 구호품을 창고에 비축하고 지역별로 빠르게 가져다 드리기 위해 시군별로 분산비축을 한다. 즉 미리 필요물품을 구매해서 창고에 적재해야 한다. 물건이 올 때마다 다 같이 해야 한다. 힘든 상황은 큰 재난이 났을 때다. 재난이 나면 기존 구호품뿐만 아니라 기부금이 답지한다. 기부금은 빠르게 기금이나 물품으로 구매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호담당자에게 언제 물품이 가장 많이 들어와서 힘들었냐고 물어보았다. 2023년에도 충북에는 청주와 괴산지역에 큰 피해가 있어서 30억 원이 넘는 성금을 집행했는데 그때였냐고 물어보았더니 아니란다. 코로나 때였단다. 그때는 구호창고가 꽉 차서 외부에 창고와 주차장을 통째로 빌렸는데, 마스크, 손소독제, 생필품, 화장지, 생수, 라면, 빵, 음료수, 화장품이든 온갖 종류의 구호물품이 쏟아져 들어왔다고 한다. 직원들은 봉사원들과 함께 찜통 같은 창고 안에서 물품을 들여오고 확인하고, 개별 포장하고, 또 지역별로 내보내는데 구슬땀을 흘렸다.
이렇듯 우리가 하는 일도 현장에서 몸을 움직여야 완성이 된다. 그러니 적십자에 합격하면 사무실에서 행정업무만 하겠지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나눔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준비하기를 바란다. 그래도 모두 다 하는 일이고, 할 만한 일이고, 때로는 보람도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