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데로샤 Aug 08. 2020

그해 여름은 정말 더웠다

나는 여름이 반갑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더위에 약하기 때문이다. 만일 신이 있어 나에게 사계절 중 하나를 뺄 수 있는 선택권을 준다면, 나는 단연코 여름을 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열도 많고 땀도 많았다. 가뜩이나 핫한(?)데, 뜨거운 여름은 오죽 힘들겠는가. 내가 언제부터 이런 상태였는지 어머니에게 여쭤보면, "네가 어릴 적에 폐렴을 앓았는데 그때 아버지가 녹용을 어렵게 구해와서 먹였더니 그게 잘못돼서 그런 것 같다."라는 이게 맞나 싶다가도 왠지 짠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여름은 매해 돌아온다. 심지어 기후변화 때문인지 점점 길어지고 있다. 내겐 여름이라고 다 같은 여름이 아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더운 여름이 있고, 더 더운 여름이 있다. 최근 겪은 여름 중 가장 끔찍했던 여름은 바로 2018년 여름이었다. 그해는 기상청 관측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던 해였는데, 나도 그 여름에 하도 고생을 해서 정말 잊을 수가 없다.



2018년에 나는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2014년 4월 본사 발령을 받고, 한성대역 근처에 조그만 원룸을 얻었다. 첫 2년을 보내고, 다시 2년을 연장해서 살았다. 나의 서울살이는 길어지고 있었다. 그해 10월에는 부서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집 관리인에게 6개월 더 연장해서 살 수 있는지 집주인에게 얘기해 달라고 했는데, 다행히도 집주인은 전세금을 올리지 않고 기간을 연장해 주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7월 중순쯤인가. 장기 출장을 다녀오고 처음으로 에어컨을 틀어봤는데, 냉기가 안 나왔다. 5년째 쓰다 보니 냉매가 바닥난 것 같았다. 여느 때 같으면 연락해서 빨리 고쳐달라고 재촉할 텐데, 상황이 상황이라 말 꺼내기가 상당히 거시기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좀 참아보려고 했는데, 이건 도무지 참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원룸이라는 곳에는 맞바람이라는 게 없다. 한쪽은 창문이고, 그마저도 앞이 벽이고, 현관문은 열어놓고 살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열기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그냥 찜통인 거다. 이런 상황에서 에어컨이 고장났다. 하다 하다 참다 참다 집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어 에어컨이 고장났으니 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며칠 후 관리인에게 연락이 왔는데 에어컨 기사가 방문하려면 적어도 2주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 더위 속에서 이대로 지내야 한다니... 오 마이 갓!!!


하루는 퇴근하고 집에 있다가 이대로는 열사병에 걸릴 것만 같아서 늦은밤 거리로 나섰다. 열대야로 거리도 더웠지만 집안보다는 나았다. 대학가가 근처에 있어서 PC방에 들어가 두어 시간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열에 익은 몸뚱이를 식히고 새벽에 다시 집에 들어가 눈을 붙인 뒤 출근을 했다.


학수고대하던 에어컨 기사님은 만나지 못했다. 나는 퇴근하고 동생 집으로 피신하거나 아예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늦게 들어갔다. 중간에 휴가도 떠났다. 그렇게 하루하루 더위를 피하고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보니 어느새 더위의 정점이 꺾이는 순간이 왔다. 그렇게 그 집에서의 마지막 여름을 호되게 보냈다. 그리고 나는 10월 초 서울을 떠나 가족이 있는 청주로 아예 내려왔다.




얼마 전 남궁인 작가의 책 <제법 안온한 날들>에 나오는 '열사병'이라는 글을 읽으면서 지난 2018년의 그 폭염지옥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돌아왔다. 폭염과 열대야가 평년의 2배 이상이고, 7월 말에서 8월 중순이 더위의 절정일 거라는 예보가 나왔었는데, 결과는 틀렸다.


몇 주 전부터 장맛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하늘 뚫린 듯 쏟아지는 폭우로 인해 전국에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번 주말에도, 다음 주에도 비는 더 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내가 근무하는 적십자도 계속되는 비상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더운 걸 유독 싫어하는 나이지만, 올여름은 비가 계속 내려서인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오히려 이제는 이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고, 햇볕이 다시 쨍쨍 내리쬐는 날씨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피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왠지 다들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P. S. 내가 묵었던 서울 원룸의 주인은 왕년에 유명한 여가수였다. 집주인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4년 5개월을 보내도록 전셋값 한번 올려 받지 않은 그 주인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기본만 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