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크기는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의 크기에 의하여 평가되는 것 / 니체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 is a quote used in William Shakespeare’s Julius Caesar, in Act II, Scene 2.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캐나다 육군 웨스트민스터 보병 중대 상병인 아들은 이날 사격 훈련이 있다고 했었다. “아빠"하는 외마디 소리만 해놓고는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무슨 일이 난 거다.
스스로 이른 독립을 주장하며 집을 나가 사는 아들이 아빠에게 다급한 전화를 걸어왔다면 세 가지 이유다.
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한 일이 생겼던가,
따끈한 소식을 빠르게 전하기 위해서던가,
그저 보고 싶은 마음에 안부를 묻는 전화다.
그런데, 자식에 관한한 전화를 받는 입장에서는 왜 늘 긴장부터 되는지 모르겠다.
아들이 전화 걸어올 때면 나는 자주 경직한다. 나쁜 소식일까 하는 우려가 앞선 탓이다.
가능하면 자유롭게 살도록 내버려 두어서인지 행동반경이 큰 아들이다. 아웃도어 스타일이라 야간 산행을 좋아하고, 절벽 등반도 한다. 산에서 잠자는 일이 잦고, 총에 관심이 있어 gun license를 따고, 사격장에 자주 간다. 군인에 지원해 지난 4년 동안 가능한 많은 훈련에 야전생활을 즐긴다. 남이 회피하는 어려운 훈련이 그에게는 재미라 할 만큼 긍정적이며 도전적이다.
떨리는 아들의 목소리는 울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3분쯤은 지난 것 같다. 이럴 때면 시간이 참 길다.
"왜 울어, 아들. 무슨 일이야?"
그나마 찾은 말이 이런 궁색한 물음 밖에 없다.
언어는 꼭 필요할 때 자신의 존재를 감추며 사용하는 사람을 무색게 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 두렵고 떨리고 낭패해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는데 울음이 그 언어의 자리를 대신해 버린다. 언어란 따지고 보면 한계 상황에 다 달으면 명함도 못 내밀고 있지 않은가.
잠시 후,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드디어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내용은 충격적인 소식이다. 야전 훈련 중 총기 사고로 같은 부대의 규철 형 (제임스 최 상병)이 새벽에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아직은 정확한 사인을 모르고, 부대에서는 외부로 말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단속하는 입장이니 일단 알고만 있으라 한다.
제임스는 어릴 때부터 알아 오던 아이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그의 아빠와는 10여 년 이상 가까이 지내고 있다. 후덕하고, 남의 이야기 잘 들어주고, 궂은일에 자발적인 그런 아빠의 장남이다. 20여 년 해 오던 도시의 소매점 사업을 정리하고, 3년 전 인근 섬으로 새로운 사업을 인수해 잠적하듯 들어갔고 그 이후 몇 번 통화한 것이 다이다.
제임스는 아들보다 한 살 많았다. 아들은 그를 잘 따랐는데, 최근까지 같은 부대에서 선임인 제임스에게 많은 도움을 받으며, 그 때문에 군 복무가 재미있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충격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의 아빠와 엄마가 느낄 슬픔이 내 속에 고스란히 들어왔다. 뼈를 깎는다는 아픔을 일순간 느껴야 했다.
이 일을 어쩌나.... 그들에 대한 연민으로 고통하며 쓰렸다. 그렇다고 이 슬픔 중에 전화통화라도 하는 게 맞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오후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냈다.
전사자에 대한 예우를 통해 미국의 위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챈스 일병의 귀환 (Taking Chance)"은 그 며칠 후 영화 소개를 통해 우연히 접한 영화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더 죽은 병사에 대한 나라의 지극히도 엄숙한 대응을 엿볼 수 있었다.
때는 2004년 4월, 미군이 이라크전에 파병을 했고, 전쟁 중 사상자가 급증하고 있었다.
미 해병대 마이클 스트로블 중령은 본국에서 전략 분석의 일을 맡고 있었는데, 이런 전쟁의 상황에서 안전에 곳에 남아있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날 전사자 명단을 살피던 중 자신과 고향이 같은 사람을 발견했다. 열아홉 살 챈스 펠프스 일병이다. 마이클 중령은 챈스 일병의 유해를 유족이 있는 곳까지 운구하는 임무에 자원한다.
운구는 이라크에서 수송기 편으로 출발하여 미국 델라웨어 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했고, 마이클 중령에게 인계되었다. 두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섯 시간의 육상 이동으로 챈스 일병의 부모가 살고 있는 와이오밍 주의 작은 마을까지 달려왔다.
특별히 장면 장면 나타나는 여정 중의 일반 시민들의 태도는, 유해에 대한 절대적 경의를 표하는 마이클 중령의 모습과 함께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어쩌면 이 영화의 백미는 슬쩍슬쩍 지나가는 일반 시민들의,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망자를 영웅으로 까지 존중하는 그 보편화된 경외감의 표현이 주는 감동에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 운구를 넘겨주고 장례식에 참석함으로써 전체 임무를 마친 중령은 챈스 일병의 전우로부터 전사 당시의 상황을 듣게 되고, 영화는 챈스 펠프스 (Chance Pheps) 일병의 생전의 여러 사진을 보여주면서 끝이 난다.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은 실화를 영화로 만든 작품으로, 유해를 유족에게 운구하는 책임을 맡았던 마이클 스트로블(Michael Strobl) 해병 중령이 신문에 기고한 글을 바탕으로 미국 HBO사가 2009년에 TV용 영화로 제작했다.
로스 카츠(Ross Katz) 감독에, '1급 살인', '할로우 맨' 등으로 유명한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이 주연을 맡은 '챈스 일병의 귀환'(Taking Chance)은 높은 작품성으로 케빈 베이컨이 2010 년도 제67회 골든글로브와 2009 미국 배우조합상의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로스 카츠 감독도 제62회 미국 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챈스 일병의 귀환'과 함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군인 한 사람에게 대한 절대적인 존중감을 잘 표현하고 있듯, 캐나다에서는 훈련 중 사망한 제임스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트뤼도 총리, 국방장관 및 합창 의장도 애도를 표했고, CAF facebook엔 천 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나는 며칠 후 있을 제임스 장례식에서 그이 아버지의 부탁으로 조가를 부른다. 노래하면서 울지 않을까 걱정이 되지만, 너무 슬프지 않고, 천국의 소망과 위로의 축복,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사랑을 노래할 것이다. 제임스의 명복과 가족의 평안을 기도한다.
https://www.facebook.com/CanadianForces/posts/3038822516344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