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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Feb 14. 2022

정치가 밥 먹여 주는 것 아니지만

비상식에 근거한 상식은 코미디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가 밥 먹여 주는 것 아니지만



이제야 한국 정치에 관심이 회복된 것 같다. 이민 온 후 20년을 죽을 정도로 생존 문제에 매달려 왔다. 그런 까닭에 우선권에서 밀린 그런 종류의 이슈는 사치였고, 그래서 아예 뇌리에서 소실시키며 살아온 것 같다. 대통령이 네번 바뀌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소문으로 놀랐지만 호기심 속에만 묻어 뒀었다. 세월호가 있었을 때 촛불 시위 물결에 이곳서도 동참했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긴다. 극우들의 태극기 집회가 덩달아 흥행하던 불합리에 혀를 찼던 기억도 있다. 그 이전 서건이지만 911 테러 조차도, 하고 있던 사업의 같잖은 변수 쪼가리 때문에 관심 밖에 머물렀다. 이 우울한 역사들 보다 더 암울한 내 기억의 흔적을 나는 최근에 조금씩 극복하고 있으니, 바로 한국 정치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괴하고 망측해서, 과연 21세기에 있을 법한 현실일까 싶다. 자체 후보가 없어 외부에서 꿔온 사람이 정작 함량 미달이다. 말하자면 같잖은 야욕에 눈멀어 은혜를 배신한  사람을 대권주자라고 앉혀 놓았다. 그 입을 열면 끝없는 말실수가 양산되는 것뿐만 아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최소한 갖추어야 할 상식이 없어 여러 무식함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애들도 다 아는 것을 혼자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로 자기 앞가림만 하다 보니 시대착오적 발상이 빈 깡통처럼 요란하다.


배우자의 리스크는 눈뜨고 보기가 힘들다. 가짜 학위 및 경력 위조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개된 음성 파일에서는 폭력성, 거짓말, 증오 및 복수심 등이 명확히 나타나 있다. 주가 조작은 또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모른다. 소문 만으로 끝나지 않는 부도덕한 행태가, 만에 하나 진짜  영부인이 되었을 땐 어떤 모양으로 진화할까 심히 걱정스럽다. 그 외, 장모의 비리도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심각한 수준이다. 그 모든 혐의를 비호해 왔던 당시 검사 사위가 현 대통령 후보다.


상식으로라면 이런 류의 남녀 콤비는 대선 후보니 예비 영부인으로 출발선에 조차 서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 조사에 나타나는 40%대에 육박하는 지지도는 무엇일까. 정권 교체를 하고 싶은 열망 만으로, 앞뒤  가리고 막무가내  점수를 주는 것일까, 아니면 진짜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에 근거할까.


 상황에 대해 일단은 울며 겨자 먹고 있는 세력은 국민들이다. 게다가 그를 당에 받아들여 공들이고 있는, 이전 대통령의 권력 밑에 빌붙었던 사람들이 헤쳐 모인 정당은, 아니나 다를까 공정도 없고 상식도 없어 보인다. 원래 정치인 이란 것이,  상황에서는  말하고,  상황에서는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빌붙어 권력이나 누려보자는 심증 의도가 가득하다. 꿔다 놓은 보리 자루 하나 대통령으로 앉혀 놓고 저들이 멍석 깔고 놀아보 의중이 그들에겐 있어 보인다. 처음엔 기성 정치인과 다른 목소리를 내며 신선했던 젊은 당대표는   당내 불화를 격더니 이젠 자기 색깔 없는 간신배로 변해간다. 누군가는 바른말을 해야 하지만 그것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도태와 퇴출이 무서워 함부로 나댈 수도 없는 문화다.  


샤머니즘 사건도 코미디다. 점을 치고, 굿을 하고, 미신에 근거해 예언을 하며, 점쟁이의 말에 의존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인물이 21세기의 우리 앞에 나와서 최고 지도자 콤비가 되겠다 설치고 있는데 국민의 40% 가까이가 박수를 치고 있다.  중에는 많은 크리스천과 교회가 있다. 보수 극우 성향이 교회에 강하다.  정권의 친북 중심 북방 정책을 빌미로 종북이나 공산당이니 매도했던 목사들이 많다. 차별 금지법에 대한 신앙적 반감이  정권에 대한 안면몰수  적대감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교회는 앞으로 더 큰 위기를 지나가야 한다. 샤머니즘을 모든 판단의 틀로 두고 있는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이 샤머니즘이 그 영향력을 한국과 교회에 뒤덮일 것이다. 안 그래도 리더들의 온갖 비리와 정치 목사들 때문에 권위가 땅에 추락한 한국 교회다. 미신적 행태가 교회에 싹트고, 교세를 크게 잃을 것이다. 이미 한국 교회의 현실은 내부에서부터 부패하다 자멸한 중세 교회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돈이 넘치고, 지도자는 교회가 주는 물질로 터무니없이 부유하고, 그러다 보니 교회를 자식에게 비즈니스로 되물려 주는 일이 한국 풍토에 자리 잡았다. 오지의 선교사, 가난하지만 열정적인 목사, 낮은 곳에서 이름 없이 섬기는 사역자를 무능의 대표로 보는 인식이, 물질 풍요로 배부른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수준은 아닐까. 정권교체라는 한 가지 어젠다에 매달리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불안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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