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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Jan 08. 2023

무지개 다리를 건냈습니다.

그런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슬픔을 기록합니다.  

오늘 자두를 보내고 집으로 왔습니다. 이런 날이 오지 말기를 바랐지만 결국은 올 거라 두려워했던 바로 그 운명의 날, 병원에 안락사 후 잠든 자두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자리를 뜨는 것이 불가능했었습니다.


그래도 남자라고, 아내를 위로하며 집으로 오는 껌껌한 랭리의 농촌 길이 마치 영화 스크린처럼 펼쳐졌고, 그 위로 자두와 함께 한 열여덟 해의 영상이 자막을 읽기도 힘들 만큼 빨리 지나갔습니다. 제게 약점이 있다면 남을 잘 사랑하지 못하는 메마른 감정이고, 그 이유로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눈물을 흘리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자두를 보면 늘 가슴이 뛰어서 “사랑해”라는 고백을 뼛속부터 하지 않고 넘어간 하루의 해는 없었습니다.


이민 와서 식당과 공병 수거라는 특수 사업으로  밤낮없이 뛰어야 했던 청춘의 시간, 자두는, 3년 전 죽은 살구와 함께 저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던 매일으ㄹ 선물하던 존재는 제게 주어진 축복이었습니다.


그런 자두가 한 몇 주 잠을 못 자고 신음 소리를 내며 매일 밤 침실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어제 그제는 저희도 덩달아 잠을 한 잠도 못 잘 수준으로 고통스럽게 신음했습니다. 아래층에 온 AIRBNB 손님이 신경 쓰여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유로, 오늘 들른 Shoppers Drug 마트에서 제 혈압이 159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자두의 그런 현상이 늘 지속되었다면 결정도 빨랐을 텐데, 또 수많은 다른 날은 멀쩡했기 때문에 감히 나이 들었다고 생명을 끊는 일을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난 며칠은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오늘 아침이 되자 동물 병원에 전화해 늦은 오후의 안락사 예약을 잡아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상실의 아픔이 두려워, 예약 후에도 몇 번을 취소, 그리고 다시 예약하는 해프닝을 펼쳤는데, 결국 최종 예약은 안락사가 아니라, 아픈 부분을 검진하고 치료하자고 가닥을 잡고선 오후는 마음은 편안해졌습니다.


고치고 치료해서 앞으로 1, 2년은 더 건강하게 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치 다 이룬 것 같이 쉽게 든 생각 하나가 침소붕대 효과를 가졌왔다 할까요.

 

여느날 처럼 함께 일하는 곳에 데려갔던 자두는 트럭 안에서 내내 잘 잤고, 오후가 되자 쉬가 마려워 잠시 일어났다 또 편안히 잠들 뿐 이상한 구석 하나 없었습니다. 신음도 없었고 뒤척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예쁜 아기의 생명을 어떻게 끊으려 했는지 제 스스로가 자책되었지만, 안락사의 향방을 바꾸어 놓은 상태에서 마음은 날아갈 듯 홀가분해졌습니다.




짧은 겨울 해 때문에 겨우 4시에도 벌써 밴쿠버의 해그림자는 길게 늘어질 때 병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십여 분 또 산책을 시켰습니다. 불안감 하나가 와중에 지나갔습니다. 어떤 하나의 가능성을 마음 한쪽 구석에 열어놓은 상태라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불안감은,


“18년을 잘 살았고, 눈과 귀가 성치 않고, 밤에 신음소리를 내며 잠을 못 자는 현상은 지금 치료한다고 달라질 것이 크게 없을 거라 “


는 의사의 진단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입니다. 그런 생각으로 얼룩진 나의 시간에도 자두는 작은 소리를 내며 종종걸음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는 듯 했어요.


안락사는, 희망을 걸었던 40대의 인상 좋은 의사가 위와 같은 내용의 진단을 섭섭하게 늘어놓았고,  절차에 대한 설명이 있고 나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먼저 마취재로 잠을 재우고, 몇십 분 후 안락사 약을 투입하는 순서였습니다.


자두는 신기하게도 이 상황을 벌써 알고 있었던 덧 같습니다. 평상시와 다른 모습이 병원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는데, 어떤 소리나 반항의 흔적이 없이 완전의 순종, 혹은 포기의 모습이라면 맞을 것 같습니다. 단단한 대나무 가지가 물먹고 축 늘어지는 것, 남이 봐도 옹고집스럽던 시부모가 어느날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는 것을 보는 일 처럼, 막무가내로 돌아다니던 자두가 순순히 투챡에 몸을 맞기고, 우는 엄마를 거꾸로 나 그냥 자는 거야 하며 위로라도 하듯 옆으로 누워 잠에 들었습니다.


자두는 그렇게 보냈습니다. 동물을 키워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를 못 할 슬픔이 집에 들어서자 더 몰려옵니다.


내일은 주일이라 교회를 가고 재정부의 업무를 보아야 하지만, 하루 집에서 머무르겠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고, 교회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대답하기가 힘들어 우리의 우울한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내가 혹시 울기라도 하면 제 마음이 더 힘들 것 같아 하루를 집에서 추스르면 상황이 좋아질 것입니다. 한주가 지나고, 새 옷을 입고 예수님께 나온 귀신 들렸던 청년처럼 그렇게 단아하게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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