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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렷 경래 Sep 27. 2023

꽃보다 아름다운 그들

시각의 차이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피부가 "장난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안 그래도 주인공, 조연할 것 없이 미모가 뛰어난데 살결까지 뽀얗고 팽팽하다.


물방울이 닿으면 또르르 굴러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피부는 눈이 부시다. 이전에는 흘려보내던 세미한 부분에 관점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무시하던 것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심지어 오래전 보아왔던 몇몇 중년 배우의 피부도 눈길이 가는 게, 팽팽하기는 마찬가지다. 연기자로서 TV에 나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기 위해서는 이왕이면 예뻐야 한다는 관점에서 손을 좀 본 것일 테다.


그런데, 몇 해 전에는 분명 피부 주름이 많았고 특히 목주름이 심했던 것으로 기억나는 여배우의 깜짝 변신은 내 눈을 의심하게 하기도 한다.


누구나 젊어지고 싶은 욕구는 동일하고, 돈만 있으면 시대의 풍조에 부합한 성형외과에서 식당 메뉴 마냥 원하는 얼굴과 피부를 주문한다.  


겨우 20년 전의 풍경과 얼마나 다른가. 매년 관련 통계 추이가 기하급수적 우상향 그래프를 그릴 것이라고, 학계, 업계 및 여러 기관들은 보고서 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배테랑 여배우의 경우처럼, 60대에서 40대로 변모한 듯한 외모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외모 재생 사업의 부흥이 여타 Recycling 사업과 맞물려 돌아가는 우화적 풍경은 아닐까?


통계

관심이 생겨 통계를 찾아보았다. 한국 갤럽 조사 (외모와 성형수술 보고서 2020)를 만났다.


이에 따르면 성형 수술 추이를 볼 수 있는데, 20대 여성은, 1994년에 5%, 2004년에 13%, 2015년에 31%로 크게 뛰다가, 팬데믹으로 저하를 예상했던 2020년에는 약간 감소한 25%였다.


특이한 것은 2020년 30대 여성의 수술률은 31%로, 20대 보다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에 진출하여 직장과 결혼을 위한 본격적인 미모 경쟁에 들어간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함께, 40, 50, 60대 여성의 비율은 각각 18%, 13%, 11%로 20-30대에 비해 저조하지만, 예상외로 수술에 대한 의지는 이 연령대에도 동일하다는 것을 본다.


최근의 조사는 2020년의 통계에서 멈추었다. 2019-2022 년 동안의 팬데믹 영향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근 2년 간의 결과는 성별대, 연령대를 막론하고 그 비율이 크게 올랐을 것은 분명하다.


아름다움의 발견

드라마 뿐 아니다. 주위에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아름답다.


경쟁과 열정의 대열에서 생기 찬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 그 젊음과 팽팽함이 발견된다.


나는 왜 이 젊은 그룹이 왜 이쁘고 사랑스러울까?


첫 째, 내가 나이 들었다는 증거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거나 부인하며 산 것은 사실이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는 일은 식상한 작업이다. 단 몇 초의 거울 앞 스캔으로 약간 부었다거나 야윈 얼굴이 식별하며, 전날의 식습관을 되새겨 보곤 한다.


어느 날은 여전히 싱싱하다는데 위로가 되다가도 다른 날은 주름과 흰머리를 주목한다. 더 젊어지지 않는 쇠퇴의 되새김이 그다음 날이면 더 느낄 것이기 때문에 거울 앞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  


어느 날 갑자기 뭔가에 씌운 듯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스스로가 정신을 차렸던가 무언가에 정신을 잃은 경우다.


젊은이의 피부는 말없는 광선이다.  덜 좋은 피부 소유자의 시선을 끄는 충분한 노상 광고판이다.


그러므로, 사랑스럽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신을 차렸다는 쪽이 맞을 것 같다. 사랑은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대명사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나의 삶이 녹녹해진 의미이기도 하다.


이민 후 오늘날까지의 삶은 숨 쉴 틈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먹고사는 문제로 분주해 휴가 못 간지 5년이 넘었다.


최근 들어 이 상황이 나아졌다. 팬데믹을 거치며 사업의 성장이 있었고, 여러 여건이 좋아져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한 탓도 있을 것이다.



꽃 보다 아름다운 오늘

우리는 모두 꽃 보다 아름다운 시간들을 지나왔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이다. 20대가 바라보는 10대 때의 자신, 40대가 바라보는 20대 때의 자신이 꽃 그 자체였던 것을 회고하곤 한다.


지금도 사진 속 20대의 나와 아내는 눈부시게 예쁘게 보인다.


그 시절 우리는 참으로 힘들었다. 결혼할 때 회사에서 무이자로 융자한 1,500 만원 전세 자금이 재산의 전부다.


아내는 깐깐하고 엄한 시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 관섭으로, 뱃속의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정도로 신경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고, 나는 회사 조직 생활에 푹 빠져 그런 아내를 돌아보지 못하고 저 잘나 살았던 시간이다.


그 와중에 휴일의 하루를 잡아 여의도 벚꽃 놀이를 나가 찍은 사진 속의 우리가 지금도 책상 머리에 남아 있다.


환경이 힘들었던 아니던, 저 아름다움은 우리 인생 중 딱 저곳에만 있었던 것 아닐까?


그리움은 이전의 고통을 승화시키는 안개 같은 존재다.


한 예로, 군대의 경험이 있다. 생각하기도 싫다 하고, 죽어도 다시 돌아갈 마음이 없는 곳이 군복무 경험인데, 너무도 종종 당시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대부분 남자들은 그리움에 찬다.


역설이다. 가기는 싫은데, 다시 가고 싶은 시절인 것이다.


젊음이 있었기 때문 아날까. 이 팽팽한 젊음이 그리움과 어울려 고통의 기억을 뒤덮는다.


당신과 나는 지금 꽃 보다 아름다운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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