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잠잠해야만 했던 시간들
조용했던 기다림 만의 시간이 있다. 이민을 와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친 10년간이다. 이 기간은 바닥에서 허우적거렸고, 돌파구를 보지 못했고, 사기를 당했고, 뭔가 해보려 돌아다니다 돈만 소비했고, 실패가 꼬리를 물었다. 한창 커가는 딸과 아들에게 무관심할 만큼 먹고사는 일에 바쁘다 보니 문제투성이로 돌아온 그들을 보고 있어야 했다. 스스로의 무능력으로 침체했고, 포기했고, 잠잠했다. 아프면 구석을 찾아 조용히 구부려 있는 동물과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던 시간이다.
그리고, 또 다른 5년, 복종과 낮아짐으로 주어진 일들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던 세월이다. 회복을 꿈꾸고 느끼며 달려왔지만 이 역시 잠잠한 기다림의 연장이었던 것에 다름 아니다.
잠잠함의 비밀은 무엇일까? 나에 대한 거부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오는 회복의 갈망이다. 이 세상의 어떤 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차라리,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더더구나, 크리스천이 되면 이 현상이 극대화된다. 어떤 이는 추구하는 일을 기도와 정신력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 성취하는 것이 믿음이라 하지만, 그것은 극히 인간적인 기준이다. 인간 승리가 꼭 믿음의 승리일 리 없다. 크리스천에게는 이러한 인간적인 노력을 주의해야 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절대 경계해야 할 덕목일 일 수도 있다.
교회와 신앙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믿음의 척도 일 수 없다. 차라리 잠잠히 기다리며 소망하는 모습이 자신과 옆에서 보는 이들에게 덕이 될 때가 많다.
"고난을 겪기 전에는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아서 내가 하는 것을 자랑하지만, 고난을 통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
- 윤호용 목사 / 알래스카 은혜와 평강 순복음 교회 / 첫째 아들을 잃은 경험을 통해 고백하는 내용.
조용한 실천
잠잠하다는 것을 말과 연관 지으면 어떨까? 말 그대로, 말없이 조용히 있는 것의 가치가 크다. 우리는 말 많은 사람을 꺼려한다. 혼자 좌중을 지배하는 빅마우스도 싫어하지만, 말을 위해 말을 하는 영혼 없는 말의 주인공을 멀리하곤 한다. 말없는 사람이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오늘 현실이다. 말없는 긍정, 말없는 순종, 말없는 헌신의 사람을 보는 것은 보물을 땅에서 찾아내는 것과 같은 희열이 있다. 우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주위에 많아지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잠잠함의 가치를 몸으로 실천하며 덕을 세우는 사람들에게서 이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최근에 어떤 단체에서 오해를 받고 심하게 따돌림을 받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억울함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된다. 사실과 다른 비방의 말들로 수군수군하는 풍경이 여기저기 연출되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수군대기 좋은 알찬 먹잇감이 되었다. 누구도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냥 참고 있기 쉽지 않다.
말이 어떤가. 한 사람 건너면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첨가되어 결국 눈덩이처럼 괴물이 되어 있다. 하물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진실은 일그러지고 부풀어 사실과 터무니없이 달라진다. 그런 현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당사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있기를 바랐다. 싸워서 해결할 수 없거나, 싸워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면 잠잠하는 것이 답이다. 크리스천의 경우는 이런 상황마다 어떤 비밀이 있고,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심을 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사람은, 그러나, 묵묵히 참고 있어야 하는 시간 통과하기가 어떤 이에겐 불가능하다.
상황이 악화되는 건 그의 말과 대응 때문이었다. 좌절, 절망, 포기로 그는 불평했고,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과 위로를 구한다고 여기저기 메시지를 보냈고, 법적인 대응을 운운했다. 사람들은 그의 상황을 위로한다고는 했으나 냉랭했다. 워낙 말하기를 좋아하던 특성 때문에 그에겐 이런 상황은 특별히 그에게 낯설었다. 결국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안타까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잠잠함과 기도의 자리
기다리는 것은 힘들다. 잠잠히 있기에는 자신의 안에서 외치는 소리가 너무 크다. 그러나, 우리 인생에는 잠잠히 있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잠잠함 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신기한 경우가 있다. 잠잠하다는 것은 전혀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시끄러운 순간이다. 날마다 소망하고, 새벽을 깨우는 수많은 기도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시편 62 : 1~12
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3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너희가 일제히 공격하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4 그들이 그를 그의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 (셀라)
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