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이미 내 측근들이 사실 증명에 나섰다
“거지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
캐나다에 와서 약간의 관찰력으로 살피다 보면 거지 같이 일하는 부자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좋은 데서 먹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장승처럼 일찍 귀가하는 삶의 질을, 사무직, 넥타이, 화이트칼라의 한국식 편견에 기대지 않고도 모든 사람기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니, 노무자와 기술직의 임금이 사무직과 은행원 보더 더 세고, 자영업자가 떵떵거리며 산다. 굳이 매니저라 불리는 상사가 되기보다 마음 편하고 책임 적은 위치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비밀한 사실을 깨닫는 데는 이민 후 꽤 시간이 지나 서다.
크지 않지만 정원이 있고, 목련 나무가 계절을 따라 꽃과 이파리로 무성한 나의 뜨락을 캐나다에 와서 갖게 되었다. 돈이 많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는 제도적 혜택 때문이다 한국의 알록달록 단풍이 그리워, 이곳서는 흔하지 않은 종자의 단풍을 심었는데,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젠 어여쁜 나의 피붙이가 된, ‘살구’와 ‘자두’라는 이름의 두 말티푸 암캉아지는 이 정원 위 잔디에 뛰놀길 좋아한다. 나와 함께 있을 때면 공몰이를 즐기고, 물고 달리다 내게 오면 안기고 뽀뽀한다. 이 풍경에 아내의 시샘이 자극된다. 그럼에도 왕 된 나의 입지를 좁히지 않으려 의연한 포옹을 즐긴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할 것 없는 “삶의 질”이란 바로 이런 류의 모습이다.
집을 나오면 때때로 저잣거리의 잘잘못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재판관처럼 참견할 때도 있다. 총을 누구나 소지할 수 있는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차피 먼저 때리는 사람은 범법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데 정당한 논리로 잘못을 일러주고 충고하는 바, 왕 된 자의 도리다.
신호가 바뀌면 사거리에 차를 세운다. ‘홈리스’라는 칭호로 거리의 무법자들이 구걸을 할 때 동전 한 닢의 적선을 잊지 않는다. 꼬장꼬장한 잣대는 운행 수단을 갖춘 사람들에게 바른길을 안내하는 척도일 뿐이다.
어찌 왕이 아니겠는가. 나의 통치의 수단이 사랑일진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곁에 있어 행복을 누린다면 어찌 대국의 정복자를 부러워하겠는가. 나는 분명한 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