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왕이로소이다

왕, 이미 내 측근들이 사실 증명에 나섰다

by 차렷 경래

나는 가끔 왕이로소이다

김경래

뜨락의 단풍이
나를 섬겨 그늘을 만들고
목련 나무는 우편의 전사처럼 내 옆을 지키며
무수한 잎이 머리 위에서
따가운 뙈약볕 가려줄 때
암캉아지 두 마리 품에 안고
나의 심장은 사랑으로 고동을 친다

왕이 되어 총애하는 후궁 났다고
꽃을 손보던 왕비가 눈썰미를 찌푸리며
지나던 참새들이 허다한 시녀같이
재잘재잘 험담이다

나는 가끔 왕처럼 대접을 받고
시중을 드는 무리에 둘러싸여 밥을 먹는다
깨끗지 못한 수족을 위해 물수건을 대령하고
정갈한 접시에 시종의 손놀림으로
계절에 맞는 산딸기가 올려지며
침실을 장식한 최고의 비단 위에 누워
세 여인의 살결을 손으로 더듬으며 잠을 잔다
암행으로 다니는 서민들의 삶터에서
호통치며 잘잘못을 지적하고
펜대를 들어 창검처럼 백서 위에 글을 꼽는다
군상들의 피폐함에 재력으로 적선하고
옥쇄를 불끈 눌러
집안 백관들의 난무한 토론에 낙인을 찍는
가끔의 나의 일상이
대궐 문에 가지 친 넝쿨장미같이
담벼락에 집 짓고 본류를 흘끔거린다

나는 참으로
가끔 왕이로소이다.



“거지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

캐나다에 와서 약간의 관찰력으로 살피다 보면 거지 같이 일하는 부자들이 많음을 알게 된다. 좋은 데서 먹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장승처럼 일찍 귀가하는 삶의 질을, 사무직, 넥타이, 화이트칼라의 한국식 편견에 기대지 않고도 모든 사람기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아니, 노무자와 기술직의 임금이 사무직과 은행원 보더 더 세고, 자영업자가 떵떵거리며 산다. 굳이 매니저라 불리는 상사가 되기보다 마음 편하고 책임 적은 위치에 머무르는 사람이 많다. 이런 비밀한 사실을 깨닫는 데는 이민 후 꽤 시간이 지나 서다.

크지 않지만 정원이 있고, 목련 나무가 계절을 따라 꽃과 이파리로 무성한 나의 뜨락을 캐나다에 와서 갖게 되었다. 돈이 많지 않아도 집을 살 수 있는 제도적 혜택 때문이다 한국의 알록달록 단풍이 그리워, 이곳서는 흔하지 않은 종자의 단풍을 심었는데,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젠 어여쁜 나의 피붙이가 된, ‘살구’와 ‘자두’라는 이름의 두 말티푸 암캉아지는 이 정원 위 잔디에 뛰놀길 좋아한다. 나와 함께 있을 때면 공몰이를 즐기고, 물고 달리다 내게 오면 안기고 뽀뽀한다. 이 풍경에 아내의 시샘이 자극된다. 그럼에도 왕 된 나의 입지를 좁히지 않으려 의연한 포옹을 즐긴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할 것 없는 “삶의 질”이란 바로 이런 류의 모습이다.

집을 나오면 때때로 저잣거리의 잘잘못을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재판관처럼 참견할 때도 있다. 총을 누구나 소지할 수 있는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차피 먼저 때리는 사람은 범법자가 되어 감옥에 가게 되는데 정당한 논리로 잘못을 일러주고 충고하는 바, 왕 된 자의 도리다.

신호가 바뀌면 사거리에 차를 세운다. ‘홈리스’라는 칭호로 거리의 무법자들이 구걸을 할 때 동전 한 닢의 적선을 잊지 않는다. 꼬장꼬장한 잣대는 운행 수단을 갖춘 사람들에게 바른길을 안내하는 척도일 뿐이다.

어찌 왕이 아니겠는가. 나의 통치의 수단이 사랑일진대,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이 곁에 있어 행복을 누린다면 어찌 대국의 정복자를 부러워하겠는가. 나는 분명한 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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