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활을 6년째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이런 별의별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는 것이, 글을 쓸 수 있는 거리가 하나 생기는 것이 동시에 감사하다.
자취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하나 구입하고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족히 1,000km는 넘는 거리를 주행했다.
20만 원도 안 하는, 바퀴가 얇은 특이한 디자인의 입문용 로드 자전거. 계속 꾸준히 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갔고,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좋은 일, 안 좋은 일 다 겪으며 기분이 좋을 때도, 기분이 안 좋을 때에도 혼자 자전거를 타고 광안리 주변을 산책하던 나에게 이 자전거는 각별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말없이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춰주는 유일한 친구 같았던 이 자전거. 정말 뜬금없게도 6년 동안 잘 타고 다니다가, 2021년 3월에 도난당했다.
도난당할 당시에 이 자전거는 1층 CCTV 바로 밑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로 잠겨있었고, 빗물에 녹이 슬어 있었고, 안장은 색깔이 바랬으며, 누가 봐도 훔칠 만한 자전거는 아니었다.
게다가 자전거로 가까운 회사에 출퇴근을 하고 있었던 터라, 출근하려고 아침에 1층에 내려가 보니 갑자기 없어진 자전거를 보고 3분 정도 멍하게 자전거 거치대를 바라봤었다.
솔직하게 없어진 자전거를 보고 든 생각은 '아, 누군가 무슨 사정이 있어서 가져갔겠구나.' 싶었다.
내 자전거 바로 옆에 거치되어있는 값비싼 여러 대의 자전거를 놔두고, 굳이 내 자전거를 훔쳐간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만만한 자전거라서 그럴까, 물론 이유는 훔쳐간 당사자만 알 것이었다.
이미 제 수명이 다 되어 즐겨 타기에는 무리가 들 즈음, 정들어버린 도난당한 자전거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훔쳐간 사람은 어떤 사정이길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이유로 굳이 내 자전거를 가져갔을까, 궁금증에 마음 한 켠이 딱하면서도 항상 찝찝했다. 그저 고물상에 갖다 주면 푼돈 만 원이라도 받을 수 있었을까.
이러한 생각은 뒷전이 되었고, 회사 출퇴근용으로 자전거는 반드시 필요했기에 새 자전거를 하나 구입했다.
새 것이 내 손아귀에 들어와, 헌 것은 기억 한 켠에도 남김없이 사라질 때 즈음,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2021년 7월 중순에 도난당한 자전거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어느 원룸 1층 모퉁이에서 내 것이었던 자전거가 떡하니 서있는 것이다.
정말 뜬금없이 내 눈에 발견된 '내 것이었던 자전거'는 정말 낯설게 느껴졌다. 차라리 못 봤었으면, 깔끔했을 텐데 굳이, 하필 내 눈에 띄어버린 것이다.
그 자리에서 많은 생각이 들면서 10여 분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화가 났고, 훔쳐간 사람의 낯짝이나 한 번 볼까 싶어 주변을 어슬렁거려볼까, 생각하다가 이걸 다시 가져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제 당신 것이 되었겠지만 당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신도 한 번 어떤 느낌인지 겪어봐라'라는 생각에, 이제는 필요도 없는, 내 것이었던 그 낡은 자전거를 굳이 내 집까지 끌고 갔다.
이틀이 지났을까, 나는 내 집까지 그 자전거를 끌고 온 행동에 대해 후회했다. 나에겐 이제 필요도 없을뿐더러 탈 일도 없게 된 그 자전거는 내 삶에 너무나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나는 내 것을 되찾아 온 것뿐이다.'라고 생각해도 틀린 건 하나도 없지만, '나도 어찌 말하면 똑같이 도둑질을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 것이다. 너무 생각이 많고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일까.
도둑질은 정말 나쁜 것이다. 그 훔쳐간 사람이 그러한 행위를 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나도 평소에 분명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막상 이런 기이한 일이 나에게 생기고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바보 같은 생각'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한 것이다.'
'이 불편한 내 마음만 생각해서라도, 이 자전거를 다시 그곳에 갖다놔야겠다.'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더 이상 찝찝함에 고통받기 싫어서 나는 자전거를 다시 그곳에 가져다 놓기로 결심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니, 자전거 거치대 옆에서 이곳 원룸을 통틀어 관리하시는 분께서 분리수거를 직접 하고 계셨다. 이 분께서는 내가 자전거를 도난당한 일, 새 자전거를 구입해 거치해놓은 것까지 내 사정을 모두 알고 계신 분이다. 눈이 마주쳐 인사를 드리니, 자전거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다.
"이 자전거 그때 그거 아니요? 이게 어찌 다시 여기에 있지요?"
"아, 제가 며칠 전에 우연히 집에 오다가 찾아서 다시 끌고 왔습니다."
"거참, 신기하네..."
"네, 저도 신기하네요. 근데 이 자전거... 다시 거기에 갖다 놓으려고요."
"에이~ 그라지마소. 왜 그러는데요? 그러지 말고 요 옆에 묶어두고 이거 타다가 무슨 일 생겼을 때 타면 되지 않습니까."
"아, 이제는 필요도 없고 제가 너무 찝찝해서요. 가져가신 분도.. 뭔가 필요에 의해서 가져간 것 같기도 하고요..."
"사람이 또 너무 호의를 베풀면 안 됩니다... 저도 여기 관리하면서 입주자들에게 호의를 많이 베풀었어요. 근데, 그 호의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당연하게 생각하고 돌아오는 결과물을 보니까 이러면 안 되겠더라고요..."
"아... 네, 저도 이게 좀 오버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했는데요, 그 훔쳐간 사람도 이틀 동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해서요. 훔쳐온 자전거를 다시 도둑맞았으니, 어떤 기분인지 느끼셨을 것 같고, 이 자전거가 다시 돌아온 걸 봤을 때 뭔가 느끼는 게 있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에이.. 내가 봤을 때 그 사람은 절대 그런 생각 안 해..."
"예, 저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이미 마음의 결단을 내려버렸네요. 조언 감사합니다."
나는 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그 자전거를 훔친 분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훔친 자전거를 보고 느끼는 것이 있고, 사회에 어떤 행위나 행동, 생각 한 결이든 티끌만치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그 자전거를 도로 그 자리에 갖다 놓았다.
이 자전거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과연 비싼 물건이라도 내가 똑같이 행동했을까?'
'과연 내 상황이 여유가 없었으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이렇게 하는 것이 진정 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차라리 신고를 하고 범인을 잡아, 훈계를 했어야 그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을까.'
모순적이고 불완전한, 나라는 한 명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이나 행동거지의 일부분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어찌 되었든, 다 떠나서, 이런 기괴한 일의 인연으로 맺어진 얼굴 모르는 한 분이,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계기와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