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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l 06. 2020

점박이, 포에버

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14편

그 이후 점박이는...


어느 정도 수학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그렇게 학교를 안 가고, 집에서 뒹굴뒹굴하던 점박이는 매일 학교 갈 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나서 씻은 후에 아무도 없는 학원으로 갔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코로나 사태에도 나태해지지 않고 공부에 힘쓰는 모범적인 학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학원에 있는 컴퓨터로 게임(주로 오버워치)를 하러 가는 것이다.


그렇게 오전내내 게임을 하다가 점심 먹으러 집에 잠시 들렀다가 다시 학원으로 가서 게임을 하는, 이런 게임폐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에 피씨방 가서 게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아서 그냥 냅두고 있다. 그렇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면 뭐라고 하겠는데, 그 와중에 자기가 알아서 공부를 한다.


보통 오버워치라는 게임을 하면서 상대방을 매칭하는 그 대기시간 동안 단어장이나 문제집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뭐, 집에 와서 자기 전에도 또 공부 좀 하고. 뭐, 그렇게 알아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복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얼마 전엔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하셔서 고등학교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상담을 했다. 좋은 고등학교를 보내고 싶으시지 않느냐는 선생님의 물음에 와이프는,


처음에는 그런 마음도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성적이 엄청 좋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될지 잘 몰라서 그냥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를 보내려고 해요. 본인도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보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다니고 싶어하는 것 같구요.


라고 했던 것 같다. 사실 내 생각도 이와 같다.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를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고등학교를 가는 것, 둘 다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을 선택해도 상관은 없다. 단,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려고 할 때는 반드시 아이의 남은 잠재능력을 봐야만 한다. 보통 어머님들은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엄청 좋아하시지만, 그런 고등학교는 아이에게 남아있는 잠재능력이 없다면, 학교생활을 견뎌내는 것이 고통의 연속이다.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은 보통, 중학교 때 공부를 잘 했던 아이들이다. 문제는 그런 애들만 골라서 모아놓은 곳이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라는 것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자신이 노력한 만큼 노력한 결과가 성적으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이들도 힘들지만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고.


문제는 공부를 잘 하는 고등학교에서는 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끼리 모아놓았기 때문에, 노력을 하는 것은 현상유지를 겨우 하는 수준이다. 어떤 경우엔 노력을 해도 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머리가 좋은 애들끼리 모아놓고 피터지게 노력을 시킨다고 했을 때, 성적을 결정 짓는 것은 결국 머리다.


나는 이것을 잠재능력이라고 부르는데, 중학교 때 자기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뽑아쓸만큼 뽑아썼다면 잠재능력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채로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보통 수준의 고등학교에서는 잠재능력이 남아있지 않아도 열심히 하면 그래도 상위권에 올라갈 수 있지만,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잠재능력이 없으면 죽을 만큼 노력해도 올라가지 못 한다.


나의 경우는 중학교 때 잠재능력을 쓸 기회가 없었다. 매일 만화책 보고 무협소설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놀았으니까. 그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안 하던 공부를 해서 힘들었지만, 잠재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해서 견디는 것이 수월했다. 하지만 친구들 중에서는 미친 듯이 노력을 해도 올라가지 못 하는 애들이 있어서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잠재능력이 남아있지 않다면,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 아이를 보내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그 안에서 극적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아주 가끔씩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걸 바라고 모험하기엔 아이가 견뎌야 하는 고통이 너무 커서 추천하지 않는다.


내가 보았을 때 우리 점박이의 잠재능력은 솔직히 말해서 남아있긴 하지만, 나도 굳이 공부 잘 하는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지는 않다. 본인이 원한다면 노력해 보라고 하겠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바에야 굳이...


그리고 요새는 점박이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


대학도 굳이 안 가도 상관 없다. 아빠도 나름 좋은 대학 나왔는데, 좋은 대학 나왔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그 등록금 값어치를 하는지도 좀 의문이고. 아빠는 이미 옛날 사람이라 네가 살아갈 미래에 뭐가 유망한지 잘 모른다. 그걸 알면 아빠가 했겠지. 어른들 말은 참고만 하고, 너는 네가 판단해 가면서 선택해라.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바탕은 이미 너한테 있으니까.


택견 사모님께서는 당신의 자식들에게,


대학 안 가도 되니까, 네가 좋아하거나 잘 하는 일 중에 돈 될만한 거 있으면 그거 해라.


라고 하셨다. 이 나이 먹고 보니, 참 현명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우리는 과거의 사람이고, 아이들은 미래를 살아갈 사람이다.


내가 어렸을 때, 컴퓨터 관련학과는 정말 비인기학과였지만, 80년대에 컴퓨터가 조금씩 보급되고 나서 엄청 인기직종이 되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는 과포화상태가 되어서 먹고 살기 어렵다.


내가 어렸을 때, 경제학과나 경영학과는 장사꾼 학과라고 해서 비인기 학과였지만, 지금은 인기가 있지 않은가.


내가 어렸을 때, 공무원이나 선생님은 비인기직종이었지만, 지금은 못 가서 안달이다.


내가 어렸을 때, 게임을 하는 것이 지금처럼 직업이 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다.


즉, 우리 기성세대는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은 이미 과거의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좋은 선택을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육이 나아갈 길이 아닐까.


글쎄, 점박이는 앞으로도 게임을 좋아할 거다. 내가 지금도 게임을 좋아하는 것처럼. 공부도 알아서 할 것 같다. 앞으로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또 어떤 사건을 겪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이겨낼 바탕은 마련해 줬다고 생각한다. 그럼 된거지, 뭐.


이렇게 우리 점박이의 수학교육은 현 시점에서 나름 성공적이라 평가한다. 이렇게 육아 수학교육 에세이 시리즈가 끝날 것 같지만,


절. 대. 아. 니. 다.


점박이와는 달리, 우리에겐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알 수 없는 딸, 네모돌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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