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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Jul 29. 2020

네모돌이 비긴즈

육아수학교육 에세이, 네모돌이 01편

이번 편부터 주인공이 바뀐다. 첫째아들 점박이가 아니라 둘째딸 네모돌이이다. 일단 나는 부모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우리 네모돌이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겸손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이 둘의 성격은 너무 다르다. 점박이는 선생님들이 보면 나무랄데 없는 학생일 거다. 조용하고,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편이고, 말을 잘 듣는다. 점박이에게 내 교육방식을 실험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결과를 냈고, 나는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은 결과를 내었다.


하지만 우리 네모돌이는 그렇지 않았다. 둘의 차이를 간단하게 드러나는 예시를 몇가지 들어보겠다.


서너살 무렵에 네모돌이가 우유를 한컵 들고 서 있었는데, 엎지를 것 같아서 네모돌이에게 "어어어, 위험해" 라고 말했던 적이 있었다. 만약 점박이였다면 컵을 가만히 넘겨주거나, 아니면 최소한 가만히 있었을 것 같은데, 우리 네모돌이씨는 그 컵 내용물을 그냥 바닥에 확 끼얹어 버렸다.


그렇다. 네모돌이는 좋게 말해서 매우 과감하다. 뒷일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




점박이는 학습지로 한글을 좀 배우고 나서는 차를 타고 가는 중에 건물의 간판을 바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네모돌이는 같은 학습지로 1년을 넘게 배웠지만 한글을 터득하지 못 했다.


이런 이유로 조급해진 와이프는 내가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서, 네모돌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라는 갈굼, 아니 특명이 떨어졌다. 그날 나는 네모돌이의 손을 잡고 우리 학원으로 가서 <도둑잡기>라는 보드게임을 둘이서 했다. 한글을 그냥 가르치려고 해봐야 실패할 것 같아서, 보드게임으로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 안 되면 규칙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말이다. 규칙을 이해하는 것도 뇌를 자극하는 것이니까 한글을 당장 못 깨우쳐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네모돌이는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네모돌이에게 주사위를 던져서 주사위의 눈을 하나, 둘, 셋, ... 하면서 말을 한칸, 두칸, 세칸, 이런 식으로 옮기는 연습만 했다. 최소한 수라고 하는 것이 실생활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를 알게 해주려고 말이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에 네모돌이는 한글에 갑자기 흥미를 갖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한글을 조금씩 알려줬는데, 그리고 나서는 한글을 금방 터득했다. 거기서 깨달은 것은 공부에는 시기가 있다는 거다. 뇌에서 준비가 되지 않을 때는 설명을 해줘도 설명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공부라는 것에 아무런 흥미를 못 느낀다. 그러나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직감을 할 때, 뇌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 네모돌이는 안타깝게도 두뇌계발이 느리다.




네모돌이를 봐주시던 이모님께서 사비를 들여서 네모돌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시는 바람에 유치원 때 네모돌이는 좀 많이 통통했었다. 정말 고맙고 좋으신 분이다. 그런데 유치원 때 아이들의 외모 기준은 마르고 여리여리한 것인가 보다. 그래서 네모돌이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뚱뚱하다며 놀림을 많이 받았고, 머리가 나쁘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 부모참관수업에서 선생님께서 "누가 대답해 볼까" 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손을 혼자 안 들고 있어서 곁으로 가서 답을 알려주고 손을 들라고 했지만 여전히 손을 들지 못 하였을 정도로 자신감이 없었다.


그렇다. 우리 네모돌이는 외모 뿐만 아니라 자기 머리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네모돌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앞 문방구 아저씨가 네모돌이가 도둑질을 했다고 하셨다. 너무 당황한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일단 네모돌이에게 도둑질은 나쁜 일이라고 말한 후에 네모돌이와 같이 손을 잡고 문방구로 찾아갔다. 그리고 네모돌이가 보는 앞에서 문방구 아저씨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여기에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데, 네모돌이가 5학년 때 내게 이야기 해준 거다. 사실 내가 문방구 아저씨에게 사과했을 때, 네모돌이는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모님께서는 항상 네모돌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비를 들여서 네모돌이가 집어오는 것을 사주셨기 때문에 네모돌이는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집어오는 것이 도둑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과를 해도 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몰랐던 거다.


그렇다. 우리 네모돌이는 무척이나 순수했다. 신조협려의 소용녀가 고묘를 나왔을 때처럼... 이 표현은 신조협려 팬들이 돌을 던질 것 같기는 하다.




우리 네모돌이는 모든 면에서 점박이와 달랐다. 우리 부부는 네모돌이 때문에 극한의 상황까지 내몰렸다. 스승님께서는 네모돌이가 언젠가 좋아지긴 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몇년치 고생을 한번에 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제부터 육아 수학교육 에세이 천국편이 아니라 지옥편이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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