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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Aug 24. 2020

네모돌이는 왜 공부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육아수학교육 에세이, 네모돌이 03편

글쎄, 네모돌이가 왜 공부를 싫어하고 못 하게 되었을까. 분명히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올라갈 무렵에는 자기도 영어공부를 하고 싶다고 조를 정도였는데 말이다. 수학도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나름 반 친구들을 가르쳐줄 정도로 잘 했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네모돌이가 공부를 싫어하고 못 하게 된 것에는 나와 와이프의 잘못이 크지 않을까 싶다. 네모돌이는 두뇌의 발달이 느린 편이었다. 처음에는 나와 와이프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서 소꿉놀이 같은 느낌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공부를 시작하면서, 네모돌이는 무언가를 외우거나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보였다. 처음에는 괜찮아 괜찮아 하던 와이프도 조금씩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네모돌이가 그런 짜증을 느끼고 공부에 흥미가 식어서 전혀 집중을 안 하면서 와이프는 폭발했다.


물론 이 내용은 내게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나 역시도 수학적인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면, 네모돌이는 이해를 못 한다는 그 상황에 스스로 짜증을 내면서 딴짓을 하거나, 하기 싫다고 했다.


분명히 처음엔 소꿉놀이 기분으로 공부를 시작했다가, 점점 짜증내거나 화를 내는 부모의 모습에 네모돌이는 점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부를 할 때 즐거운 느낌이 아니라, 혼날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시스템을 만든 것이 네모돌이 교육의 최초의 실책이었다.


아마 그 상황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공부를 시키려 하는데, 네모돌이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 한다.

2. 1번이 반복되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3. 네모돌이가 가르치는 사람의 짜증을 느끼고 공부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시작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뒷부분이다. 네모돌이는 원래 모르는 것이 있어도 헤헤 거리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저 시스템이 만들어진 이후엔 네모돌이 스스로 모르는 것을 마주했을 때, 바로 짜증을 내면서 더 이상 공부를 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수학을 가르쳤던 지난 세월 동안, 이 상황에 처한 학생을 보지 못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상황에 처한 학생은 솔직히 말해서 공부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면서 뇌를 사용할 때 약간의 스트레스가 발생하는데, 그 스트레스를 못 참고 짜증을 내면서 그냥 감정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매우 주관적이다. 그 즐겁다는 게임을 하면서도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나는 얼마 전에 PS4 용 <스타워즈 : 오더의 몰락> 이라는 게임을 한 적이 있는데, 마지막 보스 전에서 나는 30번 이상을 죽었다. 문득 내가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이 게임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때려칠 뻔 했으나, 보스의 패턴을 파악하고 하나하나 대응책을 시험해 가면서 결국은 깨고 말았다. 뭐, 다른 게임인 <인왕> 이라는 게임은 잡몹에게도 너무 쉽게 죽어서 난 깔끔하게 포기했지만.


나는 어려운 수학문제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게임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 잘 안 되는 것은 어차피 똑같고, 그것이 해결되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도 똑같다. 게임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고, 수학문제를 푸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는 감정적인 문제로 게임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라 여기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앞에서 말한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자기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스트레스 상황을 참지 못 하고 짜증을 내면서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를 애초에 하지 못 하니까. 나는 그 학생의 그러한 감정적인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노력했고, 그 시스템을 바꾸고 나서도 그 학생이 공부를 진지하게 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지금은 매우 똑똑한 학생이지만, 그 아이에게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을 보고 출구를 찾을 수 없어 좌절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네모돌이에게도 비슷한 부정적인 시스템이 생기다니. 나는 보통 아이에게서 보이는 대부분의 문제점은 부모가 원인이라고 보고 있는데, 내가 교육한 네모돌이에게서 그러한 문제가 생기다니! 지금까지 써왔던 육아 수학교육의 좋은 글들이 모두 무색해지는 결과 아닌가.


나 역시 그냥 허울 좋은 뿐인 글을 써서 될 놈만 되는 그냥 그런 교육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 아닌가 라는 자기혐오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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