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수학교육 에세이, 점박이 12편
그곳을 아쉬람이라고 항상 부르지만, 아쉬람이 무엇인지는 방금 찾아보고야 알았다. 한가지 의미로 쓰이진 않는데, 사전적인 의미로는 대충 아래와 같은 느낌이다.
힌두교의 성자가 사는 은둔처나 그 공동체
뭐, 이외에도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내게 아쉬람은 스승님들이 계시는 곳이라고 해야할까. 가끔 삶이 힘들 때, 아쉬람에 가서 평상시에 게을러서 안 하던 명상을 하고 온다. 물론 정기적으로도 찾아가긴 하지만.
어쨌든 점박이의 수학성적이 안 나와서 내가 와이프에게 엄청난 갈굼을 받았던 그날, 나는 아쉬람을 향해 떠났다. 뭐,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으니까.
다행히 스승님이 계셨고, 스승님은 왜 찾아왔냐고 물으셨다. 그간 점박이의 교육에 관해 벌어졌던 일을 설명드리고 나니, 스승님과 나눈 대화의 대략적인 내용은 아래와 같다.
나는 중학교 수학을 가르칠 때, 공식을 거의 쓰지 않는다. 왜 그런 공식이 나오게 되는지에 대해서 깨닫게 만들고, 문제를 풀 때도 그것에 기반해서 고민을 하게 만들면 공식 없이도 더 좋은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와서 점박이가 학교에서 수학수업을 듣는데, 학교 수학선생님의 설명하는 방식이 나와는 매우 달랐다는데 있다.
점박이는 그러한 수학공식을 내게서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학교 수학선생님이 그것으로 수업을 진행하셨고, 다른 아이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는데, 점박이 혼자만 그걸 모른다면 점박이가 무슨 생각을 할까. 당연히 혼자만 수학을 못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점박이가 그 이전에 수학을 공부할 때는 수학이라는 과목이 클래식 음악처럼 고요하고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면, 공식이 그렇게 난무하는 수학교육방식은 메탈음악처럼 시끄러운 느낌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점박이는 어떤 수학공부방식을 선택해야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건 점박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나 커리큘럼은 조금 독특한 편이라, 아이들이 내 설명을 듣고 문제를 푸는데 전혀 지장이 없어도 학교수학수업을 들으면 못 알아듣는 경우가 그 이전부터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던가.
그리고 애초에 점박이에게 수학적인 재능은 없었다. 아, 물론 수학적인 재능이 없다고 해서 수학공부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내게도 수학적인 재능이 없었고, 나는 다른 방식으로 수학을 공부하니까. 점박이 역시 머리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수학적인 재능은 없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에서 수학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의 경우 수학을 잘 못 한다. 그리고 본인이 수학을 잘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만든 수학교육방식이 애초부터 애들 시험 잘 보게 하려고 만든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내가 만든 수학교육방식을 제대로 익혔다면, 오히려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정해진 시간내에 빠르고 정확하게 문제를 푸는 그러한 시험에서 내 교육방식으로 다져진 점박이가 시험을 잘 본다면 그거야말로 내 교육방식이 실패한 것이라고 하셨다. 사실 학원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학원의 룰에 따라 시험에 대한 대비를 하면서 가르쳐 왔으니까, 뭐.
그래서 해결책은?
스승님은 그냥 두라고 하셨다. 본인이 느껴야 하는 부분이고, 시험이라는 것에 적응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나는 아쉬람을 나왔다. 덧붙여서 스승님이 하신 말씀은,
아니, 뭐 와이프가 조금 갈궜다고 쪼르르 아쉬람에 달려와서 죽을 상 하냐고. 좀 당당하라고.
였다... 뭐, 나는 그런 경향이 조금, 아니 많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