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 회복은, 빌려준 돈을 다시 받는 것보다 힘들다

'수동적인 나'를 지양하고 '주체적인 나'로 거듭나기

by 나다움

"지난주에, 선생님께서 먼저 상담 연장 신청해두신 거에 감사해요. 버림받지 않고 보호받는 느낌이었어요. 헤헤."

나는 지금 회사와 연계된 상담실을 이용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비용은 무료이지만, 기본 10회 상담 이후에는 계속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선생님께서 미리 직접 나의 상담 연장 신청을 해두셨다는 얘기에, 나의 변화를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에 벅찼다.


사실, '상담을 연장하실 건가요?' 하고 물어보면 나는 '제가 더 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을 것이다. 내가 필요한지 여부를 나에게 묻는 게 아니라 타인의 반응을 먼저 살피는 것이다. 더 해야 한다는 대답을 들으면, '아직 10회 상담만으로는 부족하구나' 하고 나 자신을 또 자책했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회사의 한정된 예산안에서 진행되기에 내가 누군가의 상담 기회까지 너무 뺏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염려를 했을 터이다. 어쩌면 내가 보기 싫은 나를 보기 힘들어서 회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먼저 연장 신청을 해두었다는 이야기에, 선생님을 믿고 따라오면 된다는 그런 믿음이 들었고 나 혼자만 나의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에 마음은 가벼워졌으며, 선생님이 나에게 희망을 걸고 있음을 느낄 때 나 역시 나에게 고무적이 된다.


그런데 좋아하 줄 알았던 선생님은 뜻밖에 이렇게 얘기하셨다.

저에게 고마워할 일이 아니에요.
여기 상담실에 어떻게 왔죠? 00 씨가 직접 알아보고 신청해서 오게 됐죠.
제가 00님을 찾아내서 여기 이 자리에 앉힌 게 아니죠.
여기 와서는 또 어떤가요? 제가 내주는 숙제뿐만 아니라, 스스로 책도 보고 연습도 하며 많은 변화가 있었죠.
제가 도움은 일부 드릴수 있지만, 이 모든 게 다 00님이 한 거예요.
그러니 좀 더 주체적으로 생각해도 돼요.

그렇게 선생님은 내 생각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나의 수동성을 발견하시고, 주체적으로 수정해주신다. 같은 행동, 다른 시각. 상담을 통해 느낀다.

"수동적인 자세가 안타까워요. 지금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원인은 타인에게 주도권을 주었기 때문이에요.

예측 가능한 나를 두고, 예측 불가능한 타인을 통제하려 하지 말아요. 그건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가능한 일을 두고 불가능한 일만 쫓기에 결과가 항상 같은 거예요. 변화가 필요하고,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에요."


수동적인 내가 주도성을 되찾는다는 것은 친한지인에게 오래전에 빌려준 돈을 다시 받는 것과 같다. 원래는 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 시간이 지났기에 내가 내 것임을 주장하는 게 어색하다. 상대 역시 그 돈이 원래 본인의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것에 익숙해져 선뜻 다시 돌려주지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는 당연히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주체성이지만 수동적이며 타인 지향적이다 보니 그게 더 익숙하다, 나도 상대방도.


"내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맞춰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는 것은 어때요? 내가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라고요.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 수 있어요. 내가 타인을 멋대로 규정하고, 그렇게 해주었던 거니까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라고요. 예를 들어, 신랑이 키가 커서 설거지하기가 힘드니 항상 본인이 한다고 하셨죠?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신랑이 설거지를 할 기회를 본인이 박탈한 것은 아니고요?"


집에 돌아와서 내가 쓰고 있는 단어들을 생각했다. 예를 들어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있을 때 '그동안 그렇게 당했고, 그래서 이제는 타인에게 맞춰 살갑게 대하는 것을 피했다'라고 말했다. 예전보다는 변화가 있긴 하다. 그전이라면, 나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살갑게 대했을 것이기에. 하지만 애써 행동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내가 타인을 신경 쓰고 있다는 '관점'은 동일하다. 주체적으로 바꿔보면 '타인의 생각에 맞춰 행동하지 않기로, 내가 선택한 것이다.' 주체적이고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은 이런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것을 선생님은 놓치지 않고 차분히 알려주신다.


그리고 동시에 나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기를 권유하셨다. 특히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 무언가 다른 것으로 회피하지 말고 그 무거운 감정에 머무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한 번도 수용되지 못한 감정을 감정적으로 느껴보는 것, 그것이 감정을 비우는 열쇠가 된다고.


다음 상담 전까지, 자꾸 되뇌었다 나 자신에게. 그동안 나를 안 보려 애써 바쁘게 살아서 미안해. 축 쳐지고 무기력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다소 아이 같은 모습을 못마땅하고, 질책해서 미안해. 내가 나를 그렇게 보면서, 정작 타인이 나의 그 모습을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니었을까. 설령 타인에게 사랑을 받았다 해도, 구멍이 뚫린 듯 끊임없이 새고 있는데, 아무리 사랑을 받아도 채워지지 않을 텐데.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일부러 한동안은 나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고, 내 안의 나에게만 집중해서 사과를 했다.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사랑을 주자.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나에게 기대자. 쉽지는 않지만 계속 연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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