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스스로를 아주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그 가상의 자기를 기준으로 현실의 자기와 비교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잘나야 하는 허상의 자기 모습과 현실의 자신을 비교하기 때문에 자신이 초라하게 보이고 자신감도 없어지는 거예요. 이럴 때 현실의 자기를 끌어올려 허상의 자기에 맞출게 아니라 허상을 버리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고 노력할 일도 없어집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中, 법륜 저-
상담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지만은 않는다. 예를 들어 지난주에는 10까지 전진했는데, 이번 주에는 거꾸로 2로 돌아온 기분일 때가 있다.(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상담받기 전보다 더 나빠지지는 않는다) 여느 때와 같이 지난 한주의 일상이 어땠는지, 얘기하던 차였다. 분명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왈칵 울음이 터진다. 한참을 들으시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안 찾기 말고요, 포기도 하지 말고요.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어요. 기존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에요. 그동안 써왔던 수많은 방어기제를 무의식이 쓸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래서 굳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00 씨가 힘든 것은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잘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가끔씩 다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어요.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 필요 없어지면요. 그래서 전 로또가 되면 당장 죽고 싶어요. 돈 버는 것도 제 역할인데, 로또가 되면 그게 한 번에 충족되는 거잖아요. 로또가 안돼서 아직 살아있습니다. 하하."
사실, 지난주에 친한 친구와 대화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우리가 보고 지낸 시간이 얼만데. 넌 나를 그렇게 못 믿냐?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친구니?"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친구의 말에 침묵으로 대답했다. 나는 목숨 걸고 나를 낳아준 엄마도 못 믿는데, 아무리 친한 친구지만 쉽사리 믿는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상담 선생님은 다시 되물으셨다.
"그럼, 00 씨는 스스로를 믿나요?"
아차차. 선생님의 물음에 다시 한번 내가 또 방어기제를 쓰고 있음을 인지했다, 투사. 나 스스로 나를 믿지 못하는 게 사실인데, 내가 남들을 믿지 못하고 남들도 나를 믿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 그것이 받아들이기 쉽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렇다, 사실 난 나에게만 너무 인색하다. 부정적인 내 감정을 누르고, 통제하기에 바쁘며 맘에 들지 않는 나 자신에게 매우 가혹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로서 온전해지는 게 필요했다.'자랑스러워하는 나'와 마찬가지로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보아야 했다.
"저기, 저 밑바닥에서 눌리고 눌려서 작디작아진 00 씨를 만나볼래요? 선택을 해야 해요. 하시겠어요?"
"네. 해볼게요."
선생님은 클립을 하나 가져와서 탁자에 두고 이어 말씀하셨다.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하나 구체적으로 떠올려봐요. 어떤 게 있을까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중에 스스로가 생각해도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을 말했다.
"여기, 그때의 00 씨가 있어요. 무슨 얘기가 듣고 싶었을까요?"
"음... 괜찮아. 실수할 수 있지.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비굴하게 사과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담담하게 말해도 될 것을. 그리고 애초에 실수하지 않도록 한번 더 확인하는 게 좋았을 거 같아."
"아뇨, 비난하는 것은 그만하고요. 딱 두 마디만 두 번 반복해봅시다. 자, '00야 기죽지 마. 괜찮아. 00야 기죽지 마 괜찮아.'라고요."
우선은 내 이름을 스스로 부르는 것부터 어색했다. 우물쭈물거리다 겨우 따라 했다.
"기죽지 마, 괜찮아를 들은 00 씨는 어떤 마음일까요? 생각해보고, 그 감정을 느껴보세요."
선생님은 언제나 나에게 선택권을 주신다. 이번에도 용기를 내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나를 만나볼 것인지 물으셨다. 항상 그렇듯 난 자동적으로 '정답'을 말하려 노력한다. 몸에벤 모범생 습관 탓도 물론 있다.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그동안 선생님의 권유를 내가 선택하여 행동했을 때, 더 편안해지는 경험 덕분이다.그렇게 또 용기를 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