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약 먹어?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마중물이다 : 약물치료 궁금증

by 나다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처럼 전쟁터에서 나와 안전한 환경으로 복귀했는데도 뇌가 거짓 경보를 계속 울린다면? 이 경우마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잦은 인출로 인해 당신의 신체 예산이 소모된다 하더라도 뇌는 현재 존재한다고 믿는 위협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하고 있다. 문제는 당신 뇌의 믿음이다. 믿음은 새로운 환경에 잘 맞추지 못한다. 당신의 뇌가 아직 조정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신질환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 신체 예산 운용이 될 수 있는 한편으로 눈앞의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의 욕구, 또는 향후 자신의 최선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변지영 옮김, 정재승 감수-


엄마가 살이 쪘다고, 인생 최대 몸무게라면서 너스레를 떨길래 몇 키로냐고 물었더니, "42kg"이라고 대답하셨다. 예전엔 38~9kg이었으니 그에 비하면 많이 찐 거라고, 본인도 이제는 40kg대라고 몸무게 부심을 보이는 엄마를 치켜세워주며 당부를 했다.

"그렇지 그렇지~ 엄마한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 평생 40kg을 안 넘다가 환갑 넘어서 40kg 돌파하니 엄마 기준에는 대단히 살찐 거지. 근데, 엄마. 이런 얘긴 나하고만 해요. 어디 가서 42kg이 살찐 거라고 하면 욕먹어요."

사실, 우리 엄마는 본인이 살쪘다는 얘기는 나에게만 한다. 남들에게 하면 어떤 반응인지는 너무 뻔해서, 굳이 사서 타인에게 불편함을 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본인 기준에 늘어난 체중에 대해 논하고 싶을 땐, 엄마에게 공감적이며 유사한 상황에 놓인, 안전한 대상인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다.(참고로 난 인생 최대 몸무게가 둘째 임신했을 때인 52kg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엄마한테 50kg 넘어봤냐고 자랑한 적이 있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누가 엄마에게 몇 키로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42kg이라고 말하지만 엄마가 먼저 나서서 체중을 밝히지 않듯이, 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굳이 떠벌리고 다니지는 않는다. 굳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래도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숨기진 않지만, 진솔한 이야기는 주변에 비교적 안전한 대상에게만 한다.

그래서 내가 2년 정도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 중인 것을 아는 것은 내가 안전하게 생각하고, 나를 아끼는 극 소수 지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이야기가 나오면 한결같이 이렇게 묻는다.

"아직도 약 먹는 거야? 꼭 먹어야 되는 거야?

최근에 내 책이 출간되고,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한마디 더 붙인다.

"난 네가 책도 내고 했길래. 이제는 괜찮은 줄 알았어."

일면식 없이 책으로만 만난 독자도 "글이 유쾌하다. 저자가 밝다, 피곤할 정도로"라고 할 정도였으니, 지인들이 그렇게 묻는 게 무리는 아니다.



사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다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약"에 대한 부분이다. 병의 경중을 따질 때도 약을 먹는지 여부로 따지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 중이라고 하면 다들 눈이 동그래지니 말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약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들. 나 역시 모든 종류의 약을 섭렵해본 게 아니라서, 내가 경험한 부분에 한정적으로 대답인 점을 감안해주시길 바라며. (의료 문외한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에 의한 사실인 점도 밝혀둔다.)



Q : 약(항우울제)을 먹으면 어때요?

A : 먹고 나면, 힘든 상황을 좀 더 수월히 버틸 수 있어요. 생리통 심할 땐 진통제 먹듯이, 열이 심할 땐 해열제 먹듯이요.


Q : 약 복용량은 어떻게 정해요?

A : 약은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에 양을 조절해요. 적은 양으로도 충분할 땐 점점 줄여가고, 주변 상황이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것 같아서 제가 감당하기 벅찰 때는 양을 좀 늘려주세요. 약 성분이 중독되는 건 아니고, 약을 중단하면 체내에서는 일주일 정도면 다 성분이 나간다네요. 약이 많이 세련(?)되졌다고 해요.


Q: 약은 언제까지 먹어야 해요? 끊을 수 있어요? 중독되는 거 아니에요?

A :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지는 개인적 상황에 따라 다 다를 거예요. 저의 경우에는 굳이 지금 당장 끊어야 할 필요가 있냐고 의사 선생님께서 반문하세요. 저도 약에 중독성이 있어서 못 끊는 건 아닌지 걱정해서 물어봤는데, 실제로 약을 중단하면 체내에서 약 성분은 생각보다 빨리 빠져나가고, 중독성은 없대요. 그리고 저는 실제로 성인 권장 용량 대비 아주 적은 양을 쓰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계속 약물치료를 하길 권고하시는 까닭은 아직 상황이 녹녹지 않아서 제가 버거워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줄여나가고 싶다고 하니, 제 의사를 반영해서 점점 줄여보고는 있어요. 약물치료를 계속할지 여부는 제가 선택할 수는 있는 상황이에요.


Q : 왜 약을 드세요? 약의 어떤 효과 때문에 약을 계속 드시나요?

A : 잘은 모르지만, 제가 지금 먹는 약이 항우울제로서 인지개선 기능이 있대요. 단순히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 그 상황 자체를 거센 파도가 아니라 잔잔한 물결 정도로 볼 수 있도록 바꿔주는, 그런 게 아닐까 생각이 돼요. 이게 꼭 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상황도 좀 더 여유 있고 차분하게 바라보게 되고 그러면 저절로 어떤 문제가 부드럽게 넘 억 가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면, 저 자신을 좀 더 신뢰하고 너그러워지면서 향후에는 같은 상황에서도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는 약을 통해서 그 경험을 연습하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Q: 흔히들 정신과 약을 먹으면 사람이 멍해지고, 계속 먹으면 스스로 극복할 힘을 못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는 이유로 약물치료를 못하게 하던데 실제로 그런가요?

A : 멍해진다는 느낌이 어느 정도 있긴 해요. 근데 그게 막 TV에서 보는 것처럼 눈동자가 풀리고 심신이 제어가 안될 정도의 무기력한 멍함이 아니라 조금은 강제로 날 쉬게 해 준다는 느낌이에요. 그리고 그게 너무 심해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면 약을 조절해달라고 하면 돼요.


엄마는 모태 마름이기도 하지만, 식습관 역시 누가 보면 식단관리하는 사람 같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 소화가 안된다며, 1일 2식만 하시고, 식사 후 3분 이내 양치를 철저히 하시는데 그 이후에는 다시 이 닦는 게 귀찮아서 음식을 안 드신다. 그래서 자연히 저녁 6시 이후에는 금식이다. 게다가 엄마는 채소를 좋아하고 고기, 기름지고 달달한 음식 등은 소화가 안된다며 멀리하신다. 거기에 음식의 간은 아예 안 하거나 소금은 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심한 음식을 좋아하신다. 태생적으로 마르게 태어났지만, 엄마의 식성과 생활습관은 걸그룹 관리 수준인데 본인의 원에 의해서 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으시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43KG인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엄마의 체중 부심을 인정할 수 있다.


엄마의 타고난 마름에 본인이 자처하는 걸그룹 관리(?)로 인해 평생 저체중을 이어가고 있듯이, 나는 태생적으로 섬세하고 이 주체할 수 없는 감성을 억제하기보다는 즐기면서 뭔가 창조해나가는 행위로 발전시켜가고 있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듯이, 나의 이 섬세하고 날로 발전되는 감정선은 때로는 그럴 필요가 없는 무미건조한 사건에까지 감정이 투영될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남들보다 훨씬 많이 힘들다.

MBTI에서 철저한 T(Think, 사고) 형인 신랑이 보기엔 나는 "일과 감정을 분리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감정 부자라서 이렇게 일상의 모든 것이 글감이 되어 글을 쓸 수 있다고도 보며, 그게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마치 모태 마름인 우리 엄마에게는 저체중이 평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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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를 인정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다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럴 때 나를 위해서, 내가 이 상황을 버티는 수단으로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되 맹신하지는 않는다.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위에서 붓는 마중물처럼, 나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마중물이다. 약의 힘을 빌려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30분 타고, 사과 한쪽을 더 챙겨 먹으며, 반신욕을 할 기운을 얻는다. 그렇게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간다, 언젠가는 마중물 없어도 될 날을 그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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