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오래도록 버티며 살아갑니다.

나의 기본값을 인정하고, 적당한 희망을 품은 채 현실적 목표를 향해서.

by 나다움


삶의 기대를 품는 것이 번번이 자신을 망친다는 결론에 이른 뒤로 미애는 가능한 한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삶은 언제나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아부어야만 했고, 그래서 희망을 부풀리는 능력이 불필요하게 발달한 거라고. 자칫하다간 다시금 눈덩이처럼 커진 희망 아래 깔려 죽을지도 모른다고 자신에게 수시로 경고하는 것만은 잊지 않으려고 했다.

-2022 제1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중 "미애", 김혜진-


이제 곧 반팔십(?)을 코앞에 둔 나이라서 뭔가 새로 시작 전에 '이제야 이걸 하면 언제...'라며 어쩐지 머뭇거릴 때가 있다. 동시에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을 때는 '이제까지도 잘 안되었는데 앞으로는 체력적으로 더 힘들겠지' 하며 안전한 핑계로 나이를 댄다.

회사에서도 더 이상 나이로 막내가 아니며(나도 MZ세대라고 강하게 어필하긴 하지만. 하하하), 어딜 가도 나이가 적은 편에 속하는 게 아닌데 우연히 60대를 향해 달려가는 분들과 식사를 하면서 상대적으로 나는 '매우 젊은이'가 되었고, '한참, 좋을 때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특히, 운동신경이 마이너스라서 하는 운동마다 6개월이 최대였던지라 새로운 운동을 배워보라는 권유에, 손사래를 치며 이제 와서 시작하긴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것 같다고 하자, 반백살이 넘으신 분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해주셨다.

"진짜 나이가 들면 있잖아, 아파서 약을 먹고 아무리 쉬어도 낫지를 않아. 그래도 지금은 약 먹고 쉬면 좀 괜찮아지는 것을 느끼잖아. 아플 때 약 먹고 쉬었을 때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면 아직은 젊은 거야."

20대 기준에서 나를 보면 나이가 많지만, 저 기준에 따르면 약발이 아주 잘 듣는(?) 나는, '매우 젊은이'임을 다시 한번 인증하며 그렇게 '나이'에 대한 정의를 다시 세우게 되었다.


마음관리도 마찬가지이다. '기준'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서 나의 상태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고, 심리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내 마음의 상처가 없었던 상태로 돌아가거나 내가 싫어하는 내 성격이 고쳐지는 건 아니다. 기준을 그렇게 세우고 달려간다면 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지금 이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내 한계를 알며, 내가 도달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자 노력한다면, 무엇보다 내가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마음관리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재정립한다.


첫째 아들은 아빠의 우월한 키를 물려받고, 엄마의 가느다란 뼈를 물려받아 키는 큰데 저체중이다. 친정엄마와 나는 평생 저체중이기에 그다지 놀라울 게 없는데, 180cm 2XL 사이즈의 시아버님과, 170cm 88 사이즈의 시어머님이 보시기엔 본인 손주가 너무 말랐다며 안쓰럽게 보신다. 그래서 언제나 말끝마다 "많이 먹고 살쪄야지", "이렇게 말라서 어째"라고 하신다.

편식 없이 일정하게 적당량의 식사를 하며, 어른 말 잘 듣는 모범생인 내 아들은 '난 말라서 많이 먹어야 한다'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 난 이렇게 말해준다.

"아들, 네가 지금 몰라서 그러는데 많이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건 행운이야. 넌 평생 먹고 싶은 것 맘껏 먹고도 다이어트할 필요가 없는 거야. 게다가 넌 아빠 닮아서 키 가 클 확률이 매우 높으니 적게 먹는다고 키가 작을 확률도 낮아. 즐겁게, 네가 먹고 싶은 만큼만 먹으면 된다. 알았지?"


키, 몸무게 등을 비롯해서 정신건강적인 측면까지 우리는 날 때부터 이미 기본값이 정해져 있으며, 유전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아들처럼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 찌는 것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고, 어차피 그게 기본값으로 주어진 사항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으며 그것이 자라는 과정에서 여러 경험들로 인해 감수성이 더 짙어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유전적, 환경적 요인이 적절히 혼합되어 지금의 내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고정된 완성형이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기본값을 인정하며 아플 때는 약 먹고 쉬어가며 나의 기준을 현실적으로 잡는다. 동시에 나는 여전히 '매우 젊은이(?)'이기에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않는다. 느리고 천천히 가지만, 포기하거나 멈추지는 않는다.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하되, 적당한 희망을 품고,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끝으로,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는 나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안온한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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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0일, 위의 글을 쓸때만 해도 꽤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아지고 있는 나자신에 대해서 뿌듯해하기도 했고요.


사실 정신건강의학과 소재로 글을 다시 쓰는 것이 처음보다 더 힘들었음을 고백합니다.

고혈압 약, 당뇨약 등 먹듯이 정신건강의학과 약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친한 사람들에게만 하는 말입니다. 처음보는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싶은 사람앞에서는 제가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닌 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진 않고 심지어 감추려고도 합니다.


저는 고지식한면이 있어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해야만 글로 써지곤 합니다.(작가적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요. 하하) 그래서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5년전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때만 해도 다시 이렇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을거라곤 생각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다니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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