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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Jun 01. 2023

미국에 사는 중년 한국인이 한다고 하면 신기해하는 것

쉽지않아도, 멀리 보지않고, 그냥 한다.

  미국에 있지만, 오히려 미국에서 중년 한국인이 한다고 하면  주변에서 신기해하는 게 있다. 바로 영어공부이다. 영어공부한다고 하면, 동물원에 새로 들어온 희귀 동물 보듯 다들 한 톤 높여서 '(아이가 아니라 본인) 영어공부요?'란 질문을 다시 듣거나, '(그 나이에 영어공부라니) 대단하세요'라는 칭찬(?)을 듣는다.

 사실 미국에 온 한국 중년 성인은 모름지기 "미국 생활=골프하기"라는 공식이 있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와서 6개월간 한국사람에게 제일 많이 들은 이야기는 "왜 골프를 안 하세요?"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가격도 저렴하고, 접근성도 좋기에 한국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영어학습'도 있지만, 중년 성인이 이제 와서 영어공부를 하며 얻는 메리트는 별로 없다.(취업을 위한 영어성적이 필요한 나이는 지났기에 딱히 쓸데가 없다) 게다가 처음엔 호기롭게 영어공부에 도전했다가 생각보다 잘 안 들리는 리스닝과 버벅거리는 스피킹에 몇 번 부딪히면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오늘도 오랜만에 이웃에 사는 한국분이 오셔서 수다를 떨다가 또 한 번 물음이 찾아왔다.

 "골프 왜 안 하세요?"

난 궁색하게 둘째 핑계를 대며(둘째가 프리스쿨에서 12시면 돌아오기에, 나에게 자유시간은 오전 약 2시간 정도이다.)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물어보시는 분들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는 뜻으로) 9월부터는 둘째가 유치원에 가게 되면서 4시에 귀가하기에 조금 여유 있음 배워보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전자가 대외적인 이유라면 후자는 남편과 싸우기 싫어서이다. 보통은 남편들이 골프를 가면 아내들이 혼자만 미국생활을 즐기는 남편에게 정당한 휴식권 요구가 들어간다. 아내의 골프 쓴소리(?)를 겪고 나면, 결국 남편들은 같이 상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아내의 골프를 적극 추천한다. 같이 다니면 숫자 맞추기도 좋고, 어차피 같이 하더라도 각자 플레이를 하는 것이기에 협동력을 요구하지 않기에 최적의 운동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 사는 어머님 아들은 사정은 다르다. 나는 해도 되지만, 너는 안된다 주의다. 초반에는 이 문제로 한참 다투다가 지금은 어머님 아들만 열심히 골프를 하고 난 안 한다. 둘째가 유치원에 가는 9월이 되면, 여유시간이 더 많아지면 그땐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그냥 묻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영어공부를 하러 다니는 것이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난 그냥 골프가 그다지 안 내켜서 안 하는 것으로 자기세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5월에 대부분의 영어수업이 끝나고(ESL) 수업은 대부분 5월에 끝나고, 9월에 다시 시작한다.) 점점 무기력에 빠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내가 게을러졌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넘기지 않는다. 뭔가 내 맘 속 미뤄놨던 것을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오늘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깨달았다. 그동안은 내 생각이 아니라, 남편의 생각이 마치 나의 생각인양 주입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난 어느새 남편의 논리를 다른 이에게 앵무새처럼 읊어대고 있었다. 이런 식이다.

 

지인 : 왜 골프를 안 하세요?

나(남편의 생각) : 둘째가 프리스쿨에서 금방 돌아와서요. 오전에 2시간밖에 여유시간이 없어요.

지인 : 그럼 매일 2시간씩이라도 시작해 보세요.

나(남편의 생각) :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은근히 많아서요. 글도 쓰고, 작사도 하고, 영어공부도 하고. 거기다 새로 운동까지 시작하면 애들에게 소홀해질까 봐요.

지인 : 운동하고 와서 집안정리해도 돼요. 다 그렇게 하는데요. 오히려 운동되고 활력도 생기고 좋아요.  솔직히 미국 아니면 언제 이렇게 골프를 해보겠어요. 지금부터 슬슬 연습하다가 둘째 유치원 가면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해보세요.

 지인과 얘기를 나누다 깨달은 것은 내가 말하면서도 뭔가 궁색하다는 것이다. 따져보니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남편의 생각을 내 안에 심어둔 것임을 깨닫고, 솔직히 인정했다. 남편과 다투는 게 싫어서(지쳐서) 그냥 수용하는 거라는 걸. 그런데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은 조금씩 조금씩 지쳐갔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 마음을 인정해 주기로 했다

  언젠가 심리상담선생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던 게 생각났다. 내 생각을 말로 꺼내서, 내가 아닌 내가 제일 소중히 아끼는 친구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내 진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 상황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였다. 뭔가 설득력 없는 외압에 못 이겨, 지금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1보 후퇴했다고 포장했지만 근원적인 물음이 생겼다. 난 독립적인 중년 성인인데, 내가 왜 나보다 고작 2살 많은 중년 성인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인가. 심지어 나는 상대가 골프를 하는 것에 대해 허용했는데, 상대방은 나는 안된다고 하는 상황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둘째가 유치원에 가는 9월엔 내가 알아서 골프를 시작하리라고. 그리고 언제나 평화로운 투쟁이란 있을 수 없단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수업을 일주일에 세 군데서 들었다. 한번도 안빠져서 개근상품도 받았다. 이제 다 끝나고 다시 시작될  9월을 기다리고있다. 촘촘하게 짜여진 일정안에서 정신없이 지내기가 습관이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이 상황을 나쁘게 보지도 않는다. 미국에서 중년성인은 잘 안 하는 영어공부에 올인한 덕분에 외국친구들도 사귀고, 학원에서 실시한 영어 에세이 쓰기 대회에서도 뽑혀서 6월에 2~300명 청중 앞에서  내 글을 발표하기도 한다. 또한 신랑혼자 밖으로 싸돌아(?) 다니는 것이 열받아서 주말에 이것을 주제로 글 한편을 썼는데, 그게 또 좋은 생각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동상으로 뽑혀서 곧 글도 실리고 소정의 상금을 받았다. 이 모든 게 골프대신 내가 미국에서 해온 것들의 결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또 매우 나쁘진 않다. 결과는 나쁘지 않지만, 그것을 결정하는 과정이 내 마음에 앙금으로 남았으니, 다시 또 힘을 내서 투쟁을 해야 할 시간인 것은 확실한다.

 사실 요 근래 잠이 지나치게 늘거나(잠을 아예 못 자거나), 배가 안 고파서 끼니도 요구르트 등만 대충 먹고, 하루종일 무기력해서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일들이 잦았다. 이 모든 게 내가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게 되었을 때의 증상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아, 내가 내 마음을 돌봐야 하는 시간이구나, 하고. 꼬인 게 있다면 천천히 풀면 된다. 너무 꼬인 것은 과감히 끊어버리면 된다. 그렇게 나를 단단히 다져간다.

  

 한참을 혼자 씩씩거리다가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이 학교에서 시쓰기 숙제를 가져와서 순식간에 영어공부하는 중년성인모드로 돌변한다.(아들 숙제라 말하고, 엄마 할일이라 읽는다) '시간의 길이'에 대해 생각해보고 시를 쓰는거였다. 아들은 '놀이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공부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진다'고 썼다. 나는 '남편과의 시간은 매우 느리고 지루한 반면 나혼자만의 시간은 매우 빠르다'라고 생각했다. 같은 시간이라도 어떻게 느끼는지가 다른만큼, 매우 느리고 지루한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바꿔서 매우 빠르게 보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남편과 같이 있는 공간에서도 구석에 숨어들어가 이렇게 글을 쓴다. 그렇게 내 시간을 빨리감기 해본다.  



덧.

내시간은 내 맘대로

니시간은 니 알아서

상관말자 뭘하든지

간섭해도 흘려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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