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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ug 17. 2023

여름방학이라 쓰고, 썸머캠프라 읽는다

미국에서 약 2달간의 여름방학을 보내는 법

I 몰랐었다,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있다면 여름방학 계획은 필수라는 것을. 예상 못했다, 그 긴긴 방학을 (엊그제 1박 2일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 모두 다 내가 일정을 짜야했다는 것을. 이제 이번주만 지나면, 지난했던 여름방학이 끝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방학 끝에 온 개학으로 다음 주면 아들 둘이 9시에 갔다가 4시에 돌아오는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물론 여기는 공휴일 빼고도 학교지정 휴일이 많아서 또다시 촘촘하게 계획을 짜야하지만 약 2달에 비하면 뭐. 하하하)

  사실, 한국에 있을 땐 돌봄 교실 등이 있어서 여름방학이라도 똑같이 학교에 보냈는데 여기서는 얄짤없이(?) 가정에서 아이를 여름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보통은 썸머캠프(Summer camp, 보통 1주일 단위로 아이가 참여하는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에 보내는데 그게 인기 있는 썸머캠프들은 이미 연초에 다 예약이 마감되었단다.(난 그때 미국에 온 지 1달 지났을때여서 이미 그 사실을 알았을 땐 괜찮은 건 예약만료였다.) 게다가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가장 저렴한 썸머캠프도 1주일에 300달러 정도 하기에 가격 역시 만만치 않다.

  사실 미국 와서 보통은 사람들이 방학에 여행을 많이 다니니, 나 역시 그렇게 여행을 좀 다니면 여름을 보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집을 사랑하고, 혼자만의 여행(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반대로 매우 신중한 편)을 좋아하는 어머님 아들이라는 변수를 놓친 것이다. 심도 있는 막장 토론(?) 끝에 여행이라는 것은 내년에 몽땅하는 것으로 미루고, 올해는 썸머캠프로 방학을 채우기에 이르렀다.

   고려사항은 이러했다. 1) 두 아이를 각자 픽업해야 하는 동선을 고려하여 집에서 최대 15분 넘지 않는 곳에 위치하며, 2) 가격은 1주일에 최대 400달러로 상한선(가정경제를 고려하여 제일 저렴한 곳부터 알아봤다)으로 하고, 3) 아이의 성향도 고려하며(동물을 좋아하며 영어로 대화는 거부하기에 몸을 쓰는 운동종류) 캠프를 알아봤다. 6월 3주부터 8월 2주까지 스타의 스케줄을 잡는 매니저의 심정으로 가능하면 빽빽하게 넣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만족했다. 왜냐하면 심도 있는 암기위주의 공부가 아니라 테마에 따라 놀며 즐기고 오는 캠프들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나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예약하지 못한 날에 아들 둘과 24시간 여름날을 보내고 나면, 어디든 보내야 한다는 결론에 다시 도달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여름방학을 무사히 보내게 도와준 고마운 것이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VBS(Vacation Bible School, 여름성경학교)와 도서관이었다. 어머님 아들은 불교신자였지만, 9시~12시까지 1주일간 아이들을 영어노출시킬 수 있는 게 단돈 30~40달러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우리 아들들은 Jesus를 알게 되었다.(아멘. 하하하) 특히 썸캠프도 안 하던 6월 중순에는 VBS에서 가볍게 오전만 몸풀기로 아이들이 재밌게 놀다 왔다.

 또한 도서관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있어서 온 동네 도서관 프로그램들을 수집하여 돌아다녔다. 포켄몬 주간, 아이스크림 만들기, 슬라임 만들기, 북 콘서트, 독서챌린지 등등 다양한 행사들이 있어서 무한반복 똑같은 여름날에 탄산수 같은 청량함을 선사해 주었다.

  나는 MBTI 'J'로 철저한 계획형이고, 남편은 (회사에서만 J이고) 집에서는 완벽한 'P'로 긴긴 여름방학을 나에게 전격 위임하기에 이르렀었다. 여행은 갈 거야? 이 긴 여름동안 뭐 하고 보낼 거야?라는 나의 물음에, 언제나 '봐서'라고 일관했고 결국 난 몇 번 폭발했으며 그제야 여행은 안 간다는 확고한 지침(?)하에 수많은 캠프들을 등록했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무한히 횡단하며 다양한 풍경들을 감상할 거라는, 내가 예상했던 여름과는 달랐지만 이제 여름방학이 며칠 안 남은 이 시점에서 꽤 괜찮은 여름방학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다 여행을 가고 우리 집 차만 우리 동네 주차장을 굳건히 지킨 덕에, 미국 독립기념일에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워싱턴에 가서 불꽃놀이도 보고(우리 집 빼고 한국사람들은 다 멀리 여행 가서 우리 집만 갔다. 하하하), 매일매일 도서관에 강제 출근(?)한 덕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포켓몬 피규어도 다 모으고, 도서관에서 주는 쿠폰으로 잔디밭에서 즐기는 공연도 무료로 보는 혜택을 누렸다. 또 아이들 썸머캠프를 알아보다가 알게 된 헬스장에서 아이들 썸머캠프때문에 등록해서 내가 매일매일 운동을 하며 또 다른 활력소를 찾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계획이 없으면 불안하고, 촘촘하게 짜인 일정에 편안함을 느끼며, 실패 시 대안까지 갖추고 있어야 극강의 안정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게 특별히 어디 멀리 가지 않아도 일상에서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들, 내가 계획하지 않았기에 불쑥 찾아온 행복들을 발견했다. 그렇게 너무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는 법을 또 배운다. 파워 계획형인 J도 가끔은 무계획에 나를 내던지면, 내 몫으로만 느껴졌던 짐을 나눠들 누군가 생겨난다는 소중한 진리도 깨달았다.(9월 휴일에도 잘 부탁해. 하하하)

  한 달 가까이 미국 서부여행을 다녀왔던 옆집과 식사자리에서, 평소 우리 아이들을 자주 보던 옆집 엄마가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이 씩씩해지고 훌쩍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 학교에 있을 땐 하지 못했던 또 다른 활동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여기서만 보낼 수 있는 특별한 여름을 통해, 무계획의 경험들을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진 듯싶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여름방학을 무사히 마쳐간다. 별 사고 없이 무사히 미국에서의 첫여름을 지낸 우리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덧. 고마움을 전하는 김에 내년의 수고로움까지 미리 당겨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머님 아드님... 내년 여름엔 여행 가야지? 내년에 미국 고속도로를 열심히 운전하고 있을 남편에게 미리 선수 쳐서(?) 고마움을 전한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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