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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ug 20. 2023

너 혹시, 지금 나 보는 거니?

헬스장에서 내가 스토커 취급받은 이유

  얼마 전 지인이 K-부모 테스트를 해보라며 URL을 보내준 적이 있다. 매우 독립적인 성향인 나는 마이너스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해봤는데, 극성레벨 486점으로 이른바 "죽어도 못 보내 눈물 흘리는 붉은 캥거루 맘"이 나왔다.(#과잉보호, #엄마가 다해줄게, #불리불안말기) 참고로 나의 지인은 극성레벨이 999점이 나왔는데 그의 지극한 딸사랑을 보고 있자면 수긍이 갔지만, 나의 점수를 보고는 이 테스트의 정당성에 의심이 갔다. 그러던 차에 나의 극성레벨을 입증하는 사건이 생겼다.

  헬스장에서 토요일 오후 5시~8시까지 "Parent's Night out"이라는 아이들 대상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3시간 동안 부모들에게 자유시간을 선사하는 바람직한 프로그램이 있다. 저녁으로 피자와 주스까지 무료로 제공해 주어, 주말 한 끼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매우 고맙고도 훌륭한 프로그램이다.(사실 이 헬스장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하하하)


   두 아이 모두 이 헬스장에서 운영하는 썸머캠프도 지난주까지 다녔던 지라, 3시간쯤이야 뭐 거뜬하지란 생각은 나의 착각이었나 보다. 5살 둘째 아들이 인사하고 나가려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내가 문을 닫고 허겁지겁 탈출하니 문 앞에서 또 울음을 시전 하신다. 선생님이 나오셔서 아이에게 공놀이도 권하고 하는 것 같았으나 유리문 너머 엄마가 들으라고 데시벨을 높여서 더 목청껏 울어재낀다. 다년간의 노하우로, 헤어질 때 엄마의 망설임의 정도와 아이 울음의 시간은 비례하므로, 그 자리에서 지체하지 않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며 체육관 문을 닫고 나왔다.

  매사에 계획형인 나는 토요일 오후의 뜻밖의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많은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계획하다가 결국엔 헬스장 내에 카페에서 글을 쓰기로 맘먹는다. 사실 집에 있으면 누워서 유튜브 보다가 3시간 순삭 할 것 같고, 당연히 혼자 골프 갈 생각을 세워둔 남편이었기에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참고로, 남편과 뭔가 같이 하려고 계획한 건 절대 아니고, 차가 한 대밖에 없기에 내가 차를 쓸 수 없어 나의 자유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집 아니면 헬스장밖에 없었다. 우린 합법적 부부이지만 친해 보이는(?) 오해는 싫다. 하하하)

  그렇게 카페에 앉아서 자유시간을 만끽하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밖으로 나왔다. 마침 또 가는 길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게 보였다. 운동기구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1시간 전 울고 있던 둘째 아이를 찾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창에 붙으면 혹시라도 엄마를 보고 달려올까 봐 무릎은 낮추고 고개만 미어캣 자세로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운동기구들 사이로 아이들이 뛰어노는게 보인다. 우리아들은 어디있나 한참을 멀리서 찾아본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중년 여성이 영어로 "당신, 지금 나 보고 있는 건가요?"라며 나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순간 고개를 돌려 그분을 보니 불쾌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고, 나는 예상 못한 순간에 당황했지만 수개월간 단련된 표정근육을 최대한 부드럽게 지어가며 상황을 설명했다. 바로 앞 체육관에 있는 내 아들을 보고 있었노라고, 한 시간 전 울고 들어가서 걱정이 돼서 그렇다고. 너무 미안하여 연신 쏘리쏘리를 했는데, 그분은 반달모양의 눈과 치아가 보이는 미소를 띠며 이내 자기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러고는 내 아이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며 무슨 색 옷을 입었냐고 묻곤 같이 찾아보기 시작했다.(누군가 우릴 봤다면, 미어캣 두 마리가 보초 서는 것 같아 보였을 것이다.)

  그분은 자기의 경험담을 더 들려주었다. 자기만의 꿀팁(?)으로, 아이 가방에 엄마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넣어주어, 언제든지 엄마가 필요할 땐 전화를 하라고 일러주라는 것이었다. 그럼 아이가 진정으로 엄마가 필요할 땐 엄마가 찾아갈 수 있고, 아이 역시 엄마와 언제든지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서로에게 안정감을 줄 것이라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를 스토커로 오해하셨지만, 이내 설명드리니 나의 상황과 마음을 공감해준 참으로 친절하신 분이었다.

    

  부정했지만, 사실 나는 심리테스트 결과처럼 다소 극성부모인 엄마 캥거루가 맞나 보다. 특히 아이를 떨어뜨려놓기 불안한 과잉보호 엄마일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헬스장 카페에서 자유시간을 보내야겠다고 결정했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들만 혼자 두는 게 걱정돼서 가까이에 있었던 거다. 마침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가는 길에 아이들이 있는 체육관을 본 거라 했지만, 사실 화장실은 아이들 체육관 반대쪽에도 있었다. 모든 것에 이유를 붙여가며 자유시간조차도 아이들과 가까이 있어야 마음이 놓였던 게 아닐까?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과 내 아이들이 겹쳐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5살 때 유치원 갔다가 하루종일 울어서, 내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6살에 유치원에 친척언니와 함께 다니는 조건으로 유치원을 겨우 다녔다는 일화를 아직도 듣는다.(참고로 그다음 해에는 친척언니가 안 다녀서 그만뒀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우리 아들은 1살 때부터 어린이집을 2~3시간씩 다니기 시작했으니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안쓰럽기도 하다.  

   게다가 나는  20살이 넘어서도 아빠가 있는 중국에 갔다가 혼자 한국에 돌아올 때 엄청 울었던 적도 있다. 갑자기 몰아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압도되어 눈물이 나오는 것 같다. 근데 그 모습을 아이가 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진다. 아이의 울음과 나의 지난 경험들이 같지 않을 텐데, 자꾸만 동일선상에 놓고는 아이의 상황에 나의 오랜 기억을 포개어 아이를 다시 캥거루 주머니로 넣는다. 애들 없이 24시간 보내면 소원이 없겠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동시에 내 마음 깊은 곳에 아이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나 보다.

   언제나 아이들을 품에 둬야 하는 이유가 계속 생겨났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지 얼마 안돼서, 엄마가 바빠져서, 미국이라는 환경변화가 있어서 등 새로운 변명으로 아이를 가까이 둬야 안심이 되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다짐한다. 나와 비슷하게 눈물이 많지만, 엄연히 나와는 다른 존재임을 존중하고 아이와 나를 분리하는 것을 연습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 비추어 판단하지 않고, 언제나  물어본다. 그리고 한 발씩 떨어뜨려놓는다. 그렇게 헬스장에서 스토커로 오해받는(?) 경험을 하고 나서 비로소 내 아이를 캥거루 주머니에서 놓아준다.

덧.

  나만 엄마캥거루가 아니었나 보다. 골프 간다던 남편은 집에 혼자 있다가 1시간 일찍 와서 나와 함께 헬스장 소파에 앉아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남편도 1시간 전 나와 같은 곳에서 기린처럼 기웃거리며 아이들이 잘 놀고 있는지 한참을 살핀다.

  둘째는 그런 우리들의 시선을 느꼈는지 놀다가 이따금씩 문쪽을 쳐다본다. 프로그램 종료시간이 20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데려가는 부모가 2팀이 있었다. 당장 우리도 애들을 데려올까 종종거리는 내게 신랑이 말한다, 10분만 더 기다려.(이럴땐, 나보단 한수 위 캥거루 아빠)


  그렇게 조금씩 늘려간다. 계속해서 점차 멀어지기에 더 소중한 순간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동시에 다음 주 토요일 5시가 기다려진다. (다음 주엔 멀리 가야지.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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