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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Jan 01. 2024

이게 공을 주우러 다니는 운동은 아닌 거 같은데

골프 : 노인이 돼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지만, 난 쉽지 않아

 '지금, 여기서만, 가장 싸게'라는 말은 비단 홈쇼핑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운동에도 해당한다. 평소엔 관심조차 없던 운동도 '지금, 여기서만, 가장 싸게'라는 말을 만나면, 안 하면 손해 보는 느낌적인 느낌을 받아 웬만하면 하게 된다. 외국에 나가면 골프가 그러하다.          

  처음 골프를 했던 것은 20대 초반 중국에서 6개월간 살았을 때다. 남들 다 보내주는 국영수학원은 안 보내주시던 아빠가 너희 세대에는 골프가 필수운동이라면서 실내 골프 연습장을 등록해 주셨다. 남동생과 매일 연습장에 가서 하얀 천 가운데에 빨간 동그라미를 째려보며 7번 아이언으로 기본 스윙연습을 했다. 몸을 고정한 채 팔만 시계추처럼 움직이는 이른바 '똑딱이'에 매진한 결과 좀 자신이 붙었다. 성실함이 무기인 나는 남동생이 연습을 빠지는 날에도 혼자 연습장을 향했다. 그렇게 흘린 구슬땀에 비례하여 자신감은 상승하고 있었다.      

   골프의 매력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필드가 제격이라며, 아빠는 골프시작한 지 5개월쯤 지나서 필드를 예약해 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성실함을 믿으며, 연습량이 더 많은 내가 남동생보다 더 잘할 것이라는 망상까지 하며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그 환상은 당연히(?) 골프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실내 연습장에서 쌓은 자신감은 필드에서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이유는 이러했다. 우선 내가 연습했던 실내 연습장과 실제 필드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절제미가 돋보이는 실내 연습장과는 달리 실제 필드는  경사, 각도, 방향, 바람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기본 스윙 똑딱이만 겨우 몸에 익혀서 간 나는 처음 친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자 그때부터 정신이 우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니 그나마 자신 있던 기본 스윙도 안되고, 내 골프공은 야구장의 파울볼처럼 모두의 탄식만 자아내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자꾸 공은 내가 원하지 않는 곳에 떨어졌는데, 평평한 잔디밭이 아닌 주로 나무 사이로 숨거나 아예 물속으로 빠져 찾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공을 '치는' 게임이 아니라 공 '찾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너무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며 같이 간 지인은 괜찮다 해주셨지만, 나 때문에 게임이 지연되는 게 또 불편했다. 쫓기는 마음이 더해지자 나중에는 엉망진창이었고 급기야는 얼른 끝나기만 해라,를 속으로 외치며 골프장 탈출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코어를 적어주시던 캐디분께서도 자꾸 사라지는(?) 내 골프공 때문에 동공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한 후 나는 더 이상 기록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하며 얼굴이 빨개졌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만, 같이 시작한 동생과 너무 큰 격차에 결국 난 무너지고 말았다. 그렇게 첫 골프 필드 인증샷만 남기고, 그날을 끝으로 골프도 나의 운동목록에서 삭제되었다.      


  그렇게 잊고 지내던 골프. 미국에 2년 동안 살 기회가 생겼다고 하자 가기 전부터 다들 '안느는(?) 영어 할 생각하지 말고 싼(?) 골프나 배우고 오라'고 했다. '싸다'는 말에 혹해서 가볍게, 골프 다시 한번 해볼까,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20년 가까이 지나서 내가 왜 골프를 그만했는지를 잊어버렸던 탓도 컸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여기서는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볼까?'였다.                          

   하지만 골프의 재시작에는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그것은 남편이었다. 나의 골프를 결사반대하기에 이르자, 사실 마이너스에서 출발한 골프를 향한 나의 마음이 갑자기 수직상승하며 100점 만점에 99점에 닿았다. 남들은 다하는(?) 골프를 외부 압력에 의해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그게 또 속상했나보다. 사실 성인이 된 내가 타의에 의해서 무언가 못하는 이 상황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그 이면에는 상황적인 측면도 있었다. 미국에 와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짧은 영어로 긴 생각을 담지 못하는 게 불편했고, 차가 없으면 어딜 갈 수 없어서 둘째 아이와 강제 칩거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런 상황에서 또 내 의지대로 시작조차 못하는 '골프'가 괜히 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도 않은 골프란 운동 때문에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골프란 운동 자체를 안 좋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극 내향형으로 친한 사람에게만 입동굴을 개방하는 내가, 골프 초보자의 입장에서 경기지연이라는 어쩔 수 없는(?) 피해를 끼치는 상황을 알면서도 게임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겠는가. 즉 골프는 매우 사교적인 운동인데 나는 굉장히 비사교적 인간임을 간과한 것이다.       

  물론 나와 매우 친한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초보로 골프를 같이 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도 있다.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는 골프도 사람들도 낯설다. 물론 다들 좋은 분들이고 함께해서 매우 어색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운동인가, 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골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깨끗이 접고, 타인과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 가득한 운동센터에 다닌다.  

  골프를 잠시 체험하고, 한 가지 깨달은 점은 있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상황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를 한번 더 확인해 보는 것이다. 골프라는 운동은 참 좋은 운동인 것은 확실하다. 녹음 가득한 곳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잔디를 밟아가며 공을 치는 운동, 관절에 큰 무리가 가는 것도 아니기에 늙어서까지 하기 적합한 운동, 함께하는 이들과 담소를 나누며 친목을 도모하기도 좋은 운동 등 장점은 많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싸게 할 수 있는 장점이 하나 더 추가되었지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바로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인가 하는 것이다. 잘 맞는지 여부는 많이 해보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20년 전 처음 골프를 접했을 때보다 지금은 여러모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더 뻣뻣해진 나의 신체상황을 고려하면 안 하는 것도 현명한 대안이었다.

  다수가 선택하는 답은 아니고, 그래서 가끔 소외(?)될 때도 있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에 만족하며 남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도 충분히 괜찮다고, 나 자신을 토닥여준다. 운동은 많고 내가 아직 안 한 운동은 더 많으니까.

 

덧.

  '기적(?)의 논리'가 있다. 이름하여 '이게 돈 버는 거야'라는 건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미국은 워낙 골프장도 많고, 비용도 한국에 비해 저렴하기에 여기서는 골프장 한 번씩 나갈 때마다 (한국과 비교 생각하면) 돈 버는 거라며 다들 골프장에 간다.(안 하는 게 제일 돈 버는 거다, 란 사실은 잠시 잊어준다)

  어딘가 익숙해서 봤더니 평소 내가 쇼핑에 적용하는 논리였다. 한동안 치솟는 환율에 겁먹어서 이 기적의 논리를 자제했었는데, 다시 적극 활용해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 직구해서 물건을 사곤 했는데, 여기 미국 현지에 있을 때 쇼핑하는 게 (해외배송비가 안 붙어서) 돈 버는 거라고. 매일 가는 운동센터에 새로운 활력부여차원에서 연말세일하는 쇼핑몰에서 새 운동복을 주문하고, 기적의 논리를 외친다. 새 옷 입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에도 운동하는 게 돈 버는 거라고.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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