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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Dec 26. 2023

우량아 아들을 살짝 놓쳤을 때 남편이 강제 등록한 운동

필라테스 : 끝나고 나면 저절로 사족보행을 하게 된다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침에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얼굴의 배겟자국을 볼 때, 앉았다가 일어서면 무릎에서 우두둑하는 소리를 들을 때 등이 있다. 일평생을 에너지 절약모드로 살아왔지만,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나쁜 건강상태는 아니었는데, 점점 내 허약한 신체가 삶에 불편함을 주기 시작했다.

  특히 아직 10kg을 넘지 않던 내 아들을 살짝 놓칠 뻔한 일이 있은 후 나의 체력은 문제해결형 남편에게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남편이 잠깐 집 앞으로 나오라고 호출해서 간 곳은 다름 아닌 필라테스 학원. 수업을 한번 들어보고 괜찮으면 6개월 수강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필라테스 선생님이 아닌 남편이 해주었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돈을 운동하는데 써야 하나 하는 고민을 잠시 했으나 필라테스 선생님과 남편의 강렬한 눈빛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수강신청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필라테스를 얼렁뚱땅 시작하였다.

   처음 필라테스 학원에서 2회 정도는 개인교습을 하며, 기본적인 자세, 용어, 호흡법 등을 자세히 배우고 그룹강의를 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해 주셨다. 언뜻 보면 흡사 고문기계 같아 보이는 정체불명의 커다란 도구들 앞에서 눈이 동그래진 나를 느끼셨는지, 기구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천천히 설명해 주셨다. 신기했던 지점은 같은 동작을 해도 기구를 이용해서 동작을 하면 조금 덜 힘들고 자세를 좀 더 잘 유지할 수 있던 거였다. 게다가 필라테스 자체가 원래 재활 및 치료 등을 목적으로 시작된 운동이라는 점이 출산 후 나의 체력 갱생과 딱 들어맞는 듯해서 호기롭게 또 시작했다.

  나의 운동일지에서 '도입'다음에 얼마 안 가 바로 등장하는 '위기'. 필라테스는 운동을 하러 가는 길이 위기였다. 회사를 마치고 필라테스에 가기 직전엔 솜 먹은 인형처럼 축축 쳐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빠질 때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스테이크값이 허공으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간신히 옮겼다. 우선 필라테스 학원까지 가면 반은 성공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필라테스 선생님의 다정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에 따라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동작의 완성도 여부는 차치하고. 그렇게 1시간을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사지를 펄럭이고 나면, 나는 한 마리의 동물이 되어 사족보행으로 간신히  탈출한다.

필라테스 후 나의 표정. 안쓰던 근육을 쓰는 것은 온 몸에 못이 박힌듯한 고통(?)으로 눈뜨는 것도 버거웠다.

   

  우스갯소리로 필라테스 후기를 검색하면 '사람도 찢어지나요?', '필라테스 연간 사망자'등이 뜬다는 유머가 있을 정도니, 내 평균이하의 체력을 감안하더라도 심한 엄살은 아니긴 하다. 운동이 끝나면 머리는 헝클어지고 동공이 풀린 채 사지를 후들거리머, 재활센터 분위기를 만드는 주동자인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선생님은 잠시 누워보라면서 여기저기 뭉친 근육을 풀어주신 적도 있었다.

    다른 운동도 다 힘들었지만, 필라테스는 왜 유독 힘든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분명히 처음에 시작할 때는 필라테스 기구가 있기에 좀 더 편했었는데, 왜 이리 정신을 놓을 정도로 힘이 든 것인가. 기구의 도움을 받으면 조금 수월한 건 사실이지만, 수행하는 동작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결론에 았다. 발을 쭉 뻗었다가 당기고, 팔로 밀었다가 당기는 등 보기엔 간단한 동작의 연속이지만 몸 안의 안쓰던 근육들 다양하게 쓰는 것이었고,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계속 쉼 없이 해나가는 게 녹녹지 않았던 거다.

  분명 내 귀에 입력되는 것은 간단한 한국말인데, 그것을 송출해야 할 내 몸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삐걱대고 있을 때가 많았다. 특히 평소에는 잘 인식조차 못했던 내 신체의 부위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게 맞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럴 테면 이런 거다. 갈비뼈는 닫고, 꼬리뼈는 바닥에 붙이며, 코어를 잡고, 골반은 밀고, 어깨는 귀에서 멀어지며, 정수리는 누가 잡아당긴다는 느낌. 평소에 내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타자 치는 손가락과 먹을 때 기쁘게 벌리는 입정도였는데, 소외받던 부위들이 총 출동하여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느슨해진 근육들을 단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이 동작들이 10kg이 안 되는 내 아이를 잘 안을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처음 결제한 6개월이 끝날 때쯤 의심이 들었다. 참고로 중학생때부터 엄마심부름으로 쌀 20kg 정도는 거뜬히 어깨에 착 올리고 슈퍼를 나서던 생활밀착형 근육이 발달한 상여자(?)였는데, 10kg도 안 되는 아들을 안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은 스스로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필라테스를 하는 것은 좋았다, 뭔가 내 체형이 교정되는 듯한 느낌적느낌도 들고. 하지만 매번 하고 나서 똑같이 힘든(가끔씩 더 힘든) 나의 체력을 보며 절망감을 느꼈다. 주저하다 어물쩍 한번 더 6개월 재결제를 해서 1년 정도 필라테스를 했지만, 1주일에 한 번으로 내 빈약한 체력이 좋아지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였고, 동시에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내 몸뚱이에 실망하며 이 정도면 됐다고 그만두기에 이른다. 가기 전에 '부담감'에, 갔다 와서는 '피로감'에, 비어 가는 통장잔고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게 필라테스 체험기(?)도 마쳤다.

지금 다니는 운동센터 출입문 앞에 필라테스 하는곳이 있다. 무료체험 1회 후 이곳은 매우 빠르게 지나간다. 하하하

  

  그래도 누가 그간 운동 뭐 했어요? 하고 물어볼 때 필라테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미국에 와서 운동센터에 갔는데 역시나 그동안 해온 운동에 대한 질문에 자신 있게 '필라테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영어스럽게 혀에 버터 바른 듯 발음을 굴려도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던 이유. 내 비루한(?) 신체가 필라테스 안 한 것처럼 보여서 그런가,라는 스스로 찔리는 마음이 컸으나 나중에 원어민의 '필라테스(Pilates)'라는 발음을 듣고 깨달았다. 내 귀엔 '필라리스'라고 들리며, t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제는 이름조차 낯선 그 운동, 미국에서도 1회 무료권을 이용해 한번 호기롭게 다시 도전해 봤다.

  그래도 1년 배웠다고 필라테스에서 쓰이는 테이블탑 같은 용어를 알아듣는 나 자신에게 흡족해하며, 몸이 기억하고 있는 동작들에 머리 척척, 몸으로는 겨우 해냈다. 쉬지 않고 쏟아지는 선생님의 지령에 맞추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는 신체의 재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해도 힘든 것이 필라테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미국에서 필라테스는 무료 1회만 받고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렇게 1년간의 필라테스, 1년 후 다시 해도 똑같이 힘든 필라테스를 발견하곤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혹시 수강료가 좀 저렴하면 또 해볼 용의가 있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너무 힘든데 비싸고, 선생님의 단호한 구령에 매번 잘 따라갈 자신이 없다.(어딜 가나 필라테스 선생님들은 다정한데 단호하다.)

  동시에 이 힘든 것을 1년이나 해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고난의 시간(?)을 기꺼이 감내한 나 자신을 마땅히 칭찬하며, 힘들어서 그만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다양한 운동을 체험하기 위한 목표를 위해 자진 중도포기를 한 것이라고 포장도 해본다. 

  연말이라 그런지 자꾸 한해를 되돌아보며, 자의 또는 타의로 중도포기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몸과 마음이 축 쳐져있었다. 글을 쓰다 보니 깨닫는다. 필라테스를 이젠 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다시 해보니 몸 어딘가에 필라테스가 내 삶에 찍은 작은 점을 찾을 수 있었다.(미국에서 운동할 때 보통 옆사람 곁눈질하며 따라 하기 바빴는데, 필라테스는 용어를 알아듣고 좀 더 빨리 동작을 따라 할 수 있었다. 하하하) 무언가 하다가 그만둔다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 소중한 경험이 하나 쌓여 또 다른 곳을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나를 다독이며, 또 다른 운동을 찾아 헤매는 일을 기쁘게 맞이한다.   

또 다른 운동을 찾아나설 땐  언제나 즐겁다


덧. 많은 운동들을 집에서 할 수 있지만, 혼자 하기  힘든 운동을 꼽으라면 난 단연코 필라테스를 꼽겠다.

필라테스를 학원에서 배우고 1년 정도 배웠으니 집에서 필라테스 리포머를 사서 해야겠다, 하고 당근마켓에서 가정용 필라테스 기구를 사보았다.(참고로 지인이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 맥시멀리트인 내가 소개했던 물품 중 물개손뼉 치며 가장 신기해했던 것이 필라테스 리포머였다. 하하하)  

  그 이후 필라테스와 더 멀어졌는데, 이유를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기구가 눈 앞에 있어도, 하고 나면 네 발로 기게 되는 운동을 하기 위해 기구에 스스로 올라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나 같은 비운동 생활인은 자상하면서도 매서운 선생님의 지도가 있어야만 그나마 강제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필라테스 기구를 나처럼 집에 려고 사려는 분이 계신다면 말리고 싶다. 필라테스는 비싼 돈 줘야 아까워서 안 빠지고, 선생님의 구령에 맞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움직여야 한다.  다소 비싼 수강료와 기구, 그리고 선생님 친절하면서도 단호한 지도가 있어야만 하는 운동, 그것이 필라테스에 대한 나의 정의이다.

 

애들 장난감으로 유용히 쓰인 내 필라테스 리포머


덧 2.  이사할 때 제일 처분하기 힘들었던 필라테스 리포머를 떠올리며 다시는 사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동시에 드는 생각. 만일 가정용 리포머가 아니라 필라테스 학원에서 하던 것과 똑같은 기구를 사면 좀 달랐으려나? 하는 생각을 잠깐 하는 진정한 맥시멀리스트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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