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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Dec 17. 2023

발레 적합 체형이 발레 부적합한 신체로 거듭난 이유

발레 : 어린 시절의 로망, 어른이 되서는 절망

   여러모로 난 발레에 적합한 체형이었던 것은 분명했다. 고등학교 시절 일면식이 없던 한 친구가 대뜸 내게 물었다, "너 발레해?". 그 친구의 시선은 나의 내 종아리 뒤쪽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종아리알'을 보고 한 말이었다. 깡마른 상체와 달리 유독 발달한 종아리 근육을 보고 추측했나 보다. 그 얘기를 같이 듣던 내 친한 친구는 극한 공감을 하며 자지러졌고, 그날부터 내 별명은 '알'이 되었다.

   그렇게 잊고 있던 발레 적합체형론은 또 다시 제기되었는데 직장인이 되어 등록한 발레학원에서였다. 발레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목이 길어서 발레 하기 좋은 체형이네요. 앞으로 기대할게요."라며 선천적 신체조건을 언급하며 기대감을 나타내셨다.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으면 발레꿈나무 체형이라는 선생님의 칭찬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늦깎이 발레 꿈나무는 의기양양하게 수업에 참여했다. 그런데 간과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연성이다.

 내가 꿈꿨던 발레의 모습은 이처럼 분홍분홍 했는데 현실은 잿빛이었다. 하하하 / 출처: Pixabay

    


  발레의 모든 동작은 중력을 거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상에서의 행동과는 정반대지점에 있다. 평상시 우리의 발은 땅에 닿아있는데 비해 발레리나는 발끝만 지면에 닿 동작이 많다. 평범한(?) 어른들은 잘 안 되는 다리 찢기 같은 동작이 발레리나는 쉽게 되는 것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이처럼 발레의 기초는 유연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발레동작을 하기 전에 우선 스트레칭을 많이 하는데 그때부터 나의 고난은 시작되었다.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다리를 펴고, 허리를 굽히고 스트레칭을 하는데 뻣뻣하게 굳나의 신체를 보고 선생님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참고로 나는 체력 테스트에서 유연성 부분은 아예 측정불가가 나올 정도로 경직된 신체의 보유자다. 물론 발레를 하다 보면 스트레칭을 많이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유연해져서 발레동작을 더 잘하는 선순환을 이룰수도 있다. 하지만 마이너스 유연성에서부터 시작한 나는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허리를 굽혔을 때 당연히(?) 발끝 근처에도 못 가고 무릎 조금 밑에서 팔을 허우적 대는 내게 발레는, 마치 월드스타와 방구석 팬의 거리처럼 너무 먼 곳에 있었다.

   그래도 1분기 수업료는 미리 내놓은 상태였기에 빠짐없이 수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처음에 발레꿈나무(?)로 호기롭게 시작했던 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점점 절망의 연속이었다. 수업시간에만 잠깐 하는 스트레칭으로 내 신체가 유연해지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선생님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평균 이하로  뻣뻣한 내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시고, 수업시간에 좀 더 열심히 하기를 권장하시기에 이르셨다. 그렇게 발레 우등생에서 발레 열등생으로 자연스럽게 위치전환이 되었다.  

   게다가 발레는 생각보다 더 체력소비가 큰 운동이었다. 발레리나가 보통 여유로운 표정으로 가볍게 하는 동작이 내겐 전혀 가볍지 않았다. 동시에 예상보다 더 동적인 운동이었다. 계속 찢고 뛰고 버티고 뻗으며 온몸의 근육을 써가며 내 사지를 움직여야 했다. 점점 더 내가 처음 상상했던 발레 하는 내 모습이 아니었다.


 아직도 옷장 한구석에는 발레복과 토슈즈가 있다, 내 맘속 한구석에 발레가 자리잡은 것처럼. / 출처: Pixabay

 

  사실 발레는 어린 시절 유예된 욕망의 실현이었다. 난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학원 다니길 좋아했지만, 부모님은 자기주도 학습을 중시하셨다. 결국 최종 의사결정자인 부모님의 뜻에 따라 어린 시절 사교육은 피아노 4년이 유일했다. 한참 다양한 사교육을 접할 나이에 백지상태에 있던 나는 그 시절 욕망이 사라지지 않고 성인이 되어 뒤늦은, 하지만 끊임없이 다양한 분야의 학원을 다니곤 했다.

  그중에서도 7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발레였다. 이유는 분홍색 토슈즈와 예쁘게 펄럭이는 튜튜 발레복이 예뻐 보여서였다. 그렇게 로망이 된 발레였는데, 마침 회사 근처 문화센터에서 발레수업이 있길래 거침없이 등록했다. 당연히 등록하자마자 토슈즈와 발레복을 모두 분홍색으로 사고 뿌듯해했다. 그 만족감이 발레수업을 참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우아한 발레리나의 모습이 되고 싶었던 높은 이상과 마이너스 유연성을 가진 신체의 현실의 차이는 좁지지 않았다. 결국 처음의 분홍색 발레복이 주는 설렘은 점점 옅어졌고, 그렇게 발레체험은  끝이 났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또 발레에 도전 하고 싶다는 열망은 여전히 희미하게 숨 쉬고 있다. 그래서 이사할 때마다 처분하라는 남편의 핀잔에도 발레복과 토슈즈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7살에 처음 꾸었던 발레에 대한 유예된 욕망은 20대 후반 경직된 신체를 만나 현실을 깨달았지만, 반 팔십이 되는 아직까지 발레복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어린 시절의 로망이 어른이 되어 절망으로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난 발레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는 동시에 제법 귀엽다. 하하하)

  그래서 발레를 배운게 아무것도 아니었나? 하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비록 발레가 내 뻣뻣한 몸과는 안맞았지만, 발레에 대한 이해도가 급 상승하는 계기가 되어 그 이후로는 기회가 되면 발레공연을 즐긴다. 발레동작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그저 이루어진것이 아님을 상기하곤 더 큰 감탄을 하며 몰입한다. 굳이 찾아본 3개월 발레체험 후 내 몸에 새겨진 긍정적 변화이다. 동시에  나의 인생운동 찾기 계속되고, 발레는 소거되었다.

발레에 빠진 나와 달리 꿈나라로 빠진 내 아드님. 발레를 배운이와 아닌자의 차이라고 해둔다. 하하하


  덧. 연예인 중 발레 후 체형에 긍정적 변화가 있었다는 기사를 보거나, 바에 우아하게 다리를 쭉 뻗은 사진을 보면 다시 한번 발레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는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도전할지 모르는 발레를 위해서라도 당시 걸림돌이 되었던 유연성을 좀 더 길러보기로 결심했다. 

   매일 운동센터에서 스트레칭 기계에 내 다리를 올려놓고, 마치 통증부위에 침을 맞는 듯한 심정으로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본다. 이 고통이 언젠가 나의 유연함으로 돌아오고, 그러면 발레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숙이면 그대로 부서질 것 같은 뻣뻣한 내 몸 어린 시절 유예된 욕망으로 사탕발림하며 스트레칭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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