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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Mar 04. 2024

남들이 잘 안 해서 끌렸는데, 못해서 그만뒀다

태극권 : 공원에서 누구나  한다고 쉬운 게 아니던걸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란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난 피할 수 없는 상황은 더 격렬하게 버둥대거나 무심하게 버틸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해도 부딪히는 상황이라면, '반항하는 마음'과 '이왕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을 더해 적극적으로 덤빌 때가 있다. 바로 태극권을 배울 때 그랬다.

   나는 한국인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한국에서 한국음식을 먹고 쭉 자랐지만, 외국만 나가면 10에 9 중국인으로 본다. 스위스에서 만난 중국인이 나에게 영어로 길을 묻다가 갑자기 중국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어느 '지방'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정도니까, 나는 확신의 중국인상(?)인가 보다. 이미 부여된 나의 외모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하고 적극 수용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운동에서도 중국의 것을 기웃댔는데, 대학교 때 교양수업을 '태극권'을 신청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배웠던 태극권은 10가지 기본 동작을 익히고 마지막에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10가지 동작밖에 안 되고 흡사 술 안 마시고 취권 하는 느낌(?)으로 흐느적 거리는 것 같아 쉽게 보고 덤볐는데 역시나 오산이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것은 고수였고, 나 같은 하수는 한 발로 서서 한 발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무거운 동작이었다. 원래는 기의 흐름을 느끼며, 이완되는 게 이 운동의 특장점인데 나는 뻣뻣하고 힘들게 내 몸을 움직이다 보니 한껏 긴장하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게다가 수업 중반쯤 교수님이 하신 얘기는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이 동작들이 쉬워 보여도, 기본적으로 유연성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동작입니다. 따라서 스트레칭을 꾸준히 하도록 하세요." 숫자 자체가 싫어서 인문계인 행정학과 왔다가 통계학 수업 필수라는 말을 듣고  좌절했을 때 느낌이었다. 태극권과 유연성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했지만, 손가락조차 뻣뻣한 나에게 쉽지 않은 운동이었다. 100% 출석률과 리포트를 열심히 써서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내가 대학교 때  들었던 과목을 통틀어 최악의 점수를 남겼던 태극권이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는지 중국에 6개월 정도 살 기회가 있었는데 아침에 공원에서 태극권을 열심히 하는 현지인을 볼 때마다 몸이 자주 움찔움찔했고, 때로는 구석에서 따라 하기도 했었다. 외모적으로는 전혀 위화감 없이 잘 섞였는데, 나의 동작은 정말이지 눈에 띄게 처참해서 몇 번 하다가 그만하곤 했지만 말이다. 나보다 한참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아침에 공원에서 가볍게 하는 운동이 알고 보니 쉽지 않음을 깨닫고는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출처: iStock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제 삶을 살아가는데 많은 것을 판단하고 처리하기 위해서는 관성적으로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미국에 있어도 여전히 나를 한국인으로 한 번에 맞추는 사람이 드물다. 서양인뿐만 아니라 미국에 살고 계시는 한국인 어머님이 수영장에서 "어머, 난 말 안 하고 있을 땐 중국인인 줄 알았어. 호호호"하며 뒤늦게 나를 반갑게 맞아주실 때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나의 껍데기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 옆에 분은 "난 베트남에서 온 줄 알았어." 하시며 또 다른 가설을 내세우셨다. 음, 내가 베트남쌀국수 좋아하긴 하지. 하하하)

자세히 봐야 다르다. 대충 보면 비슷하다. 내 외모가 그렇다.

  

  이처럼 타인이 나를 보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나 자신을 들여다볼 때도 관성적일 때가 많다. 매일 새벽에 가던 운동을 못 갈 때, 겨울이라 추워서 그런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다. 하루에 1끼조차 먹기 싫을 땐, 한국에서 사 먹던 외식이 그리워서 그런가 하고 무심히 넘겼다. 밤에 잠을 잘 못 잘 때도 하루가 단조롭고 별일을 안 해서 그런가 하며 나를 채찍질하기 바빴다. 그러다가 애들 데리고 밖에 나왔다가 늘 듣던 무심한 이야기에 눈물1시간 동안 멈추지 못하는 나를 보고 그제야 깨닫는다. 아, 내가 지금 몸과 마음이 지쳤구나, 하고. 내가 몇 년 전 번아웃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 전의 모습을 다시 재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내가 해야 할 소소하지만 가짓수가 많은 의무들을 꾸역꾸역 해나가다가 또 한 번 넘어진 거다.

  여전히 똑같이 넘어지고 아파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이제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관성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좀 더 자세히 본다. 그리고 이제까지 했던 행동이 번아웃을 일으켰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반대로 해본다. 글도 안 쓰고, 영어수업도 일부러 빼먹고, 아이 학교 봉사활동도 한달은 쉬어본다. 대신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소설 읽기만 하루종일 하기도 하고, 매번 미뤄뒀던 뷔페도 혼자 가본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을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운동을 놓지 않는다. 새벽 6시부터 1시간씩 강사님과 덤벨 들고 하는 운동은 하지 않지만, 저녁 6시에  딱 5분만 로잉머신 타고 사우나하자는 마음으로 헬스장에 간다. 막상 가서 하다 보면 30분 정도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다.

   비록 태극권을 내 몸에 성공적으롤 장착(?)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태극권을 배우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쉬워 보이는 게 막상 해보면 의외의 복병이 숨어있음을 알고, 동작이 끊기지 않게 느리더라도 계속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 삶에도 적용해 본다.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사실을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현재의 상황에 맞게 나의 높은 목표를 수정한 후,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기로 한다. 그렇게 잠시 내려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해본다. 

   

   덧. 연재글을 시작하고 제일 염려했던 부분이, 과연 내가 매주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지나친 기우가 아니었다. 한번 쉬기 시작하니 두 번째 안 쓰는 것은 쉬웠고, 세 번째는 오히려 쓰는 게 어색했다. 새로운 관성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글쓰기 관성이 작동한 것은 생각보다 작은 곳에서 비롯된다. "요즘 브런치가 뜸하네요. 글을 기다리고  있어요"란 구독자님의 한마디였다. 누군가 나의 이런 소소한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그 사실이, 다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렇게 나의 운동방황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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