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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Mar 12. 2024

이런 운동은 평생 나랑 안 맞는 걸로

줌바 : 입력과 출력의 간극이 너무 크다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운 것들이 있다. 내 아들들이 스스로 숙제하기, 어머님 아들이랑 친해지기, 그리고 내가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는 것이다. 내 아들들은 숙제는 커녕 아침에 학교 갈 때 가방도 안 가지고 가서 내가 한숨을 푹푹 쉬며 가방을 들고 뒤따라 간다. 어머님 아들과는 이제 유대감 조성이 아닌 (조금 더 하위 목표인) '덜 싸우기'를 위해서 최대한 같은 공간에 안 머무는 게 상책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고 몸동작을 하는 것은 부끄럼움을 감수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도 최악의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그렇다 나는 타고난 박치, 몸치이다.

  내가 박치이자 몸치인 것을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용시간에 댄스 스포츠를 배우는데,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불성실한 학생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선생님의 지도와 다르게 동작이 표출되고 박자감각은 엇박자에다가 몸은 뻣뻣해서 파트너인 친구조차 웃음을 참지 못할 때가 많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빠르게 캐치해서 무난하게 하는 동작을 난 왼손에 오른발인지 방향조차 헷갈리며 삐그덕 댈 때 다짐했다. 앞으로 난 춤과 관련된 것은 웬만하면 걸러야겠구나, 하고.   

   그때의 다짐을 항상 소중히 간직하며 살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잠시 도전의식이 솟구쳤다. 다니고 있는 운동센터에서 '줌바'수업을 발견한 후였다. 지인이 줌바 얘기를 할 때마다 밝아지는 얼굴을 볼 때 이 운동의 매력이 뭔지 궁금하긴 했었다. 거기에 따로 돈을 내고 수강하면 절대 안 들었겠지만, 이미 한 달에 내는 운동센터 요금으로 체험할 수 있었기에 정말이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당당하게 줌바를 배우러 갔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내가 줌바를 배우러 간 날은 일요일 낮 12시 정도였는데, 커튼으로 자연광이 차단되어 시간은 한밤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려한 색색의 조명들이 천장에서 내려오고 있었고, 음악 소리가 심장까지 바로 때리는 듯했다. 그렇게 맨 뒷줄에서 선생님의 간단하고 반복되는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지만, 하는 내내 계속 시계를 보게 되기도 했다. 계속 바뀌는 음악과 다양한 동작으로  지루하진 않았지만, 1시간 내내 쉼 없이 계속 음악에 맞춰 사지를 펄럭이는 게 내 비루한  체력으로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상당한 체력을 요하는 운동이었다. 그나마 편안했던 것은 어두운 공간이라 나의 어설픈 움직임이 내 눈에도 잘 안 보여서 자신감 있게 1시간을 채우고 왔다는 것이다. 꿩이 눈밭에 숨을 때 자기 얼굴만 눈 속에 파묻으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처럼, 나 역시 눈에만 안 보이면 괜찮았나 보다. 

   그렇게 얻은 무모한 자신감으로 이번엔 평일 아침 9시 30분에 하는 줌바수업을 들으러 갔다. 이번에는 맨 앞자리 큰 거울 앞에서 내가 너무나도 잘 보이는 환한 공간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다. 그날은 주말의 수업과 다른 선생님이셨는데, 기본적으로 나와 반대되게 굉장히 유연하고 리듬을 잘 타는 선생님의 그루브 넘치는 수업이었다. 웨이브는 커녕 왼손에 오른발인지 방향조차 헷갈리는 내가 꿀렁거리는(?) 디테일까지 따라잡기는 무리였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봐도 내 모습이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웃음을 참는 게 고역이었다. 선생님을 보고  내 머리로 입력하여 출력해서 나온 내 몸의 움직임을 전면거울을 통해 한 번씩 볼 때마다 '이게 같은 동작 맞아?'싶을 정도로 판이하게 달랐다. 내 의지와 내 사지가 너무 다르게 움직이는 게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동시에 슬랩스틱을 방불케 할 정도로 너무 웃겼다. 나사가 어딘가 하나 빠지고 기름칠 안 해서 삐그덕 대는 로봇 그 자체였다. 웬만한 유튜브 쇼츠나 틱톡 등에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제법 웃긴 춤사위 영상은 끼지도 못할 정도로 장르가 확실하게 코미디였다. 고등학교때 했던 소중한 다짐, 춤과 관련된 것은 피해야 한다, 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가끔 아이돌이 처음엔 춤을 하나도 몰랐는데 무대에서 칼군무할 수 있는 이유가 순전히 노력의 결과라는 말을 듣는다. 줌바를 체험하고 나서 들으니 그 말이 두배로 더 와닿으며 그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동시에 세상에는 노력을 그만두는 용기가 필요한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돌에게 춤은 본인의 꿈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극복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나에게 춤이란 내 삶에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것이기에 하다가 안되면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꿈과 나의 재능이 완벽한 합을 이루는 상황을 새삼 감사히 느낀다.

  같은 논리로, 앞서 말한 아이들의 교육도 그렇고, 남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의 노오오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도 있음을 깨닫고, 특히 그것이 타인과 관련 있는 것이라면 더더욱 빨리 포기하는 용기를 꺼내본다. 안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동시에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비용을 뺏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내 마음속에 간직했던, 너무 많은 노력을 바라는 미련들은 줌바와 함께 비워내 본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더 줌바를 배우러 갔다. 줌바를 열심히 배워서 정복하겠어, 뭐 이런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웃음이 필요한 팍팍한 날에 간다. 몸치이자 박치인 내가 줌바를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줌바를 할 때 내 눈은 선생님께 고정하고, 동작을 따라 하되 난 선생님과 같은 동작을 하고 있는 거라고 철저히 내 뇌를 속여본다. (당연히 거울은 보지 않는다.) 그러다가 웃고 싶을 때 거울로 한 번씩 힐끔거리며 내 몸동작을 본다. 입력값과 출력값의 큰 격차를 보면 실소가 절로 나온다. 그리고 뭐 어때, 하며 쿨하게 다시 선생님께 눈을 고정하고 동작을 이어간다.

  모든 게 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노력을 이기는 게 없다고 하지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게다가 남들보다 노력을 두 배 세배 해도 남들이 손쉽게 해내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낳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용기를 발휘하되, 꼭 해야 할 땐 나만의 관전포인트를 찾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 몇 번의 줌바를 끝으로 더 이상 줌바를 정기적으로는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에겐 나만의 방식으로 줌바를 즐기고 있기에, 남들과는 다른 동작이지만 남다른 시선처리로 누구보다 즐겁게 줌바를 할 수 있다.



 덧.

  우울한 날이면 줌바를 하러 간다.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나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오고, 또  한심해서 뭘 해도 이보단 잘하겠다는 자신감도 든다. 동시에 나랑 좀 안 맞으면 어때, 하고 안 맞은 것을 인정하면서 그냥 한다. (로또처럼 맞는 게 하나도 없는 남편과도 10년 넘게 살고 있는데 하면서. 하하하) 우울한 날엔 심각한 박치이자 몸치인 나를 보고 웃으러, 줌바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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