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에 와서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반응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의 가장 큰 차이를 느꼈다. 바로 "저 골프 안 해요."란 말이었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왜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지? 하는 안타까운 눈빛을 발사한다. 마치 미국에서 영어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미국에선 골프가 당연한 개념이었나 보다. 반면 여기 미국에 사는 현지인들 역시 골프가 대중적이긴 하지만,골프 말고도 다른 운동도 다양하게 많이 하는 것 같다. 어떤 운동을 하냐고 물어보면, 요새 제일 많이 들었던 대답이 "피클볼"이었다.
처음에 '피클볼(Pickleball)'이란 말을 들었을 때, 피자 섭취 시 곁들여먹는 '피클'을 떠올리며 이게 무슨 운동인가 싶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탁구와 배드민턴과 테니스를 합성한 듯하다. 탁구채보다는 약간 큰 패들을 사용해서 네트를 사이에 두고 구멍이 뚫린 탁구공 보다 약간 큰 플라스틱공을 치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장점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패들과 공만 있으면 되기에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서 시작하기 좋다. 미국에서 요새 핫한(?) 운동이라기에 솔깃했고, 추천해 주신 분들의 연령대(60대)로 미루어 보아 나의 저질체력으로 시작하기 부담 없을 것 같아서 배우는 곳까지는 알아뒀다. 그러다가 막상 또 어딘가에 가서 따로 등록하고 배우고 시작하는 게 귀찮아서 시작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피클볼이란 운동의 강력한 계기이자 사건의 발단은 '공짜'라는 데서 시작한다. 엄밀히 따지면 공짜는 아니지만, 매일 가는 운동센터에서 갑자기 보수공사를 하더니 피클볼을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 그리고 피클볼 입문자를 위해서 무료 강습을 3시간씩 2번 해준다고 공지가 떴다. 심지어 피클볼에 필요한 채와 공도 다 제공해 준다고 하니 나는 손가락으로 신청버튼을 누르고 피클볼장으로 가기만 하면 준비가 끝이었다. 돈 안 들고 언제든지 때려치워도(?) 부담 없는 도전은 언제나 환영하며, 바로 피클볼의 세계로 당당히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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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클볼장에는 나와 같이 강습을 신청한 노부부가 계셨다. 나와 비슷한 체력의 소유자(?)라 짐작하며 안심하고 천천히 수업을 들었다. 공을 서브 넣는 방법, 간단한 규칙 등을 설명 듣고 바로 팀을 나눠서 서브 넣기, 선생님이 치는 공을 받아보기 등을 했다. 처음에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연습이기에 가볍게 시작했는데, 연습을 거듭할수록 나에게 피클볼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모두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공 컨트롤이 쉽지 않아 서브자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유연성도 없고, 순발력도 떨어지지만, 공을 이용해서 하는 운동은 더더욱 못한다. 나의 오랜 굴욕의(?) 구기종목 역사는 한참 전으로 거슬러간다. 학창 시절 악으로 버티는 철봉 매달리기나 윗몸일으키기는 만점에 가깝게 받은 반면, 공 던지기는 힘껏 던진 포즈와 상반되게 바로 발 앞에 떨어져 민망하곤 했다. 회사에 입사해서 연수를 받을 때 체육시간에 탁구를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앞 네트가 아닌 심판을 보던 교육 담당자의 안면을 강타한 후로는 나의 어설픈 손이 공을 만지면 자칫 흉기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자제를 하였다. 결혼 후 남편이 야구동호회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해서 그걸 막고자(지금 생각해 보면, 그걸 왜 막았을까? 하하하) 함께 캐치볼 몇 번 하다가 눈앞에 날아오는 공을 잡지도 피하지도 못하고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후로는 공과 아예 상종을 안 했다.
나와 공의 악연(?)의 역사를 고려할 때, 어쩌면 피클볼의 결말은 당연했다. 나는 우선 패스는 고사하고 서브를 하는데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여차저차 서브를 겨우 하면, 날아오는 공이 네트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선생님이 나를 격려해 주면서 본격적으로 어르신들과 게임을 통해서 피클볼의 규칙을 설명해 주시기 시작했다. 특히 선수 포지셔닝이 서브할 때와 서브를 리턴할 때 달라지는데, 다들 한 번에 이해한 반면 서브와 패스에 이미 정신줄이 가출한 나는 자꾸만 우왕좌왕했다. 결국 무너져 내렸다.
콜라는 인기있는 음료이지만, 난 콜라를 좋아하지않는다. 피클볼도 그랬다.
분명히 피클볼은 매력이 있었다. 피클볼과 유사하다는 탁구, 배드민턴, 테니스를 해보지 않아서 비교를 할 수는 없었지만, 패들에 공이 부딪힐 때 나는 '펑'하는 소리가 통쾌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날아오는 공을 스트레스 원인이라 생각하고 공을 맞출 때면 쾌감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큰 한계가 있었으니 우선 패들로 공을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리 피클볼 초보자들끼리 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있다지만, 게임을 할 수준이 되어야 랠리가 이어지는데, 계속해서 서브실수를 하거나 누가 봐도 홈런(?)을 날리는 동작들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에 더욱 긴장하고 힘이 들어가다 보니 악순환이었다. 그렇게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구기종목'은 최악의 조합이었다.
무료강습을 마치고, 같이 연습했던 할머니께서 본인과 비슷한 수준임을 눈치채셨는지 자기랑 연습하자고 나를 간택(?)하셨다. 이에 긍정의 미소를 보냈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는 인사인 '나중에 밥 한번 먹자'와 같은 뉘앙스로 훗날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료 강습까지만 마치고 아쉽지만 피클볼을 접었다.
운동센터에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자연스레 피클볼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다. 만약 피클볼을 배우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등록하기도 어려워서 못하는 거라면, 아마 매번 하지 못한 저 운동에 대해 미련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비록 2회라는 짧은 경험이지만, 무언가를 해보고 깔끔히 포기한 피클볼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뿌듯함이 느껴진다. 물론 무언가를 노력해서 얻었을 때 얻는 쾌감도 있지만, 내가 직접 해보고 나랑 안 맞는 것을 직접 깨달을 때 기쁨도 분명히 있다.
피클볼을 보며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이든 그게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알고자 한다면, 주위의 조언, 동영상, 문헌 참고 등 간접경험도 있을 수 있지만 제일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직접 해보는 것일 것이다. 어떤 성질의 것인지 그 정체가 궁금하다면, 그것을 고민하고 분석할 시간에 가능하면 빨리 해보고 결론을 내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다.
나에겐 결혼과 육아가 그랬던 것 같다. 해보지 않고서야 그것의 진정한 장단점, 그리고 나에게 맞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피클볼에 단숨에 도전하듯이, 결혼과 육아에 겁 없이 뛰어들어 혹독한(?) 체험을 하고 난 후 결론을 내렸다. 별 노력 없이 잘 되는 윗몸일으키기와 달리 피클볼은 마이너스부터 시작하기에 남들보다 몇 배는 수고로운 것처럼, 나란 사람은 결혼과 육아가 최대한 노력해도 소위 남들이 말하는 평균이란 것을 따라잡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예 후회를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더 이상 후회는 없다. 어차피 안 해봤으면 미련이 남았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클볼을 경험한 후 미국에서 인기 있다는 피클볼이 더 이상 나에게 인기 없는 것이 명료해졌듯이, 대부분의 이들이 묵묵히 해나가고 있는 결혼과 육아가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임을 직접 해보니 알 것 같다. 피클볼을 그만두듯 쉽게 때려치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해 본 게 낫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자전거를 타면서 피클볼을 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뭐든 고민될 땐 안 해본 거보단 해보는 게 나은거지, 하면서. 그렇게 나를 토닥이면서. 후훗.
덧.
갑자기 왜 피클볼을 떠올리니 다사다난한 결혼 및 육아생활이 생각나나 했더니 어머님 아들 때문이었다. 뜬금없이 피클볼을 권유하길래, 나랑 같이 할거 아니잖아,라고 대꾸하곤 째려보았다. 사실 피클볼 배울 때 노부부가 함께 다정하게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매우 부러웠던 게 생각이 나서 심술도 났다. 내가 골프 한다고 할 때는 내가 너무 못하면 남들에게 피해 주고 욕먹어서 안된다고 말리더니, 역시 남들과 하는 구기종목인 피클볼을 적극 권장하는 건 뭔지,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상기해 본다. 뭐든 경험해 보고 결론을 내리는 게 정확하다. 인기 있는 피클볼도, 사회가 권장하는 결혼도 해보고 나니 내 스타일은 아닌 걸로. 하하하. 남들이 좋다는 게 나에게도 좋을 수만은 없다는 인생의 진리를 피클볼을 하며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