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의도와는 다르지만, 의외의 성공을 거둔 것들이 있다. 강한 접착제를 개발 중 의도와 달리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이지 않는 물질을 만들었고, 이것으로 '포스트잇'을 만들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도 시작당시의 불순한(?) 의도와 달리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운동이라는 쾌거를 낳은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자전거 타기'이다. 운동이라곤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내가 자전거를 2~3시간씩 타게 된 데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누구보다 활동적인 내 아들 두 명과 누구보다 게으른 어머님 아들 한 분의 조합은 나를 매일아침 6시부터 독박 육아로 초대했다. 밤새 두 아들의 발차기와 짓누르기 공격에 나 홀로 승부를 보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또다시 발발하는 육아와의 전쟁에 지쳐갈 무렵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그럴싸한 이유를 발견한다. 바로 운동이다. 내 아들은 6시 30분에 일어나니까, 그 전인 5시 반에 집을 나서서 적어도 1시간은 버티다 들어올 수 있는 운동은 자전거가 유일했다.
자전거 타기는 소거법으로 발견한 나에게 적합한 운동이었다. 새벽 5시 반에 무작정 집을 나가서,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은 달리기나 걷기도 있었지만 나처럼 (고치려 해도 여전히) 팔자걸음으로 걷는 사람은 잘못된 걸음걸이가 오히려 몸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핑계 삼아 안 한다. 특히 달리기란 무릇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이 깜빡일 때, 전방 100m에서 붕어빵을 파는 곳을 발견했을 때와 같이 특정상황에서만 발동되는 양반(?)이기에 가볍게 제쳤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앉아서 하는 운동이라 만만해 보여서 시작할 때 진입장벽이 낮았다. 다리로 페달을 밟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서서 걷지 않는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상대적으로 쉽게 느껴졌다. 게다가 속력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달리기보다 훨씬 빨라서 쾌감도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예상보다 일찍 깨서 베란다에서 나를 발견해도 빨리 도망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었다. 하하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는 그 쾌감은 스피드를 좋아하는 이로써 매우 만족스럽다.(험난한 오르막길이라는 후폭풍은 그땐 무시한다. 훗) 집 근처에 천변에 자전거를 타고 나가면 계절의 변화도 알 수 있다. 봄에는 연둣빛 새싹들과 꽃, 여름에는 싱그러운 청록색 나뭇잎과 쨍쨍한 햇살이, 가을에는 색색깔의 단풍과 낙엽이, 겨울에는 대조적으로 더 푸른 소나무들이 돋보인다. 자전거를 타며 보는 새로 핀 꽃, 단풍 진 나뭇잎 등을 볼 때면 기분이 맑아진다.
사실 처음부터 2~3시간씩 자전거를 탔던 것은 아니다. 바로 집 앞에 천변까지만 나갔다 올까, 하고 시작했던 것이 좀 더 가면 뭐가 있을까 궁금해서 멀리 보이는 큰 나무까지 가봤고, 질주할 수 있는(?) 내리막길이 있어서 또 신나게 10분 더, 아침에 가면 전날 만든 빵을 할인해 주는 빵집까지만 더 가볼까 해서 또 10분 더 등 하다 보니 주말에 여유 있을 땐 3시간까지 타게 되었다.
뭐든 시작할 땐 열성적으로 하지만, 또 그만큼 빨리 열정이 식는 내가 자전거 타기는 내가 매일같이 꾸준히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그것은 힘들 때도 자전거를 떠나지 않는 데 있었다. 다른 운동은 하다가 힘들면 그 운동에서 잠시 벗어나 의자에 앉거나 드러눕게 된다.하지만 자전거는 안장이 있기에 거기 앉아서 페달을 정말 천천히 굴리면 된다. 그러다 보면 또다시 다리에 힘이 차오르고, 운 좋게 내리막길이 있으면 수고로움 없이도 빨리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자연풍경을 두리번거리면서 눈이 즐겁고 안장에 앉아서 편히 쉬는(?) 느낌적인 느낌이면서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운동이라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자전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삶을 대하는 태도가 자전거와 닮아서 이다. 나는 삶이 정체되어 있는 느낌을 못 견디며 계속 뭔가를 하고 있는데, 자전거도 발을 구르지 않으면 넘어지기에 계속 페달을 밟게 된다. 그러면 내 주변 풍경도 달라지고, 빨라진 속도만큼 바람이 더 시원해지기도 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바로 느낄 수 있다. 기분 좋은 변화와 앞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다시 내 발에 힘을 주고 자전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주는 선순환을 이룬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페달을 밟다 보면 조금 늦더라도 내가 원하는 곳에 도달할 때 행복이 있다.
가끔은 그 즉각적인 반응에 취해서 내 비루한 체력을 생각 안 해서 후폭풍이 오기도 한다. 한번 자전거에 앉으면, 운동한다는 생각보다는 말 그대로 앉아있는 느낌에 별로 안 힘든 것 같아서 자전거를 오래 타면 그다음 날 다리근육이 뭉쳐서 고생하기도 한다. 한 번씩 심한 근육통을 앓고 나면, 다시 내 몸상태에 맞는 자전거 타기로 맞춰간다.
지금의 생활이 그런 것 같다. 언뜻 보면 부러운 '육아휴직'에 그것도 장소가 '미국'이라니 부러워하는 이들이 꽤 있다. 육아가 체질은 아니지만, 안 하면 모를까 하면 성실하게 해내야 하는 성정에 내 생활은 자전거를 탈때와 비슷하다. 지칠 때도 웬만하면 느리게라도 페달을 밟아서 앞으로 나아가려 애를 써보지만, 내 미천한 체력과 육아 인내심이 바닥이 난 줄도 모르고 무리해서 움직이다 보면 무리한 자전거 타기 후 근육통을 앓듯이 꼭 몸이 아프다. 갑자기 열이 난 아들이 이틀 동안 학교를 못 갔을 때, 아이 아픈 것에만 집중하다가 내가 잠 못 잔 것은 잊어버리고 평소처럼 활동하다가 결국 내가 앓아눕는다.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머리에서는 다그치지만, 몸이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래서 내가 지친 날엔 아이들 스케줄을 좀 내가 편한 것으로 조정해 본다. 예를 들어 매주 월요일 애들 데리고 도서관에서 9시까지 책 보는 것은 잠시 미뤄두고 집에서 누워서 넷플릭스로 영화 보는 것으로 대체해 본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회사에 복직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지금의 시간을 매우 잘 활용하고 싶다. 특히 아이들과의 시간이 지금만큼 많지 않을 거란 사실에 오늘도 성실하게, 육아라는 바퀴를 열심히 굴려본다. 동시에 내 개인적인 꿈을 위해서도 시간을 쏟는 것 역시 놓치지 않는다. 가끔은 가시적인 결과가 없기에 멈춰있는 듯하여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자전거를 탈 때처럼, 내리지 않고 느리더라도 천천히 발을 구르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란 꿈을 놓지 않는다.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난 후에 찾아오는 근육통처럼, 원하는 것들을 쫓다 보면 성장통도 찾아오지만 그럴 땐 페이스를 조절해 본다.아예 안 하거나 무척 잘하거나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아니라, 자전거를 탈 때처럼 안장에서 내려오지 않고 주변의 풍경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되어보자고 한 번 더 다짐한다.
이렇게 좋아하는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요즘엔 자전거 타기를 잘 못하고 있다. 실외 자전거 타기의 단점은 날씨와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내가 사는 곳 주변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는 곳이 아니라서 차도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자전거 타기 좋은 곳에 차를 가지고 가서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나에겐 둘 다 쉽지 않다. 그래서 좋아하는 자전거를 많이 못 탔는데, 그래도 맘먹고 한 번씩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오랜만에 동네에 핀 벚꽃을 볼 겸 자전거를 타러 가야겠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신나게 천변을 달릴 그날을 꿈꾸면서.
덧.
체력증진으로 인한 육아의 질 향상이라는 미명아래 내 자전거 타기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으나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실내 자전거'였다. 당근에서 무료 나눔이 있길래 가져온 후 옷걸이로만 쓰였는데, 자꾸 새벽마다 가출(?)하는 내 덕에 강제 새벽 육아시간이 생긴 어머님 아들이 나에게 자꾸만 안전한 실내자전거를 권유하였다. (타이밍상 내리막길의 스피드를 즐기다가 크게 넘어져서 살이 패일정도로 심하게 다친 후긴 하였다. 쳇)
실내 자전거도 좋긴 하지만, 어쩐지 실제로 자전거를 야외에서 탈 때의 느낌이 안 난다. 그런데 그게 느낌적인 느낌만은 아니었나 보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실제 자전거 타기가 체력뿐만 아니라 우울증 완화 등 정신적인 건강측면에서도 효과가 좋다는 것이었다. 특히 실외에서 달리는 자전거일 때 효과가 좋았다는 연구결과였다.(안타깝게도 실내 자전거는 실외 자전거에 비해 정신건강측면에서는 직접적으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자전거를 타며 달라지는 풍경을 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날 이후로 (출처가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책에서 본) 이 연구결과를 근거로 나는 여전히 실외자전거를 찬양하며 가출(?)을 감행한다. 밖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도 되고, 육아에서도 해방되는 이 기쁨으로 인해 나의 실외 자전거 타기는 계속될 것 같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