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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Apr 22. 2024

찾았다!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

아쿠아로빅 : 나의 20년 후 미리 보기

  나는 내일이면 반팔십으로, 이제 더 이상 'Young'하지 않다. MZ세대의 끝자락에 간신히 매달려서, "나도 MZ"라고 하소연해 보지만, 이 자체가 더 이상 젊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내가 '젊은이'로서 환영받는 곳이 있으니 바로 아쿠아로빅을 하는 수영장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으면 불안하고, 호흡 시 수영장 물을 다 흡입하는 것이 배불러서(?) 수영을 그만둔 이후로 수영장은 나와 인연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수영에 대한 미련은, 부모님의 반대로 헤어진 옛 애인 보듯 쉽게 버리지 못했다. 그러던 찰나 수영장에서 할 수 있는 또 다른 운동, 물에서 하는 에어로빅, 아쿠아로빅을 발견한다. 머리를 꼿꼿이 들고 있기에 물 먹을 걱정도 없고, 두 발을 수영장 바닥에 두고 하는 안전한(?) 운동이라서 매력적이다.

  우선 수업에 가자마자 어머님들의 밝고 친근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쿵쾅거리는 비트와 함께 수영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굳었던 어깨도 들썩인다. 선생님이 앞에서 시범을 보이면  나는 열심히 따라 하기만 하면 끝이라 특별한 기술도 필요 없다. 제일 좋았던 것은 물 안에 두발이 있기 때문에 타인에게 나의 우스꽝스러운 발놀림을 들키지 않는다. 디테일은 고사하고 사지를 움직일 때마다 왼발, 오른발 방향부터 헷갈리며 허우적거리다 보면 옆사람에게 민망해서 위축될 때가 많은데, 아쿠아로빅은 물 덕분에 나의 웃긴 발재간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생각보다 운동량도 꽤 된다. 매일 꾸준히 아쿠아로빅을 하신 어머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쿠아로빅이 운동량이 상당하다면서, 안 할 때보다 훨씬 건강해지셨다고 했다. 드디어 찾았다, 내가 노후에도 할 수 있는 운동. 몸치인 내가 물 안에서 허우적거리기에 우스꽝스러운 게 들키지 않으면서, 물에서 하기에 관절에 무리가 적은 운동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미국에 와서 운동센터를 등록하면서 아쿠아로빅을 다시 시작했다.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내가, 미국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1시간 따라 하고 나면 이틀을 앓아눕는 부작용이 발생했기에, 난이도를 낮춰(?) 어르신 대상의 강좌 위주로 들었는데 아쿠아로빅이 대표적이었다. 제일 좋았던 점은 국적을 불문하고 어머님들이 먼저 살갑게 말 걸어주시면서 젊은이가 왔다고 환대해 주시는 게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생존형 내향인으로서 회사에 다닐 때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서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여기 미국에 와서는 굳이 내가 자신 없는 영어까지 써가면서 먼저 다가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아쿠아로빅을 같이하는 어르신들은 먼저 치아가 환히 드러내는 미소를 띠며 잘 지냈는지, 애들은 학교에 잘 가는지 등 안부를 물으신다. 특히 내가 '젊은이'라고, 한참 좋을 때라고 얘기해 주시는 게 낯설기도 하면서도 좋았다. (가끔은 어르신들이 격하게 반겨주셔서, 극내향형인 나는 오히려 수업이 빨리 시작하기를 바랄 때도 있고, 5분 늦게 가기도 했다. 하하하) 분명한 것은 내가 아쿠아로빅 할 때마다 날 반겨주신 분들의 기대에 '젊은이'가 부응하고자 더 열심히 나가기도 했다.

  이제는 어디 가서 '젊다'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발팔십인데, 유독 아쿠아로빅에만 오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참 좋은 나이'에 사람이 된다. 그런 기대에 부응해서 점프도 더 크게 해 보고, 팔다리도 더 쭉쭉 뻗어서 1시간 운동을 하다 보면, 진짜 '젊은이'가 된 기분이다. 보통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게 어색하고, 장기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성과가 안 나오면 나이 탓(?)을 먼저 하고, 육아 해야만 하는 역할에 맞춰 바삐 움직이다 보면 '나'는 없어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아쿠아로빅을 할 때는 다르다. 음악에 맞춰서 즐겁고 신나게 아쿠아로빅을 하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을 보면 마음이 유연해진다. 지팡이를 짚고 잰걸음으로 오느라 수영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한참 걸리지만, 물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운동하시는 모습을 보면 뭉클하다. 너무 멀리 내일을 보지 않고, 그냥 습관처럼 아쿠아로빅을 하면서 순간을 즐기는 어르신들을 보면 내 비좁았던 마음에도 공간이 생긴다.

  여러모로 나에게 적합한 운동인 아쿠아로빅은 최대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운영 시간이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쿠아로빅은 주로 10시~12시 사이에 있다. 직장을 다니는 나는 새벽 또는 저녁시간에만 수업을 들을 수 있기에 아쿠아로빅은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지금처럼 휴직기간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운동인 셈이다. 한국에서 처음 아쿠아로빅을 할 수 있었던 때는 육아휴직 기간에 아이가 좀 자라서 어린이집을 갔을 때였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다시 아쿠아로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남편이 차를 쓰지 않는 날에 한정해서 아이들을 바삐 등교시키고 난 후이다. 이처럼 아쿠아로빅은 내가 맘먹는다고 언제나 할 수 있는 성격의 운동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한 번씩 운동을 하고 오면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내가 지금 특별한 시간에 지금 이 순간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해 보면 특별하지 않은 게 없다. 미세먼지 걱정 없는 맑은 공기, 어딜 가든 입만 열면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 한국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간 등등. 지금, 여기 이 순간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이다. 비록 아이들 매니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상시 대기 중이고, 외식을 제일 좋아하는데 비싼 물가와 미친 환율에 강제로 집밥을 해야 하며, 정리정돈 능력이 미 장착된 세명과 함께 사느라 모든 것을 챙겨줘야 하는 가사도우미 신세지만 이 역시 '젊은' 내가 '이 때만 할 수 있는 것'이지, 하면서 나름의 고충사항도 가볍게 넘겨보려 노력한다. 아쿠아로빅을 하며 얻은 '젊은이'의 칭호에 걸맞은 마인드로 오늘도 살아낸다.


 덧.

  아쿠아로빅을 하다 보면, '완벽함'에 대한 집착을 좀 내려놓는다. 다리가 아파서 뛰지 못하면 걷기만 해도 되고, 관절염으로 팔을 머리 위로 들지 못하면 어깨까지만 와도 괜찮다고, 아쿠아로빅을 하는 어르신들은 나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신다.

  연재글임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지 못하는 게 맘에 걸려서, 이왕 늦은 거 좀 더 잘 써볼까? 하고 힘주니 오히려 더 글을 못쓰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다가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느니, 처음부터 이 정도면 괜찮은, 'Good enough'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더 해야겠다고, 아쿠아로빅을 하며 다짐한다.(연재글이니 규칙적으로 올리려고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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