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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다움 Oct 18. 2024

아이와 함께 간 라스베가스의 낮은 여백의 미가 넘친다

라스베가스 : 큰 즐거움 VS 사소한 고통 

  

  직접 경험하기 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여행 전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호텔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며 여유로운 호캉스를 꿈꿨다. 그런데 직접 가본 라스베가스의 첫인상은 조금 결이 다른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주차장에 "Lock your car, Take your key, Hide your belongings"라는 안내표지판 때문이었다. 얼마나 차량털이 범죄가 많으면 이럴까 싶어서,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자동차에 짐이 도난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차량이 파손당할까 봐 더 걱정했다. 로드 트립에서 자동차가 파손되면 여행 자체가 어렵기에, 라스베가스란 대도시의 화려함을 즐기기도 전에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사건을 상상하며 겁을 잔뜩 먹었다.     

  

[ 한낮에 돌아다니면 이마에 대문자 V자 새겨가며 대역정을 내시는 아드님들 때문에, 라스베가스 여행 중 낮에는 여백의 미가 넘친다 ]

  사실상 낮에 아이들과 라스베가스에서 할 일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관람차인 ' High Roller'에 올라 야경도 보고, 베라지오 호텔앞에서 음악 분수도 구경하는 등 야외활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낮에는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답게 극상으로 덥고 건조하여 실외를 활보하는 것은 극기훈련에 가까웠다. 그래서 호텔에서 자연스레 호캉스를 하거나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뷔페였다. 특히 로드트립하면서 빼곡하게 짜인 스케줄로 인해 풍족하게 먹을 '시간'이 부족했는데, 라스베가스에서 낮시간은 사막기후 특성상 특별한 일정이 없었기에 뷔페로 채우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만족했지만,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뷔페를 가기 전 착장부터 복부를 압박하지 않는 원피스를 입는 철저함을 갖춘 나와 달리, 아들들(어머님 아들 포함)은 뷔페에 오면 돈 아까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채소부터 시작해서 입맛을 돋운 다음에 가장 비싼 게를 공략해서 두 접시 이상은 먹은 후 탄수화물과 음료는 최대한 자제한다. 더 이상 들어가기 힘들 땐 디저트 배(?)를 열어서 달달하게 마무리해주는 게, 내가 가는 뷔페였다면 아이들은 이 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디저트부터 찾는 간결함을 보였다. 또한 어머님 아들은 원래 배부른 느낌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나처럼 뷔페에 만족도가 크지 않았다. 결국 뷔페 부적합형 사람들이 과반수인 관계로 그다음 날 갈 예정이었던 또 다른 뷔페는 취소했다. 그래도 라스베가스에서 한 끼 뭐 먹을래? 하고 묻는다면 난 뷔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여행에서 식사는 생각보다 여행의 만족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고로 여행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과 가는 것이라는 것을. 

    

[ 아이들과 나는 각각 다른 의미에서 만족스러운 뷔폐였다. 나는 다양한 '음식'을 맘껏 먹는다는 점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는다는 점에서. 허허허 ]  

  

  또 다른 실내 활동이자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공연(Show)'이었다. 우리에게 라스베가스는 공연을 보러 들른 도시였다. 그래서 오기 전부터 어떤 것을 볼지 치열하게 따져봤고, 아이들의 나이나 흥미, 예산 등을 고려하여 최종 선택한 것이 Ka show와 Mat Franco Magic Show였다. 

   Ka show는 현실에는 없는 왕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답게 신비롭게 꾸며진 무대장치가 눈길을 끌었고, 서커스에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엮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대사가 상상 속 나라의 언어라서 외계어 같은 단어를 내뱉는데, 신기하게 다 알아들었던 점이다. (영어가 아니라서 더 몰입할 수 있었을지도... 하하하) 영어가 수준급이 아니더라도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공연으로 마술쇼도 있었다. 트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기하고, 나도 모르게 마술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물개박수를 치고 있었다. 

  

[ 모든 공연이 그렇지만, 특히 Ka show는 무대 가까이에 앉는 게 좋다. 배우의 표정과 무대장치 등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몰입감이 좋다 ]

  

  공연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었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카쇼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 말을 하지만 무슨 상황인지 완벽히 파악되는, 영어보다 잘 들리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술쇼도 마찬가지였다. 관객이 직접 무대에서 함께하는 마술도 꽤 많았는데, 이들의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이 마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흔히 대화에서 언어(단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하고 나머지 97%가 비언어적인 요소(목소리톤, 표정, 몸짓 등)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직접 몸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미국에 머무르며 짧은 영어실력으로 인해, 머리에 떠오르는 문장을 접고 또 접은 후 간단한 단어와 단순한 문장으로 축약하는 것이 몸에 배었다. 특히 아이들 선생님이나 친구 부모님과 영어로 대화할 때 답답하기도 하고 위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공연을 보고 난 후 알았다. 비록 내 마음을 언어에 다 싣을 수 없지만, 앞니6개가 훤히 보이게 웃는 미소가 그 여백을 메꿀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동시에 가족들에게 좀 더 친절한 제스처를 취할 것을 다짐했다. 아이들이 이동 중 차에서 짜증을 부릴 때, 무슨 일이야? 하고 상냥한 말을 꺼내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톤은 높여서 말했던 것을 반성하면서 말이다. 

  대화에서 비언어적 요소가 생각보다 그 비중이 크듯, 여행지에서 꼭 봐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쾌한 경험을 피하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라스베가스 여행을 계획하며 기대한 것이 있었다. 호텔, 공연, 카지노로 유명한 곳이기에 가성비 좋은 '호텔'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보며 쉬어가려고 했다. 여행에서 '카지노'는 안중에 없었다. 실제로 카지노는 하지 않았지만, 여행의 만족도를 많이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호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지노를 반드시 지나가는 동선이 대부분이었기에 내 선택과 무관하게 카지노에 노출되곤 했다. 아이들에게 카지노가 무엇인지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피하고 싶었던 것은 담배 냄새였다. 코끝에 훅 파고드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숨을 참고 빠른 걸음으로 내달리곤 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아이와 함께 가기에 라스베가스는 적합한 도시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 더워서 어딜 돌아다니기에는 아이들의 짜증지수가 너무 높았고, 실내인 호텔 위주로 돌아다니려 해도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카지노와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찌푸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커다란 즐거움은 의외로 잊어버리는데 비해 고통은 작아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라스베가스는 가성비 좋은 호텔과 수준높은 공연이라는 '큰 즐거움'이 있지만, 카지노의 담배냄새라는 '사소한 고통'을 이기긴 힘들었다. 라스베가스에서 한 번 더 되새겨 본다. 어쩌면 여행이란 큰 즐거움을 계속 찾아다니는 것도 의미 있지만, 사소한 고통을 피하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매력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라스베가스는 아이들과 다시 오기 힘든 도시로 결론 내리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낮의 여백은 수영장에서 손발이 불어서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버텼다. 파리도 아닌데 에펠탑을 보면서,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보면서. 훗 ]


덧. 라스베가스, 아이들과 다시 올 일은 없겠지만 혼자 다시 오겠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네"로 달라진다. 다시 오면 우선 못 가본 또 다른 뷔페를 야심 차게 다녀오고, 뜨거운 한낮에는 명품이 즐비한 쇼핑몰에서 (사지는 못해도 눈이라도 즐거운) 아이쇼핑을 실컷 할 듯싶다. 

  아이와의 여행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동시에 아이를 통해 뜻밖의 것을 얻기도 한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연, 아이의 체력을 고려한 일정 등을 따라가 보면 당시에는 어른인 나에게 유치하기도 하지만 돌아보면 은은한 미소가 지어질 때가 많다. 아이들과 여행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도심을 아이들과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다음 여행지는 다시 자연이다. (도시는 나 혼자 여행 오고 싶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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