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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킨디센터 Mar 23. 2020

"딱 오늘까지만요"

원격 수업, 어디까지 가봤니?

하자작업장학교는 2001년 개교한 도시형대안학교입니다. 2001~2017년까지는 영등포에 있는 하자센터에서, 2018년 크리킨디센터가 개관한 후에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위치한 크리킨디센터에서 학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만15세~19세 고등학교 나이의 청소년을 위한 3년 과정 학교입니다.


음... 우리 지금 하는 온라인 프로젝트를 더 이어간다면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네, 딱 오늘까지(할 수 있어요)


조금은 망설였어도 좋았겠지만, 수업 중 가장 조용했던 한 학생이 처음으로 빠른 대답을 해주었어요.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 화면 위로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림_욺


작업장학교의 온라인 학습

작업장학교에서는 지난 2월 말로 예정되어 있던 개학을 1주 연기해 3월 10일에 개학했어요. 물론, 대면(등교)하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원격으로요. 그렇게 첫 온라인 개학을 했습니다.


왼쪽: 온라인 개학을 맞이하며 같이 그린 그림. 오른쪽: 원격 인문학 수업에 대한 토론 중


작업장학교의 수업 중에는 직접 몸을 쓰는 활동(도시농업, 브라질 음악, 영상작업 등)이 많다 보니,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학습을 구성해야 했어요. 또 우리를 이렇게 멀어지게 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충분히 다룰 수 있도록 고민했죠. 

작업장학교의 도시농사 수업


COVID-19 바로 알기 프로젝트

우리는 COVID-19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재난 상황에서 소비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작업을 시도하자' 생각했어요. 먼저 통계자료를 읽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끝도 없이 쏟아지는 뉴스로 어지러운 이때, 직접 상황을 관찰하자는 시도였죠. 그래서 ‘날아(작업장학교 글쓰기 선생님이자 알고 보면 사회과학 연구자인)’와 함께 질병관리본부 데이터를 포함해서 공식적인 통계자료를 찾고 수집과 분류하는 법을 익혔어요. 그리고 우리가 해석하려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연습을 했죠. 


이 과정에서, 뉴스는 우리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알았어요. ‘전염 추세가 줄어들고 있기는 한 거야? 코로나바이러스가 정말 위험한 이유는? 마스크 못 받는 사람은 어떡하란 거지?’ 등, 질문을 따라 우리는 ‘대구, 경북’의 특수한 데이터를 제외한 지역의 통계자료를 비교해 분석하기도 했고, 가짜뉴스를 찾아 팩트체크를 하기도 했어요. 나아가 지금 상황으로 인해 발견되는 예상치 못한 문제들, 예를 들어 관광객이 없어 깨끗해진 베네치아 수질, 그것으로 알 수 있는 인간과 생태계의 관계 같은 것들도 들여봤죠. 그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업을 이어갔어요.



온라인 프로젝트에서 그린 그래프

노란색 실선 - 전국 확진자 수

빨간색 실선 - 대구·경북 지역 외 국내 확진자 수

노란색 점선 - 전국 일별 증가자 수

빨간색 점선 - 대구·경북 지역 외 일별 증가자 수

우리나라의 확진자 증감은 대구·경북의 데이터 변수가 영향이 컸다. 전국의 확진자 증감을 살필 때는 대구·경북 데이터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데이터를 보면 전국적으로 증감이 하락한 것 같지만, 대구·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소폭으로 상승세를 보인다.



원격 학습에 적응하기

온라인 프로젝트로서 `코로나 바로 알기`는 아주 적절했어요. 하지만 학생이든 교사든 처음 겪는 원격 학습 환경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더 나은 방법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어서, 진행하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죠. “딱 오늘까지”만 온라인으로 수업할 수 있겠다는 학생들의 마음이 이해되기도 했어요. 확실히 적응 속도보다 지쳐가는 속도가 더 빨랐으니까요.



학생들이 지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원격 수업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피로도와 환경 자체의 한계 때문일 거예요. 청소년들은 원격 수업하는 도중에 "함께 있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많이들 이야기했어요. 다시 말하면 현장감이 떨어지는 것이죠. 특히, 어떤 질문이나 의견을 이야기할 때,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야 분위기가 확장될 텐데, 온라인 학습은 그 ‘동시 리액션’이 쉽지 않았어요. 각각의 마이크를 통해 전송되는 소리다 보니, 어딘가에서 조그만 소리라도 들리면 주목이 되어 말이 멈추게 되기도 했죠. 


여러 의견을 즉각적으로 주고받는 토론 형식에서는, 대화에 끼어들기가 어려웠어요. 원래라면 서로의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 일어나는 그 찰나의 긴장감이 조화를 이룰 텐데, 온라인에서는 말을 하는 단 한 사람에게만 집중이 되어, 서로 눈치를 보다 말문이 막히기도 했죠.


또, 똑같은 화면을 오래 보고 있어야 하는 점도 학생들을 지치게 했을 거예요. 수업 중에는 시간 대부분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시야 자체가 그곳에 한정되어 있죠.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표정의 얼굴들을 계속 봐야 하니까요. 시계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힘들 듯 집중력은 40분이 되지 않은 듯했어요.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원격 수업을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학생도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이번 온라인 프로젝트는 청소년들과 함께 여러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만남과 작업은 무엇이 있을까?’의 고민이자 실천이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이고요.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한 실험을 넘어, 재난이 현실로 다가온 이때, 미래 교실에 대한 고민의 시작이기도 해요.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재난을 마주해야 할 것이고, 이대로 아무런 대처 없이 미루기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요. 지금 우리는 서로가 닿지 않는 곳에서 닿아있으면서, 공동작업을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의 유대를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크리킨디의 우화의 벌새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부지런히 밀어붙이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많아지겠죠? 그때도, ‘딱, 오늘까지만 했으면’하는 바람에서 멈추지 않고, 작업장학교는 부지런히 현실을 마주할 거에요. 그리고 그 부지런함과 지루함 사이에서 다가올 교실의 단서들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3.11 후쿠시마 핵사고를 추모하는 이벤트



작성자

찬스 chance@krkd.eco
크리킨디센터의 작업장학교에서 청소년들과 책 읽고 밭을 돌보고 가끔 시도 읽고 그럽니다. 그들과 함께 내일을 위한 알록달록한 발상을 하나씩 동작으로 바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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