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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un 13. 2022

[상념] 束草紀行,

걸음걸음마다 걸음을 느낀 채, 

내게 있어 그 도시는 그의 도시이다. 

그를 알기 전까지는 설악산이 있는 곳 정도였지만, 

이십여 년 전 그를 알고 난 후부터는 그저 그의 도시가 되었다. 


어떤 곳을 들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이 떠오른다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고 단순한 이치지만, 

어쩌면 내 인생에 있어 한없이 영광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사람이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곳은 내게도 역시 좋지 않은 곳이 되겠지만, 


문득 떠오른 이 생각에 전국 각지의 곳곳과 내가 아는 이들을 다시금 연결 지어 본다. 

빌어먹을 용산과 반포에 이르러서야 억지로 다시 지우고 만다. 




충동적이었다. 

그 말을 던지기까지도 끊임없이 고민했다. 

괜한 오해와 억측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나 싶다. 


온전히 마주한 속초는 난개발의 도시였다.

해변 즈음에 뜬금없이 우뚝 솟은 아파트들이 싱숭생숭했다. 

해운대처럼 작정하고 삐쭉빼쭉 올린 것도 아니고, 기회를 틈타 하나씩 세워 올린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단층에는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 결국 그런 불규칙적인 스카이라인이 영원불멸할 것만 같았다. 

"아마 조사해보면 난리도 아닐 거야"라는 그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 

이런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도시에 인간의 허영과 이기를 아파트로 지어낸 모습이 우리네 현실인 것 같아 안타까웠다. 

조금만 더 의도적으로 빚어냈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 가 본 영랑호는 청명한 이름만큼이나 좋았다. 

밝게 달려 나가는 자전거들의 모습이 언젠가 가봤던 남이섬 같기도 하고, 

인간의 기척에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청설모의 자태에서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잔잔한 호수와 굳건한 해송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오솔길에는 풉풉함이 있었다. 

그 와중에 이런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되뇌는 인간들의 소유욕은 본능 같은 것이 아닐까 억지로 그어내려 노력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로로 쪼개진 바위를 가리켜 공룡 머리라 칭하는 와중에 내심 불안했던지 안내문 아래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고 해놓은 것을 보고는 김춘수의 '꽃'이 떠올랐다. 

명명,

사소한 행위에 의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어떻게 명명되길 바라는 걸까, 

그저 무명이면 할 때도 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니고 싶을 때도 있다. 

그저 마치 하얗게 혹은 투명하게, 



홍게 라면을 주문했다,

커다란 게딱지 위에 면발이 오롯이 잠겨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주문했는데, 

홍게 다리 두세 개가 조각낸 채 한 켠에 둥둥 떠있었다. 

관광지에서 과감하게 도전하면 안 된다. 

결국 그들은 '라면'을 내주었다.

가치와 가격이 언매치되는 순간을 목도했을 뿐, 그들은 내가 주문한 대로 '홍게'와 '라면'을 내놓았을 뿐이다. 

정보의 비대칭, 질문과 대답으로 해결될 수 있었는데, 난 내가 원하는 장면을 그렸을 뿐이다. 

 



낚시와는 상극이었다,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행위 자체가 너무 비생산적으로 느껴졌다.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 어쩌다 하나 둘 낚는, 낚는다고 해서 푸근하게 먹거나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내게는 지극히 생산적이 못한 '일'이었다. 

내심 걱정하며 배에 올라타서 두어 시간을 겪은 뒤 조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다 내려놓으면 되는 거였다. 

내가 하려는 건 물고기와 쉴 새 없이 조우하는 것이 아니고 바다와 하염없이 마주하다 우연히 물고기를 스치듯 만나는 거였다. 

목적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야간/새벽/주말 가리지 않고 일하던 내가 요즘 회사에서 한껏 마음을 내려놓고 일하는 것도 결국 목적이 달라진 탓이 아닐까, 





"가는 길이 좋아? 오는 길이 좋아?"

15km 정도의 길고 긴 여정이 끝나 돌아오는 길이 문득 가깝게 느껴지는 찰나 던져진 질문에 느닷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설렘과 익숙함 중에 뭐가 더 좋냐는 질문 같이 들렸다. 

보통 같으면 가벼이 듣고 싶은 대답을 들려줬겠지만, 유난히 심각해졌다. 


 "가는 길이 좋아, 거창할지 모르지만 설렘 같은 게 있잖아?" 

그랬다. 난 자전거를 타도 조금이라도 다른 길로 가고 싶어 했다. 등산을 가더라도 오고 가는 길이 달랐으면 했다. 같은 게 반복되는 게 재미없었다. 순간순간이 달랐으면 했다. 






울먹였다

울먹이는 순간에도 내가 울먹이는 걸 상대가 보는지 확인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의존적 일지 모르겠지만, 꿈에서조차도 난 여전히 나약한 존재였다. 

이제 됐다고 슬며시 생각하는 순간에도 새로이 차오르는 상처는 도대체 아물지가 않는다. 

딱지가 앉을 법하면 세찬 손톱이 거세게 뜯어내는 느낌이랄까, 


기행의 후유증은 하루 종일 나를 힘겹게 하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나아졌다. 

고작 한나절 기행의 후유증이 하루를 가는데, 

어쩌면 짧게는 일 년 길게는 십 년이 엮인 역사는 쉬이 가시진 않겠지, 

망망대해를 보듯 오지 않을 물고기를 기다리듯 그렇게 흘러내려야겠다. 

하염없이, 

걸음걸음, 풉풉한 걸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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