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니가 그랬지, 그냥 많이. 처먹었던 거라고
27살의 나는, 어쩌면 인생의 가장 날렵한 시절을 살았다.
그때의 다이어트는 거의 수행자적이었다.
홀수날은 포도 한 송이, 바나나 한 개로 허기를 달래고, 짝수날은 집 앞 대학가 식당의 제육볶음이나 된장찌개 한 그릇으로 생기를 채웠다.
가난했고, 처절했다.
돈도 없었고, 살도 많았다.
오랜 연애의 달콤함이 내 몸에 남긴 8kg의 흔적은, 그렇게 석 달 만에 깔끔히 지워졌다.
거울 속에서 다시 마주한 내 윤곽은, 마치 오래 잊고 있던 친구 같았다.
체중계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마음도 가벼워졌다.
세상은 내 것인 양, 발걸음은 춤을 췄다.
하지만 세월은, 아니, 회사 생활은 그런 낭만을 비웃듯 다가왔다.
책상에 묶인 시간, 점심시간에 동료가 건네는 달달한 커피, 야근의 동반자인 오예스가 서서히 내 몸을 다시 채웠다.
시나브로, 그러니까 아주 교활하게, 체중계의 숫자는 다시 기어올랐다.
26일 전, 저울 위에서 나는 평생 처음 보는 숫자를 마주했다.
심장이 잠깐 멈춘 듯했다.
그 숫자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나의 방심, 나의 안일함, 나의 나태함이 응축된 상징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스위치를 켰다. 다시, 다이어트.
스위치온 다이어트 26일 차.
-10kg. 믿을 수 없었다.
아침에 밥을 거하게 먹고 나니 -9kg로 살짝 후퇴했지만, 그래도 이건 뭐지?
내 몸이 이렇게 살을 잘 빼는 몸이었나?
신기한 건, 예전엔 눈만 마주쳐도 손이 가던 달달한 디저트가 이젠 낯선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과일조차 억지로 삼켜야 할 만큼 입맛이 변했다.
몸이란, 참으로 오묘한 기계다.
설탕과 버터로 점철된 내 과거의 욕망을, 이제는 냉정히 외면한다.
집구석엔 맛동산과 몽쉘통통이 쌓여 있다.
밤마다 낮마다 뜯었었다.
한 봉지쯤이야 하며 아작 아삭 씹어먹었었다.
그런데 결과는.. 26일 전의 나겠지
지금 봉지를 뜯지도 않은 채 먼지를 뒤집어쓴 그 녀석들은, 마치 내 과거의 탐닉을 비웃는 듯하다.
과자를 달고 살면서도 날씬해서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옆자리 동료에게 떠넘길까, 아니면 그냥, 저울 위 숫자가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박스 속에 묻어둘까.
이 강박스러운 다이어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
평생 성적, 성적, 성적을 외치며 경쟁의 레이스를 달려온 내가, 이런 순간에 그 끈질긴 승부욕을 발휘하는 아이러니라니, 경쟁지향적 삶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이 다이어트는 단순히 살을 빼는 일이 아니다.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매일 아침 체중계 위에 올라서며, 나는 나 자신과 대면한다.
숫자는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27살의 나는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았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한 발짝씩 나아가는 법을 배운다.
오늘 저녁, 공원에서 바람을 맞으며 또 한 바퀴 돌다 보면, 뭔가 깨달음 비슷한 게 스칠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시원한 바람이 전부일 수도.
케세라세라
체중계가 내게 미소 짓는 그날까지, 아니, 내가 나 자신에게 미소 짓는 그날까지.
이 여정은, 어쩌면 숫자보다 더 큰 무언가를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언제 멈출지 몰라도, 일단은 계속 걸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