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

쉽지 않은 효도의 길,

by krng

부산 본가로 차를 몰고 내려갔다. 엄마가 치아 수술을 크게 받으셨다는 소식에,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은 채로 핸들을 잡았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아빠가 평소처럼 묵묵히,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온기로 나를 맞아주셨다. 짧은 방문 동안 나눈 대화들은 별것 아닌 듯 지나갔지만,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그 순간들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들을, 천천히 풀어본다.


파묘, 그리고 덧없음에 대하여

엄마가 커피를 내오시며, 늘 그렇듯 담담한 목소리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묘 얘기를 꺼내셨다. 공원묘지에 모셔놓은 묘를 파묘해 화장하고 수목장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30년마다 6천만 원이라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큰집에서 손을 놓았다고 했다. 아빠는 옆에서 “그럴 만도 하지”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말끝에 묻어나는 무게가 공기를 살짝 눌렀다.

“아들 다섯이나 뒀는데, 이런 게 이렇게 허무하다니.”

엄마가 툭 던지듯 말씀하셨고, 아빠는 “세상 다 그렇지, 뭐” 하며 짧게 웃으셨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 잔을 들었다. 돈이 없다는 말, 집안의 사정, 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 순간, 모든 게 결국 흙으로 돌아가고, 그마저도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의 이치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세대를 이어 지켜온 무언가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스산하게 만들었다.


수박, 잊혀진 일상

“올해 수박은 못 먹었네.”

엄마가 별생각 없이 던진 말에, 아빠가 “무겁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올 생각을 못 했지” 하셨다. 평소엔 내 입으로 스쳐 지나가던 수박이, 부모님께는 어느새 번거로운 물건이 되어 있었다. 그 말 한마디가 묘하게 걸렸다.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쿠팡에서 수박을 주문했다.

“내일 도착할 겁니다. 같이 드시죠.”

엄마는 “뭐 하러 이런 걸 시켜” 하며 투덜대셨고, 아빠는 “세상 좋아졌네” 하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수박을 썰며 엄마가 “오랜만에 먹어본다” 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별것 아닌 과일 한 조각이 누군가의 일상에서 멀어진 순간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게, 문득 새삼스러웠다. 내가 당연히 누리던 것들이, 누군가에겐 이렇게 멀리 있을 수 있구나.


쌀, 묵직한 현실

마트에 같이 가자는 말을 꺼냈을 때, 엄마가 “쌀은 무겁지” 하셨다. 아빠가 옆에서 “허리가 좀 그래서, 요즘은 안 들려고 한다” 하셨다. 그 한마디가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내가 곁에 있을 때라도, 이런 작은 부담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 쿠팡을 열어 쌀 20kg을 주문했다.

“집까지 배달되니까 편하네.”

아빠가 툭 던지신 말씀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짧은 대화 속에서, 내가 자주 내려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 났다. 부모님이 나이 드신다는 걸, 이렇게 일상적인 순간에서 깨닫게 된다. 쌀 한 포대의 무게가, 어쩌면 나와 부모님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묵직하게 느껴졌다.


상속과 증여, 그리고 멀리 있는 미래

부모님이 재산 얘기를 꺼내셨다. 많지도 않은 재산을 두고 상속이니 증여니 고민하신다. 엄마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셨고, 아빠는 “아직 멀었지, 뭐” 하며 웃으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얘기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부모님의 나이를 의식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래 사시겠지,라는 생각 뒤에, 언젠가 나도 저런 고민을 마주할 날이 올 거라는 사실이 스쳤다. 시간이 이렇게나 빠르게 흐르는구나.


부산에서 보낸 시간은 짧았다. 서울로 차를 몰며, 부모님과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파묘의 덧없음, 수박 한 조각의 소소함, 쌀 포대의 묵직함, 그리고 말하지 못한 생각들. 별것 아닌 순간들 속에서, 삶의 어떤 이치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내가 더 자주 내려가길. 그렇게 생각하며 이 글을 남긴다. 누가 읽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순간이, 결국엔 가장 큰 의미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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