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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Feb 17. 2021

[Work] 나에게 너를 열라,

Open Space! Open mind?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는 Open space를 지향하여 모든 칸막이를 폐기했다. 

모든 책상은 평등해졌고, 마치 옥스포드에 있는, 해리포터가 밥을 먹던 식당처럼 테이블만 주루룩 나열되어 있다. 테이블 위에는 각자 모니터 2개씩이 오뚝 솟아 있고 그 외 잡동사니들이 구분 없이 놓여 있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칸막이를 없앤 가장 큰 이유는 의사소통의 활성화이다. Digital Transformation에는 물리적 변화는 조건반사적으로 동반되어야 하고, 하드웨어 변화를 통해 소프트웨어가 혁신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칸막이가 없으면 당연히 동료와 대화하기가 편해진다. 단독주택 밀집 지역에서 옆집과의 담을 허물었다고 생각해보라, 괜히 바깥에 나왔다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한마디 붙이지 않겠는가, 

실제로도 과거 대비 많은 대화를 한다, 전화를 하거나, 혼잣말을 할 때도 옆 혹은 앞의 동료가 너무 쉽게 듣고 맞장구를 친다. 격한 전화에는 함께 흥분해주고, 갑자기 업무적으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는 바로 고개를 내밀어 묻고는 한다. (물론 방역에는 극악이다. 사실 내 옆자리 그녀가 혹은 내가 코로나/감기/독감 기타 등등에 걸린다면 전염의 가능성은 매우매우 높아진다.) 


친한 동료들과 농을 던지며 수다를 떨기에도 적격이다. 괜히 텀블러를 들고 지나가다가 눈을 마주치면 슬며시 미소지으며 시덥잖은 말을 던지기도 하고, 아예 작정하고 가서 감놔라 배놔라를 하기도 한다. 이는 칸막이가 없는 덕분이다. 칸막이가 있다면 벽을 타고 넘어가서 대화를 해야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이렇게 웃고 떠들기 쉽지 않다. 


하지만, 집중해서 일을 하기 너무 어렵다. 남들이 전화하는 소리, 자리에서 간단히 회의하는 소리가 가감없이 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주변에 앉아 있는 XX장들께서 열내서 말씀하시는 소리를 하릴없이 경청 아닌 경청을 하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 그렇다고 집중을 위해 이어폰을 끼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전화가 올 수 도 있고, 누군가가 나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소위 꼰대급이 윗 사람들이 이어폰을 끼고 있는 직원을 좋아할리 만무한데, 칸막이가 없기에 그 모습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 적나라하게 보임은 물론이고, 업무 목적의 메신저나 카톡 등을 할 때도 윗 사람이 지나가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다. 나만 해도 누군가가 모니터를 안 보고 핸드폰을 쥐고 있으면 일하고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핸드폰을 열고 일을 하지 않을때도 많다...) 


마지막으로 지저분하다. 칸막이가 있을 때는 책, 물티슈, 휴지, 연필통 기타 등등이 칸막이 주변으로 정렬되어 나름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책상 아래 수납장에 고이 들어갈 수 있었는데, 아래위로 뻥뚫려 있는 테이블에는 자그마한 서랍 외에는 번번한 수납장이 없어 테이블 위에 각자의 스타일대로 놓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성격에 따라 매우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아, 전체적으로 사무실을 조망하면 난잡해보인다. 


의사소통의 활성화 vs. 집중도 저하 중 시간이 흐를수록 후자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 생각된다. 롱테이크로 길게 이어가고 싶은데, 자의 혹은 타의로 숏테이크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로 인해 집중도가 필요한 일은 일부러 아침 일찍 혹은 야근을 하며 처리하게 된다. 동료들과의 대화 속에 창의성이 발현되고 전에 없던 새로움이 피어나 진정한 Digital Innovation을 가져 온다? 미안한데, 우리 회사는 Top-down만이 come true되는 회사다. 당신들이 가장 잘 알지 않는가? 아래에서 올라간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언제 제대로 buy된 적이 있는가, 결국 지독히도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방에서 일하기 때문에, 혹은 거의 방과 유사한 장소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시 되돌릴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중들이 절에 적응을 해야 할텐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을지, 나의 소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을지 끝없는 고민이 계속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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