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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Sep 23. 2021

[상념] rhapsody on the road

가녀린 바퀴 위 묵직한몸뚱이.

요즘 인스타 눈팅을 매우 열심히 하는 버릇이 생겼다. 지인들의 소소하고 행복한 삶을 엿보면서 대리만족도 느끼고 무료한 삶을 달래는 소박한 취미랄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진을 하나씩 넘기던 중 한 친구의 포스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대치동이 집인 친구가 한강을 따라 여의도를 찍은 뒤 다시 유유히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친구는 최소한 나보다 체력이 약해보였다. (사실 이 점이 가장 큰 나의 착각이었을 수는 있다.) 

이번 주 내내 밤마다 자전거를 타던 자로서 관심이 갈 수밖에 없어 바로 연락을 해보았다. 


"정말이야? 이게 가능해?" 

"할만해, 물론 따릉이는 아니라 경량 자전거긴 하지만 그래도 탈만해. 왕복하면 3시간 안에 거뜬하다구"

"그래? 그럼 우리 나중에 반포쯤에서 콜라나 한번 하자~" 




나는 자전거 타기를 무척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면 내가 멈춰있지 않음을 느낀다. 

천천히 간다 할지라도 앉아 있는 혹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 있음을, 화살표에 맞게 전진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다. 목적지가 있든 없든 나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그 나아감이라는 소소한 감정이 나에게 어떻게든 살아있음을 알려 준다. 


상념에 빠져 다양한 고민거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바퀴를 굴리다 보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다양한 생각에 빠진다. 허황된 공상부터 과거에 대한 회한과 후회, 미래에 대한 부정과 낙관 등 꿈에서조차 하기 힘든 다양한 상념에 잔뜩 빠진다. 특히, 최근 나를 옥죄는 주제는 대부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비록 그게 정답일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목소리에 따라 나름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대안들을 하나씩 도출해내었다. 그리고 실행에 옮길 용기마저 얻었다. 

오늘도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이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호기롭게 한 것이다. 

 

사람들을 흘낏흘낏 구경하며 망상에 자유로이 빠질 수 있다. 

홀로 강을 바라보며 맛동산을 먹고 있는 저 젊은 친구는 무슨 사연이 있어 저러고 있을까? 맛동산을 너무 먹고 싶었는데 먹을 곳이 마땅찮은 것이었을까? 아님 강을 눈으로 마시며 맛동산을 안주로 삼은 것일까? 

대로변에서 서로 눈을 부라리며 다투고 있는 저 커플은 언제 저 싸움을 마무리하고 손 잡으며 걸어가게 될까? 아님 오늘은 서서히 멀어져 각자의 길로 향하게 될까? 

저 큰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이는 도대체 어떤 대저택에 살길래 저렇게 큰 강아지와 동거가 가능한 것일까? 아님 소소히 용돈을 벌기 위해 운동 삼아 나온 산책 알바일까?

이런 자유로운 망상 속에서 혼자만의 유영을 하며 푸른 나래를 펼쳐 본다. 




그녀의 무용담에 탄복하며 결국 나는 근 3시간여 만에 긴 여정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다. 양재천 끄트머리에서 과천으로 넘어갈까 말까 하다 결국 반포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며 남은 여정은 택시를 탈까 여러 번 고민을 하긴 했지만, 결국 두 다리에 조금 더 의지해보기로 마음먹었고, 해내었다.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여정들도 결국 이렇게 피곤하지만 결국, 끝맺음을 맺지 않을까, 

오롯이 나의 의지에 의해, 다분히 나의 노력으로, 그리고 때론 바람을 등에 업으며,

걷고, 뛰고, 그리고 바퀴를 굴리며,

그렇게 나는 나아가고 또 나아가, 마침내 싸늘해지도록 차가운, 그러나 유일한 나만의 집에 당도해보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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