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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Mar 23. 2022

[여행] 뉴욕4일차, 스트리트푸드파이터

나의 미각은 누가 결정하는가,


다시 15년 전,

친구들과 함께 한 유럽여행에서 인생 피자를 만났었다.

비록 피자의 본 고장 이탈리아였긴 하지만 대단한 명성을 가진 피자집도 아니었고, 그냥 나폴리 기차역에 한 켠에 놓여있는, 우리로 치는 기차역의 가락국수 집 같은 곳이었다.

바쁜 일정에 쫓기던 우리는 배가 고파 주위를 둘러보다 피자가 6유로 정도 밖에  하는 것을 확인하고 바삐 사서 기차에 오른 후,

뜨거운 땀을 닦아 내며   물었던 피자의 추억은 태어나서 먹은 그 어떤 피자보다도 강렬했다.


오늘 방문하기로 계획한 백종원의 스트리트푸드파이터에 나온 줄리아나스가 바로  유럽의 기억을 넘어,  환상적인 맛의 향연을 열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하루를 시작했다.




마르게리타 미디움 플리즈



마치 준비해둔 멘트처럼 나지막히 외쳤다.

별로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백선생님이 드신 그대로 주문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 한 큰 사이즈에 순간 당황했지만, 아 여긴 미국이지 라며 이내 피자를 집어들었다.

흐으음...흐음..흠.

왜 사람이 많을까, 왜 백선생님이 극찬했을까,

그리 특별하지 않은 느낌의 화덕피자였다.

나의 실망 따위는 아랑곳 않고 사람들은 계속 꾸역꾸역 들어왔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음 백선생님 pick인 토니드래곤그릴로 향했다.

센트럴파크 옆의 푸드트럭에서 파는 수제버거였는데, 단순히 푸드트럭은 아니었고 푸드트럭을 가장한 소규모 가게같은 느낌이었다.

동네 네이티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걸 보니 맛집임은 틀림 없었다.

여기서도 역시 백선생님이 주문했던 토니버거를 주문해서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맛이 없을 수 없는 구성이었다. 검분홍빛 패티, 치즈, 양파, 양상추, 토마토, 케첩, 마요네즈.

그러나 안타깝게도 감흥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난 미각에 민감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뭘 먹냐보다는 누구와 먹냐가 그 날의 미각을 결정하는, 어쩌면 메세지보다 메신저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점심 약속 있어?



보통 점심에 약속 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날 향해 가끔 물어주는 동료가 있다.

저 말 뒤에 숨겨진 멘트는 "없는 거 알아. 나랑 마라 먹으러 가자" 이다.

그럼 난 순순히 따라 나선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근데, 놀라운 사실은, 그 친구가 아는지 마는지 모르겠지만, 난 마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매운 것과 고수 모두 좋아하지 않는데, 마라는 그 둘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난 그저 그 친구와 짧게나마 하는 시간 자체가 좋아 즐거이 따라 나서고 있다.




오롯이 혼자만의 여행,

고독한 미식가 마냥 어딜 가나 맛있게 잘 먹으면 좋으련만,

그런 낙이 없는게 조금 아쉽다.



다시 돌아가면,

내가 감히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미각을 조심스레 부탁해야겠다.


이걸 먹어서 좋은게 아니라, 너와 함께여서 맛있는거야.




부디 당신도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풍미를 느꼈으면,

그저 나지막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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